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과 도전의 21세기 10년을 보내고 새로 맞은 2010년. 앞으로의 10년은 과거 100년을 뛰어넘는 변화와 도전의 시대가 될 것입니다. 지금 대학은 미래를 위해 무엇을 고민하고, 오늘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짚어 보는 기획 시리즈를 마련합니다. <편집자 주>

대학가를 뜨겁게 달구던 사회 참여적 학생운동 열기가 2000년대부터 빠른 속도로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새로운 희망과 불확실성을 가슴에 품은 채 새로운 21세기를 맞았다. 그리고 즈믄해의 그 10년이 숨 가쁘게 지나갔다. 대학은 지난 10년간 많은 변화를 시도해 왔다. 그러나 우리의 고등교육은 아직 정상 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교육 관련 부처 장관이 끊임없이 바뀌고 그때마다 정책도 바뀌며 학생들은 ‘실험 쥐’ 신세가 됐다. 교육 백년지대계는커녕 한 치 앞을 못보고 중구난방의 담론만 무성하다.
김대중 정부는 1999년 3불 정책 유지를 위한 단단한 방어벽을 쌓았다. 고교평준화 정책도 고수해 나갔다. 입시지옥과 사교육비 문제를 해결하고, 대학 선택의 기회를 더 많은 학생들에게 폭넓게 열어 주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것은 노무현 정부를 지나 10년을 겨우 채워 가다 현 정부 들어 흔들리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3불 정책은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공언했지만, 실제로 그 방어벽은 누군가에 의해 이미 뚫리고 있다. 미래를 위한 원칙도, 적극적인 대응의 의지도 보이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외고·과학고·자사고는 실제로 고교 평준화 정책을 피해 가는 우회도로가 되고 있다. 일부 대학이 이미 입시에서 고교 등급제를 써먹었지만, 드러난 실체는 없다. 전국고교학력평가 결과도 공개돼 고교 서열이 노골화되고, 평준화 정책도 위협받고 있다.
이런 변화는 사회적 약자가 따라갈 수 없는 경쟁을 더욱 가속화하고 공교육을 파탄지경에 방치되게 만든다. 결국 가장 획기적인 해결방안으로 등장한 것이 입학사정관제다. 대통령은 “학원에 가야만 대학에 갈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고 자신 있게 공언하기까지 했다. 아울러 입학사정관제는 현 정부가 출범 초기부터 큰 목소리를 낸 학원자율화 정책과도 일치한다. 그렇지만 이미 외국에서는 오래전부터 시행해 오던 이 제도를 우리가 그동안 몰라서 도입하지 못한 게 아니다. 도입을 못한 이유는 따로 있다. 공정성·객관성·신뢰성이 보장될 수 있는 사회가 아니면 오히려 부작용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변화는 많았다. 2000년 초기부터 BK21 사업을 비롯해 대학에 대한 연구비 지원이 대폭 증가했다. 교과부가 주도해 나가는 정책 변화를 위한 지원금도 많아졌다. 이렇게 다양한 정책이 시도되고 국고지원도 늘었지만, 한국의 고등교육은 여전히 예측할 수 없는 임상실험 단계다. 뚜렷한 성과가 미흡하고 미래예측이 불확실하다.
앞으로 대학은 우리 사회가 떠안은 입시문제의 원죄부터 우선적으로 해결해 나가야 한다. 공교육 파탄은 결국 우리 국민의 인성교육과 도덕적 기반을 파탄시키는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학은 당장 눈앞에 닥친 진학인구 감소에 대한 해결책을 내놔야 한다. 이와 함께 대학 간 팽창주의와 생존경쟁 때문에 변질된 대학 본래의 기능도 회복해야 한다. 기초과학분야를 살리고, 인문교육의 중요성을 재인식해야 한다. 입시경쟁으로 황폐화된 학생들을 상대로 대학마저 인문학을 외면하면 철학적 빈곤과 인간적 정서가 메마른 지식인 양성소로 타락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 해 나가야 할 더욱 큰 과제는 대학사회 자체의 인적 자질의 변화다. 한국 대학은 세계 대학 속에서 경쟁력을 발휘해야 한다. 소위 ‘일류대학’마저도 세계 서열 100위권 안팎에 머무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 문제는 연구비만 많아진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대학사회 자체의 자질 변화가 전제돼야 한다. 일부에서 연구비 관련 비리가 터지고, 입시비리가 터지고, 표절문제가 터져도 그냥 넘어가고, 올바르지 못한 교수 발탁 관행이 여전하고, 선거 때만 되면 정치판에 나가서 놀다 오는 교수가 있어도 봐 주는 것이 한국의 대학이라면 우리가 세계 대학 속에서 연구·교육 성과로 상위권과 경쟁한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세계 일류는 주변 눈치 안 보며 몸 사리지 않고 오직 주어진 역할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주어진다. 노벨상 수상자도 이런 풍토에서만 가능하다.
우리나라에서는 그야말로 ‘학력이 국력’이고, ‘대학의 미래가 민족의 미래’라고 할 수 있다.
대학의 미래를 위해서, 나아가 국가의 미래를 위해 앞으로 10년은 참으로 중요하다. 우리 대학들은 반드시 안으로 묵은 질병을 모두 치유하고 세계 속에 우뚝 서야 한다. 우리 대학들은 무엇을 준비해야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