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교육역량 우수 대학에 대한 지원을 확대키로 하면서 교육중심대학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아직 사회적으로 교육중심대학의 정의와 인식이 명확하지 않고 교육중심대학과 연구중심대학 간 역할 구분도 뚜렷하지 않다.
따라서 현시점에서 전제돼야 할 것은 교육중심대학에 대한 이해, 대학 간 교통정리, 교육중심대학 실현을 가로막는 문제 해결 등이다.
이 같은 작업들이 간과될 경우 정부 지원이 진정한 교육중심대학이 아닌, 기존 대형대학 또는 우수대학에 또 다시 편중될 우려를 배제할 수 없다.
■정부, 교육중심대학에 지원 강화=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 장관은 지난 7월 제주 신라호텔에서 열린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하계 총장세미나에서 “지금까지 교과부는 교육과 연구 중에서 연구 쪽으로 몰고 왔다”면서 “대학을 발전시키려면 연구 쪽으로 독려해야 하지만 교육이 소홀해졌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안 장관은 “교육역량강화사업의 중점지표를 보면 교육 쪽은 거의 없다”며 “이제 (교육과 연구의) 균형을 맞출 때가 왔다고 보고 앞으로 교과부의 지원이나 사업들은 교육 쪽으로 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날 안 장관의 발언 이후 교과부는 교육역량강화사업 포뮬러 지표에 대한 개선·보완 작업을 진행하는 등 후속 조치에 들어갔다. 또한 내년에는 교육역량강화사업에서 수도권에 비해 지방에 많은 재원을 배분하되 학생 충원·취업 등 교육 성과가 반영된 지표를 활용해 지방대를 차등 지원할 방침이다.
■교육중심대학의 개념 이해 필요=“교육중심대학은 학부 중심이라는 의미다. 우수학생 유치도 필요하지만 어느 학생이 들어오더라도 4년간 치열한 교육을 통해 우리가 목표로 하는 학생으로 길러 내는 게 대학의 책임이다. 학생들이 제대로 된 학문적 소양을 갖추고 사회에 가서 직업을 갖도록 하는 것, 이것이 바로 교육중심대학이다.”(지은희 덕성여대 총장)
정부의 정책 변화는 교육중심대학을 표방하고 있는 대학들에는 희소식이다. 그동안 정부 지원이 연구 분야에 집중돼 빛을 보지 못했지만 이제는 교육중심대학으로서 정부 지원은 물론 사회적 관심까지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교육중심대학이란 무엇을 의미할까? 최근 들어 교육중심대학 반열에 합류하는 대학들이 속속 늘고 있지만 교육중심대학에 대한 명확한 개념 정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대학 혁신을 위한 제언’ 보고서에 따르면 교육중심대학은 △목적 △교수 유치 △학생 유치 원동력 △연구 목표 △교수 평가 등에서 연구중심대학과 확연히 구분된다.
우선 목적과 관련해서는 연구중심대학이 세계 수준의 연구를 통해 지식 창출과 국가·세계를 이끌 차세대 지도자 양성을 목적으로 한다면 교육중심대학은 학부 교육을 통해 사회 각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렇게 볼 때 국내 대학들의 80%는 교육중심대학이라고 볼 수 있다. 세계 수준의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대학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교수 유치와 관련해서는 연구중심대학의 경우 연구 역량을 기준으로 교수를 채용하는 것이 성공 요인이지만 교육중심대학의 경우 강의력·학생지도력을 겸비한 교수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학생유치 원동력과 관련해서는 연구중심대학이 세계 수준의 연구 성과를 통해 명성을 구축하고 우수학생을 유치하는 반면 교육중심대학은 성공한 동문에 의해 구축된 명성으로 우수학생을 유치한다. 실례로 미국 윌리엄스대(Williams College)는 철저한 동문 관리시스템을 바탕으로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를 위해 윌리엄스대는 60여 명의 직원들이 동문관리 업무를 맡고 있다.
연구 목표의 경우 연구중심대학은 ‘지식 발견·창조’에, 교육중심대학은 ‘지식 전달’에 각각 초점이 맞춰져 있다.
