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 사립대 친일행위 보고서에 ‘발끈’
정부 공식기구 친일행위진상규명위에 문제 제기
고려대·연세대·이대 등 설립자 명단 포함 반발
고려대 등 6개 사립대가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 위원회(이하 진상규명위)의 보고서에 발끈하고 나섰다. 고려대(총장 이기수)·상명대(총장 이현청)·서울여대(총장 이광자)·성신여대(총장 심화진)·연세대(총장 김한중)·이화여대(총장 이배용) 등 6개 대학 총장들은 지난달 30일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 보고서의 시정을 요구하는 청원서를 대통령과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에게 제출했다.
정부의 공식기구로 발족한 위원회의 보고서에 사립대학 총장들이 직접 문제제기를 하고 나선 것은 이례적이다. 이는 보고서가 친일인사로 규정한 명단 가운데 이들 대학을 설립하거나 발전에 기여한 인사가 다수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대학의 설립이 친일인사에 의해 이뤄졌다는 것은 이미지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일이다. 대학 입장에선 ‘설립의 정통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를 갖게 된다. 때문에 △설립자에 대한 예우 △학교 이미지 손상 등을 막기 위해 총장이 직접 발벗고 나선 것이다.
진상규명위는 지난 2005년 총 1052명을 조사대상자로 선정, 활동을 시작했다. 이중 9건은 이의신청을 받아들여 취소하고, 나머지 1043명에 대해 4년 6개월간 친일반민족행위 여부를 조사했다. 그렇게 해서 지난해 11월 27일 진상규명위가 최종적으로 친일행위자로 확정, 발표한 인사는 총 1005명이다.
진상규명위가 확정한 명단 중 6개 사립대와 관련된 인사는 김성수·유진오(고려대), 방응모·백낙준(연세대), 김활란(이화여대), 배상명(상명대), 고황경(서울여대), 이숙종(성신여대)씨 등이다.
진상규명위의 보고서에 따르면, 김성수 동아일보 설립자는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과 감사로 활동했다. 조선임전보국단은 일본의 황민화 정책에 선도적 역할을 했던 친일 어용단체다. 이 외에도 김 씨는 일제의 징병을 찬양하고 학병 동원을 독려했다는 이유로 명단에 올랐다.
김씨는 1932년 고려대(당시 보성전문학교)를 인수, 발전의 터전을 마련한 인물이다. 그의 손자인 김병관 전 동아일보 사장이 고려대 재단인 고려중앙학원 이사장을 지냈고, 김 전 이사장의 아들인 김재호 동아일보 사장은 현재 재단 이사로 재직 중이다. 고려대로서는 발끈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또 고려대 2~4대 총장을 지낸 유진오씨도 학병과 징병을 선동하는 연설과 기고문을 발표하고, 일제 황민화 정책을 선전했다는 이유로 명단에 포함됐다.
연세대는 방우영 현 재단 이사장의 할아버지가 명단에 올랐다. 보고서에 따르면, 방응모 조선일보 전 사장은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과 이사를 지내며, 일제 침략정책에 협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세대 총장을 지낸 백낙준씨도 명단에 포함됐다. 백낙준 전 총장은 기독교신문협회 이사 등을 지내며 시국관련 설교와 사설을 집필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화여대 초대 총장을 지낸 김활란씨도 명단에 포함됐다. 김 씨 역시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과 평의원을 지냈고, 일제의 학병제와 징병제를 선전·선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신여대 설립자인 이숙종씨도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참사 등을 지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일제의 징병·학병을 적극 주장하고, 조선 여성의 전쟁참여를 주장했다.
상명대 설립자 배상명씨도 조선임전보국단 부인대 지도위원을 지냈고, 일제 침략전쟁에 대한 협력을 주장했다. 일제 징병 등을 선전·선동한 이유로 명단에 포함됐다. 서울여대 설립자인 고황경씨는 국민총령조선연맹 부인지도위원,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 등을 지내며 일제의 징병제를 찬양한 것으로 알려졌다.
총장들은 “위원회의 보고서는 주요 사립대의 토대를 닦은 인사들을 일괄적 잣대로 무리하게 재단하고 폄하해 한국사회 발전에 미친 공헌에 대해서마저 부정적 판정을 내리고 있다”며 강하게 유감을 표명했다.
반면 진상규명위는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2조에 따른 입증가능한 구체적 행위를 기준으로 명단을 작성했다고 발표했다. 그 때문인지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4389명에 비해 명단의 규모가 작다.
진상규명위는 정부의 공식 기구로 발족, 4년6개월간 활동한 끝에 보고서를 내놨다. 때문에 공식적으로 친일인사를 선정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정부가 6개 대학 총장들의 시정 요구를 어떻게 처리할 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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