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캠퍼스(4)윤리]③성윤리
대학내 성희롱·성폭력 사례 끊임없이 발생, 감추기에 급급
강의 중 성희롱 발언 사례 늘어
수원 모 대학 교양 미술 과목 강의에서 A 교수는 밀로의 비너스에 대해 설명하면서 여성의 가슴, 허리, 엉덩이 사이즈와 역대 미스코리아들의 사이즈를 비교했다. 이 교수는 “이건 필기하지 말라”면서 “본인의 사이즈만 알고 있으면 된다”는 등의 얘기를 했고, 이 강의를 듣던 여학생들의 얼굴은 붉게 상기됐다. 강의를 듣던 여학생 중 한 명이 학교 성폭력 상담센터에 이 내용으로 상담했지만, 사건화하지 못했다. 상담센터 관계자는 “학생은 신고하고 싶다고 했지만, 신고를 학기가 끝난 뒤로 미루겠다고 말하고 상담만 받고 돌아갔다”면서 “학점에 손해가 갈까봐 두려워서였다고 했다”고 말했다.
서울 모 대학 무용과에서는 겸임강사인 B씨가 지난해 8월 이 학과 3학년 C씨에게 술을 먹여 정신을 잃게 한 뒤 모텔에서 성폭행했다. B씨는 같은 해 4월부터 7월까지 같은 과 4학년 D씨에게도 “말을 듣지 않으면 무용대회에 나가지 못하게 할 수 있다”고 협박해 수차례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 C씨가 B씨를 경찰에 고소하면서 이 같은 사실이 드러났고 B씨는 강간, 강간미수, 피감독자 간음 혐의로 기소됐다. 하지만 학교측은 이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무용과 교수인 이 대학 교무처장은 “성폭행 사건이 발생했는지 몰랐다”고 해명했다.
서울의 다른 대학에서는 모 교수가 수업시간과 이메일, 휴대폰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성희롱 발언을 한 것에 대해 한 여학생이 문제를 제기했다. 이 여학생은 처음에 가해자가 전공과목 담당 교수였던 탓에 교수의 처벌보다는 자신이 해당 수업을 듣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 대학 상담센터는 이에 대해 이 학생이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학습권을 포기하는 것보다는 다른 방법을 권했다. 결국 해당 교수는 피해 학생이 졸업할 때까지 전공 강의를 맡지 못하도록 하고, 학내에서 이 학생이 있는 곳에 가지 못하도록하는 ‘접근 금지 명령’을 내리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 최근 3년간 국공립대 30곳 중 6개 대학서 8건 발생 = 대학 내 성희롱·성폭력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성희롱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더라도 대학 내에서 비공개로 처리되고 있고 처벌도 관대해 피해자가 신고를 꺼리는 등 숨겨지고 있다. 가해자가 교수일 경우 우월적인 지위 때문에 피해자인 학생이 스스로 사건화되는 것을 꺼리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
서상기 한나라당 의원이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제출 받은 ‘2006~2008년 국공립대 전임교원 징계사유 및 처리 결과<표>’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 간 30개 국공립대 중 6개 대학에서 8건의 성희롱·성폭력 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형별로 성희롱이 6건으로 가장 많았고, 강제추행 1건, 불특정 다수에 대한 성폭력 1건 등이었다. 이로 인해 3명의 교수가 해임됐고, 4명은 정직 3월, 1명은 정직 3월 처분을 받았다가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서 정직 1월로 감경됐다.
서울대 성희롱·성폭력상담소 문은미 상담원은 “노골적인 건 극히 드물고 예전보다 교수들도 훨씬 더 민감해졌다”면서도 “교수가 가해자인 경우는 1건이라도 있는 것 자체가 교육환경에 문제가 된다. 피해자들이 왠만하면 참고 대응하기 힘든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 성희롱 문제 비공개 처리, 무관심도 문제 = 서울대 성희롱성폭력상담소는 지난 1993년 이른바 ‘우조교 사건’에 따라 1999년 개소했다. 이 사건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직장내 성희롱 사건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6년의 법정 공방 끝에 가해자인 교수가 피해자에게 500만원을 배상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이 사건 이후 교수들의 성희롱이나 성폭력에 대한 인식 수준은 높아졌지만, 최근까지도 성희롱 사건이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서울대 모 단과대 시간강사가 지방에서 열린 학과 MT 술자리에서 여학생을 성추행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지만 사건이 드러나지는 않고 있다.