■평가지표 차별화 돼야=교육중심대학에 대한 개념이 정립되고 대학들도 교육중심대학과 연구중심대학 사이에서 역할을 정리한다 해도 교육중심대학의 실현을 위해서는 해결과제도 있다.
무엇보다 대학평가에서 교육중심대학과 연구중심대학은 평가지표가 차별화돼야 한다. 현재는 대부분의 대학평가에서 평가지표가 SCI 논문 실적 등 연구중심대학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교육중심대학들이 상대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다. 교과부가 교육역량강화사업에서 교육지표 반영을 확대키로 한 것도 이 같은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다. 미국의 <유에스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는 대학평가 시 연구중심대학과 교육중심대학을 구분, 다른 평가기준을 적용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 대학 관계자는 “대학들을 교육과 연구 중심으로 나누라고 하면 평가지표도 달라져야 하는데 평가지표가 다르지 않다”면서 “평가지표를 제대로 만들어 시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교수 평가도 교육중심대학은 연구중심대학과 달라야 한다. 연구중심대학이 연구 성과 위주로 교수들을 평가한다면 교육중심대학은 강의의 질과 학생 만족도 위주로 교수들을 평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교육중심대학을 표방하고 있는 대학들조차 교수평가에서도 SCI 논문 실적 등 연구지표를 강조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이는 대학평가가 연구 분야에 맞춰져 있다 보니 ‘울며 겨자 먹기 식’ 선택이라 해도 교육중심대학의 실현을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돼야 할 과제다.
■취업률 만능주의 경계=교육중심대학과 관련해 범하지 말아야 할 오류는 ‘교육중심대학=취업률 우수대학’이라는 일반화된 공식이다. 교육중심대학이 양질의 학부교육을 통해 사회에 기여할 인재양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취업률은 교육중심대학에 대한 중요한 평가요소다.
그러나 취업률이 허수가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서거석 전북대 총장은 “취업률을 단순 조사해 발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취업 현황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무엇보다 취업의 질을 따져야 하고 취업 1년 후에도 계속 그 직장에 다니고 있는지 추적 조사도 해야 하는 등 여러 가지가 고려돼야 하는데 현재 조사에선 그런 부분들이 빠져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취업률이 교육중심대학의 평가 기준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교육중심대학에 대한 지원 여부를 결정하는 핵심 잣대가 된다면 취업률 부풀리기가 더욱 기승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진정한 교육중심대학의 실현과 육성을 위해서는 취업률 만능주의를 경계하고 보다 정확한 평가 기준 마련이 요구된다.
■교수·학생·대학 '관계' 재정립=교육중심대학 실현을 위해 교육중심대학 개념 정립·평가지표 차별화 등 선행 과제를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교육주체(교수·학생·대학) 간 법적 지위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 조만형 동신대 교수는 ‘교육중심대학 실현을 위한 교육주체 상호간의 법적 지위에 관한 재검토’를 통해 교수·학생·대학의 법적 지위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필요하다고 제안하고 있다.
조 교수는 교육중심대학에서 교수의 경우 전문성과 자율성을 겸비한 교육전문가가 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는 교육중심대학의 기본이념이 단순한 지식 전달에 그치지 않고 교육을 통한 인격 함양을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교수는 지식 획득과 활용에 적합한 교육을 하는 것도 중요하게 간주된다.
학생의 경우 교육중심대학에서는 수동적인 학습자가 아닌 적극적인 학습 참가자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학습 과정에 참여하고 교육과정 개설 등 학습요구권은 물론 교육환경개선요구권도 가질 수 있다.
대학은 △학칙 제·개정 △교수의 교육능력 향상을 위한 방법 모색 △산학협력을 통한 실무형 인재 양성 등이 요구된다.
조 교수는 “대학은 자율성 보장에 훼손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교육중심대학을 실현하기 위해 학칙 제·개정 등의 법제적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현실적인 접근으로 교수의 교육능력 향상에 중점을 둔 방법론적 개선방안과 함께 산학협력을 통한 실무형 인재양성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