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신문에서 연재하는 칼럼입니다.
2002년 6월 우리나라를 들끓게 했던 월드컵의 열기를 모두가 기억할 것이다. 당시 거스 히딩크 감독은 우리나라 국민의 인기를 한몸에 받았고, 그의 리더십이나 용병술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다.
필자의 기억에도 남아 있는 당시 히딩크 감독의 선수기용의 원칙은 '멀티플레이어론'이었다. 즉, '어느 위치에서든 주어진 역할을 소화할 수 있는 선수'를 중시한다는 것이다. 감독 입장에서는 적재적소에 선수를 기용함으로써 팀의 전력을 최대화하는 것이 관건이겠지만 운동경기처럼 상대방의 움직임에 따라 유기적으로 맞서야 하는 상황에서는 다양한 역할을 소화할 수 있는 선수가 전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히딩크 감독은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최근 학문의 영역이 넓어지면서 이종 학문 간의 경계가 점차 사라지거나 장벽이 낮아지고 있다. 사실 대학은 학문의 순수성을 주장하며 학문 간의 경계를 가장 늦게까지 유지한 영역이 아닌가 싶다. 물론 순수학문으로서의 순혈주의를 지켜야 할 영역도 존재하겠지만 응용과학의 경우에는 학문의 경계를 설정하기도 어렵고 학문 간의 이종교배를 시도한 지 오래됐다. 학문 간의 이종교배는 멀티플레이어의 역할이 점차 커져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동차나 휴대전화와 같은 산업의 흐름을 지켜보면 단순히 공학적인 관점에서의 성능만을 따지는 것이 아니고 시각적인 디자인에서부터 감성적인 사용자 인터페이스, 인체공학적인 제품설계, 컴퓨터와 네트워크를 동원한 편의장치 등 여러 학문분야가 접목된 결정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생명과학분야에서는 복잡한 유전자의 분석이나 실험에 컴퓨터를 이용해 왔으며, 많은 사회과학분야에서는 사회현상 분석을 위해 통계학이라는 학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의학분야에서는 다양한 의료장비나 진단기기를 개발하기 위해서 핵물리, 전자공학, 기계공학이 접목해 우수한 결과를 얻어 내고 있다.
이러한 추세에 맞춰 우리 대학은 국내 최초로 융복합 특성화 대학을 만들기로 했다. 저작권보호학과와 그린생명과학과, 에너지그리드학과 등 3개 학과로 시작되는 융복합대학은 향후 5개 학과로 그 영역을 넓혀 가게 될 것이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저작권보호학과는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법과 기술의 괴리감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사회현상을 해결할 수 있는 전문가 양성을 목표로 법학, 경영학, IT기술의 삼박자를 갖출 수 있는 인재교육을 시도하고 있다.
저작권보호학과가 사회과학에 해당하는 법학과 경영학, 공학에 해당하는 정보통신기술이 융합된 학문을 교육하는 것은 오늘날 저작권과 관련된 다양한 현상들이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인해 발생되었기 때문이다. 컴퓨터 기술의 발달은 누구나 손쉽게 저작물(콘텐츠)을 생산하거나 소비할 수 있도록 이끌어가고 있으며, 네트워크 기술의 발달은 생산된 저작물을 시공간을 초월해 공유할 수 있도록 해 줌으로써 저작권과 관련된 다양한 분쟁을 일으키고 있다. 2007년에는 저작권 침해에 따른 법무법인의 고소로 어린 고등학생이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으며, 권리자와 사업자 간의 소송으로 사회적 비용손실이 많이 발생했다.
여러 차례에 걸쳐 저작권법이 개정되었지만 빠르게 변하는 정보통신 기술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대응이 부족해 생기는 괴리감은 물론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서로의 입장만을 주장함으로써 합의점을 도출하기 어려운 분야가 바로 저작권분야다. 따라서 저작권산업이라는 영역을 큰 틀에서 바라볼 수 있는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법, 경영, 기술이라는 3박자를 갖춘 멀티플레이어가 필요하며, 이를 교육할 수 있도록 융복합 특성화 대학과 같은 시스템을 하루빨리 갖춰야 할 것이다.
오늘날 자연과학이나 공학의 발전은 매우 빠르게 진행되고 있으며, 이를 인문사회과학적 측면에서 바라보기에는 시의성을 놓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한다. 특히 다른 학문 간의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단일 학문의 시각으로만 현상을 해석했을 때는 현실성이 부족해질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학문의 융복합 교육은 향후 사회 발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것으로 예측되며, 융복합 학문분야의 전문가가 많은 영역에서 배출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융복합 학문 교육에 있어서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다양한 분야를 교육하는 것은 여러 마리의 토끼를 잡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칫 모든 토끼를 놓쳐 버리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성공적인 전문가 양성을 위해서는 산학연관의 유기적인 협조 아래 교육과정을 개발 적용하고, 동시에 학생들의 수준별 학습이 적절히 이뤄지도록 지원체계를 갖춰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