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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학신문 칼럼] 한국대학신문
대학이 무슨 직업학교도 아니고 …
류훈 성결대 연극영화학부 조교수
“교수님! 다음 주까지 졸업생 취업률 제출하라는 공문이 내려왔습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간지러운 봄 햇볕을 핑계 삼아 눈을 감고 있던 나의 게으름을 나무라듯, 조교의 채근이 수화기를 통해 들려온다. 짜증 섞인 대답을 뱉은 나는 마른 입맛을 다시며 달아난 나른함의 끝자락을 아쉽게 잡아본다.

‘취업률 취업률 취업률!... 여기가 무슨 직업학교도 아니고 말이야….’

나의 불평은 쉽게 그치질 않고 예술을 가르치는 학문마저도 취업률이라는 일률적인 잣대로 평가하려드는 시스템을 탓하면서도 어느새 나는 지난해 졸업자 명부를 들춰보고 있다.

매일 반복되는 아홉 시 뉴스는 하루가 멀다 하고 암울한 경제 전망을 내놓고 청년실업률이란 말은 이제 칼로 베어도 통증이 없는 굳은살마냥 그 의미의 감각을 잃은 지 오래다. 언제부터인지 대학은 취업 전쟁터가 되어 있고 일분일초라도 빠른 속도로 남을 이기고 출세해야 하는 사명을 지닌 우리 학생들, 특히 4학년생들의 표정은 심지어 비장하기까지 하다.

세상에 먹고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을까? 그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가슴 한구석에 오래된 숙변같이 들러붙어 있는 이 묵직한 기분은 뭘까?

나는 대학에서 영화를 가르친다. 영화, 어쩌면 먹고사는 문제와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없어도 사는 데 지장 없는 그런 걸 가르친다(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먹고사는 데 지장 없는 걸 가르치는 일로 먹고살고 있다). 그런 내가 요즘 수업 때마다 누구에게 터놓기 힘든 딜레마에 빠져든다. ‘좋은 영화를 가르쳐야 하는가, 빨리빨리 잘 먹고살 수 있는 영화를 가르쳐야 하는가?’

내가 처음 학교에 임용될 당시 나에겐 어떤 거창한 사명 같은 것이 있었다. 최소한 나는 학생들에게 삶을 바라보는 자기만의 시선을 가르치길 원했고, 사회를 읽는 새로운 각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고, 권력과 힘에 저항하는 예술가 정신을 학생들과 공유하길 바랐으며, 인간에 대한 진심이 무엇인지 느끼는 학생들을 키우고 싶었다. 그것이 영화 정신이고, 영화인의 참된 덕목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여전히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이대로 가르치다가는 졸업생들에게 이런 말을 들을까 두려워진다.

“배고파요.”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 믿음을 버릴 수 없다. 모든 학문에는 학문적 진심이란 게 있다. 그 진심이 무너질 때 그 일을 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먹고사는 문제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왜 먹고살아야 하느냐의 문제다. 혹자는 먹고사는 문제부터 해결하고 나서야 사색과 철학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한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사람은 먹으면서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먹는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다. 내가 왜 이 학문을 공부해야 하는가, 이 학문이 나에게는 어떤 의미인가, 나는 이 학문을 통해 세상과 무엇을 부대끼려고 하는가? 취업에 목마른 우리 학생들에게 학문적 진심과 철학에 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너무 바쁘고 빠르게만 가려고 하지 말고 조금 늦더라도 진심을 확인할 시간을 우리 아이들에게 주어야 한다. 진정성이 담보되지 않은 생계적 학문은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배고픔을 느끼게 할 뿐이다.

동시대에 이 땅을 사는 현대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질문은? ‘너 요즘 뭐해?’, 가장 무서운 대답은? ‘놀아요.’다. 일하지 않으면 인생 낙오자로 낙인찍히는 시대, 한가함과 여유가 부덕이 된 시대, 느림과 게으름이 죄악이 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조선시대 선비의 풍류는 철학이지만 현대인의 풍류는 낭비일 뿐이다. 무엇이든 빠르고, 바쁘고, 승리하고, 성취하는 것이 선(善)이 된 현실. 우리의 삶이 꼭 나날이 빨라지는 인터넷 속도와 비례해야 할까?

나는 아직 한 번도 빠른 인터넷 속도 덕분에 휴식 시간이 많아졌다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이러한 시대에 역설적으로 최근에 이슈가 되었던 다큐멘터리 영화 '워낭소리'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음 수업에는 이 영화에 등장하는 소와 할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해야겠다.

“저 소와 할아버지의 느려터진 걸음을 봐라. 이렇게 빠르게 돌아가는 사회에 대해 이야기하는 감독의 세상을 바라보는 진심과 철학이 그대로 담겨져 있지 않니?”
한국대학신문 칼럼 | 입력 : 09-05-18 오전 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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