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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핫 이슈 - 박사 돼도 일자리가 없다
시간강사 자리도 ‘감지덕지’
인문계 정규직 취업률 14.7%… 여자도 25.9% 불과


러시아 모 국립대에서 지난 2002년 1월 박사학위를 취득한 P모씨는 7년째 모교인 수도권 A사립대에서 시간 강사를 하고 있다. 해외 박사학위를 딴 뒤 교수가 되는 꿈을 키워왔지만 포기한지 오래지만, 시간강사 자리라도 붙잡고 있어야한다. 최근 장기간 치료가 필요한 병을 얻었지만, 일을 그만 두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P씨는 주간 6시간의 강의로 월 70여 만원을 받는다. 여기에 통역과 번역, 각종 학회 프로젝트를 기웃거려보지만 생활하기에도 빠듯하다. P씨는 “교수가 되면 끊임없이 연구하고 실적을 내야하는데 시간강사로서 그런 일은 엄두도 못낸다”면서 “결혼한 남자 분들은 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P씨의 전공은 러시아언어학인데, 대학 말고는 인력수요가 거의 없다.

P씨처럼 순수학문 전공 박사 학위자들은 대학 말고는 갈 곳이 없어 대학에서 맴돌고 있다. P씨는 “기업체 취업자리도 4년제 학부생 중 언어에 능통한 자만 뽑는다. 문학쪽은 더욱 심하다”고 말했다.

박사 학위자들에게 대학은 교수의 꿈을 잠들게 한 무덤이 된 지 오래다. 각 대학들이 앞다퉈 연구중심대학을 표방하면서 각종 학위과정을 만들어놓았지만, 사회적 수요는 턱없이 부족하다. 대다수 박사 학위자들이 원하는 교수직은 대학의 교수 충원율을 획기적으로 높이지 않는 한 허황된 꿈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

■ 인구 309명 당 1명은 박사 =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박사학위자는 2008년 12월 현재 15만8000여명이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걸쳐 대학의 박사 학위자 배출이 급증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1981년 666명이던 박사는 매년 꾸준히 증가해 2007년 한 해에만 9082명으로 26년 만에 14배나 늘었다.

통계청이 추산하는 2010년 인구 추정치인 4887만5000명에 비교하면 인구 309명 당 1명은 박사학위자인 셈이다.

황우여 한나라당 의원이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받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07년 배출된 박사 학위자의 정규직 채용은 44.8%, 계약직은 29.2%로 나타났다. 박사 4명 중 1명은 파트타임 또는 시간강사인 비정규직에 머무르고 있다.

공학계열 박사는 62.9%가 정규직으로 취업했고, 계약직은 29.0%로 조금 낫다. 그러나 인문계열 박사의 정규직 비율은 더 낮아지기 힘들 정도로 낮다. 인문계열 정규직 취업자는 14.7%, 계약직 11.8%로 나타났다. 인문계열 박사 10명 중 8~9명은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여자 박사의 경우도 정규직 26.9%, 계약직 27.2%로 나타나 여성 박사의 취업 문제는 더 심각하다.

대학에서 박사 학위자를 양산했지만, 이들을 필요로 하는 곳이 극히 제한적인 때문이다. 대다수 박사들이 채용 인원이 한정된 대학 교수를 원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교과부가 지난 2007년 취업준비중인 박사를 대상으로 취업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66.7%가 대학 취업을 원했고, 22.7%는 연구소, 4.8%만 기업 취업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산업체 박사 수요 못 잡는 대학 박사과정 = 산업체가 필요로 하는 박사 전공 분야는 매우 유동적인 반면, 대학 박사 과정의 유동성은 이에 미치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LG화학 기술연구소 석.박사 채용담당자는 “베터리쪽 전공자를 뽑아야 하는데 바이오쪽과 제약 전공자가 원서를 내고 있는데 그쪽은 전혀 필요없다”면서 “박사가 넘쳐나면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것 같다”고 말했다.

석.박사 산학연계과정 운영이 원활하지 않는 것도 원활한 박사 인력 수급의 걸림돌로 작용한다. 산학연계과정은 기업이 대학의 석.박사 과정생에게 연구 프로젝트를 맞기고 장학금을 줘 학위 취득 후 취직하도록 한 제도다.

그러나 대학의 연구 프로젝트 성과가 기업으로 넘어오지 못하는 게 문제다. 장학금을 주고 우수 인력을 채용할 뿐 원활한 산학연계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대학과 기업의 기술 수요에 대한 눈높이에 차이가 벌어진다는 얘기다.

또 박사들이 제대로 된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문제는 국가적인 손실인 만큼 대학에만 맡겨둘 문제는 아니다.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윤정원 위원장 “정부와 대학이 박사만 양산해 놓고 놀리고 있는 건 국가적인 손실”이라며 “대학 전임교원 충원율이 63% 정도에 불과한데, 각 대학들의 재정 여건상 충원하지 못하고 있는만큼 범 국가적 차원에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박사 실업자 양산의 구조적인 문제는 어제 오늘의 얘기는 아니지만 뽀족한 해결책이 나오고 있지 못하다. 지난 2001년 국정감사에서도 2006년까지 5만3000여명의 박사 학위자가 배출되는데, 대학과 연구소 수요는 2만7000여명에 불과해 2만6000여명의 박사 실업자가 나올 것이란 전망이 나온 바 있다.

황우여 의원실 관계자는 “국내 대학의 교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대학의 재정 여건상 뽑지 못하고 있다”면서 “경쟁력을 갖춘 박사를 활용하는 방안을 대학이 마련해야한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의 경우 각종 학회를 통해 산업체와 학계가 만나 일자리 소개가되고 있는데, 우리는 산업체와 학계가 따로 논다”면서 “산업계와 학계가 유기적인 관계가 되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올해 교과부에서 국립대 시간강사의 처우 개선을 위해 500억 원의 예산을 신청했지만 기획재정부가 반대해 무산된 바 있다. 황 의원실은 올해 안으로 시간강사를 교원의 범주에 넣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고등교육법 개정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여기에는 채용기간의 안정과 전임교원의 2분의 1 수준의 급여를 명시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될 예정이다.
한용수 기자 (unnys@unn.net) | 입력 : 09-10-19 오전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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