또 대학마다 교수와 직원 학생 모두 연간 1회인 1시간짜리 온라인 성교육을 의무적으로 이수하도록 하고 있지만, 신규 임용 교수나 매 학기 재임용 받아야 하는 시간강사를 제외한 다른 구성원들은 이런 교육에 무관심하다. 서울 모 대학 관계자는 “시간강사와 최초 임용 교수들은 임용되기 위해서 교육을 받지만, 그 이후에는 절반 이상이 교육을 받지 않고 있다”면서 “성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 무고죄나 명예훼손 등 역고소 대책도 필요 = 성희롱·성폭력 사건이 법정 소송으로 확대될 경우 피해자의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증거를 찾기가 힘들다는 측면도 있다. 특히 가해자가 무고죄나 명예훼손 등 역고소에 대한 대책 마련도 시급하다.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지난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상담 사례를 분석한 결과 피해자가 무고나 명예훼손으로 역고소되는 사례가 매년 10건 내외로 꾸준한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성폭력상담소 관계자는 “이전에는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보복의 의미로 무고나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것에 비해 2008년에는 검사가 무고죄로 인지수사를 하는 경우도 2건이나 있었다”고 말했다.
명예훼손의 경우 벌금형이 내려지는 것이 보통이지만 무고죄의 경우 ‘죄질이 나쁜 범죄’로 취급되기 때문에 벌금형이라도 액수가 크고 실형을 살게 되는 경우도 있어 피해자가 불안감으로 재판을 아예 청구하지 못하는 사례도 나타난다. 또 가해자측이 합의를 종용하는 등 2차 피해도 심각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 성희롱·성폭력 문제에 관심 가져야 = 국내 초중고교와 대학 가운데 특히 대학들이 성희롱이나 성폭력 문제에 대한 관심도가 떨어진다는 것도 문제다. 여성부가 지난 2008년 성예방교육과 전담 창구 개설 등의 실적을 종합해 점검한 결과 391개 대학 중 성예방교육 부진기관은 23곳으로 5.9%였다. 초중고교와 특수학교 등 기타 학교시설을 포함한 전체 교육기관 중 부진기관 비율 2.6%보다 두 배 이상 높은 것으로 성 문제에 대한 대학의 관심도가 떨어짐을 보여준다. 또 고등교육법에 따라 모든 대학들이 성 관련 상담이나 고충처리를 위한 공식 창구를 마련할 것을 의무화하고 있지만, 전문대를 포함한 국내 대학 중 12.8%는 상담 창구를 만들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교수들이 주의해야 할 원칙 >
“강의계획서 또는 첫 강의서 문제제기 원칙 밝혀야”
대학 내 성희롱이나 성폭력 문제는 교수들이 몇가지 원칙을 지킨다면 상당 부분 줄어들 수 있다. 많은 부분 오해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교수가 공개적으로 원칙을 밝히고 학생들의 신뢰를 얻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선 학생과 1대 1 면담에 대해 다른 학생들이 알 수 있도록 공개적인 만남의 성격이라는 것을 알릴 필요가 있다. 또 자신의 개인적인 공간으로 심부름을 시키는 일도 괜한 오해를 살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강의 도중 나올 수 있는 성희롱 성폭력 발언을 미리 예방하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익명으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미리 말해 두면 도움이 된다. 강의계획서나 첫 강의를 통해 이메일 주소를 알려주고 강의 도중 불편함을 느낄 경우 익명으로 문제 제기하는 방법을 알려주면 좋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문제 제기를 받았을 경우에는 당황해서 문제를 덮으려고 하는 것은 오히려 문제를 키울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당사자의 얘기를 끝까지 잘 들어주고 자신의 의견과 달라 판단이 어렵다면 '더 생각해보자'고 말한 뒤 추후 얘기하는 게 좋다.
또 혼자 해결이 어렵거나 고민이 된다면 학내 성희롱·성폭력상담소에 중재를 요청하거나 상담하면 충분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익명의 문제제기를 받았을 경우에도 다음 강의 시간을 통해 공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해당 학생이 다른 학생과 함께 내용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안도감을 줘 사건이 크게 비화되는 걸 막을 수 있다.
또 이견이 있다면 얘기하되 최대한 그 학생으로 하여금 자신의 문제제기에 대해 공감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게 도움이 된다.
수업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한 농담이나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예를 들어 설명할 때 주의가 필요하다. 본인도 모르게 성에 대한 고정관념이 섞여 들어가 의도치 않게 성희롱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밖에 술자리를 하게 될 경우에는 만취하지 않게 마시도록 해야하며, 학생과 연구실에서 1대 1로 면담하는 경우에는 연구실 문을 열어두는 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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