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협지를 읽다 보면 ‘내공’과 ‘초식’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내공이라 함은 이를테면 무공을 펼치는 데 있어서 기본이 되는 내적 기초 또는 잠재력이라고 볼 수 있고, 초식은 당장 싸움에서 써먹을 수 있는 실전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내공을 쌓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의 수련이 필요하지만, 초식은 종류에 따라서는 단기간에도 습득이 가능하다. 충분한 내공이 쌓이면 웬만한 초식은 쉽게 구사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 것인가 하는 해묵은 논쟁도 결국 대학이 내공을 쌓는 곳인가 초식을 배우는 곳인가 하는 문제라고 생각된다. 한편에서는 학생들이 대학에서 문(文), 사(史), 철(哲)로 대표되는 인문학을 배우고 고전을 읽으며 폭넓은 교양(내공)을 쌓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얘기한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기업과 사회에서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좀 더 실무(초식) 중심의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옛날 소림사에서도 수련생들이 하산하기 전에 더 깊은 내공을 쌓도록 단련시킬 것인가 아니면 좀 더 많은 초식을 가르칠 것인가를 놓고 사부들이 많이 고민하지 않았을까 싶다.
약 7년간의 변호사 생활을 거쳐 대학으로 온 필자의 경험상 실전에서 수준 높은 초식을 펼치기 위해서는 깊이 있는 내공이 필요하다. 확실한 기초체력과 튼튼한 기본기가 받쳐 주지 않는 상태에서 배운 몇 가지 잔기술만으로는 무림의 고수들이 자웅을 겨루는 강호에서 오래 살아남기 힘들다. 따라서 당장은 그 효과가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내공을 쌓기 위한 교양교육과 인문교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졸업과 동시에 삭풍이 몰아치는 광야로 나가야 할 학생들에게 무작정 내공만 쌓으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취업(또는 고시)이라는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물론이고, 취업 후 당장 실무에 투입돼 무한경쟁에 내몰리는 현실을 감안하면 실전에서 긴요하게 쓰이는 기본적인 초식들 몇 가지 정도는 반드시 몸에 익히고 하산해야 할 것이다. 법학이나 경영학과 같은 실용학문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점에서 학부에서는 내공을 쌓고 대학원 과정으로 각종 초식을 익히게 하는 전문대학원(professional school)제도가 의학, 법학 등의 분야에서 차츰 확대되고 있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런데 대학생들이 진정으로 실전에서 통하는 초식을 연마하기 위해서는 이를 위한 인적?물적 토대가 대학에 갖춰져야 한다. 실무 경험이 풍부한 전임교원의 확보와 함께 실무교육에 필요한 교육시설의 확충이 병행돼야 한다. 산학협력을 통해서 학생들을 기업체에 일정기간 파견하는 각종 인턴제도의 활성화도 한 가지 방법일 것이나, 기왕이면 대학에서 실무 경험을 익힐 수 있도록 하는 시설이 갖춰지는 것이 더욱 바람직할 것이다. 의학 분야에서는 일찍이 대학병원을 통해서 이론교육과 임상실습이 동시에 이뤄지고 있는 바, 다른 분야도 이를 롤모델로 삼을 만하다.
이와 관련해 최근 법학 분야에서 대학 부설 로펌의 설립 허용을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강력히 제기되고 있음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사법연수원을 대체해 법조인 양성기관의 역할을 하게 된 법학전문대학원들은 물론이고, 학사과정으로 법학과를 운영하는 대학들에서도 법학교육의 내실화와 실무교육 강화를 위해서 학생들이 실전 경험을 익힐 수 있는 대학 부설 법률사무소의 존재는 절실하다. 우리 대학들이 글로벌 무림의 최고수를 배출하는 소림사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내공과 초식을 균형 있게 수련시킬 수 있는 교과과정과 설비가 반드시 필요하다. 대학 부설 로펌 설립 문제에 대한 적극적 관심과 활발한 논의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