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통일은 밥상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신념을 갖고 있어요. 북한 음식을 널리 알리기 위해 여러 강좌를 개설할 계획입니다. 특히 탈북자 교육에 힘써 남한에서 취업 경쟁력을 갖도록 돕고 싶습니다.”
탈북 여성 최초로 국내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애란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장의 말이다. 이 원장은 이번 학기부터 경인여자대학 식품영양조리학 교수로 강단에 선다. 이 원장은 현재 북한 음식을 연구하고 요리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북한 아이들의 영양 상태에 대한 연구도 병행하고 있다.
탈북자 출신으로 우리나라에서 박사학위까지 취득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고 이 원장은 털어놨다. 그는 “대학문화도 생소했고 북한에선 러시아어를 배웠기 때문에 영어도 정말 어려웠다”며 “처음엔 강의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6개월이 지나서야 겨우 말귀를 트였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영어”라고 고백했다.
이 원장은 석사논문을 작성하던 시기를 떠올리며 가장 고통스러웠다고 말했다. 지도교수에게 3번이나 전혀 내용이 없다는 지적을 받고 고민 끝에 새벽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고 털어놨다. 이 원장은 “새벽기도를 드린 지 38일 만에 하나님이 연구 모형을 보여 줬다. 그 모형 덕분에 교수의 허락을 받았다”며 “좋은 사람들 덕분에 논문을 완성시킬 수 있어 늘 감사할 따름”이라고 밝혔다.
이 원장은 어떻게 탈북을 결심하게 됐을까. 미국에 계신 할머니의 권유가 그 계기가 됐다고 한다. 이 원장은 “전쟁 시기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월남했기 때문에 북한 내에서 출신성분이 나빴다”며 “이런 가정 배경 때문에 지난 1997년 미국에 체류 중인 할머니의 권유로 탈북했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평양에서 태어났지만 출신성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10세 때 산간오지로 추방당했다. 원래 꿈은 통역관이나 기자였지만 출신성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공계를 지원해 식품공학을 전공하게 됐다고 말했다.
“되돌아보면 식품영양학을 전공하게 된 건 운명이었던 것 같아요. 또 어머니는 북한에서 28년간 국가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고급 요리사로 일하셨습니다.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북한 음식을 소개하고 한식을 산업화·세계화시키는 데 앞장서고 싶어요.”
북한에서 대학을 다닌 이 원장에게 북한 대학의 특징에 대해 설명을 부탁했다. 이 원장은 “북한 대학에선 수강신청이 없다.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국가가 정해 주는 과목만 수강하고 학교에서 정해 주는 전공을 선택해야 한다”며 “대학 재학 기간 중 6개월간의 군사훈련 기간이 있다. 1년에 120일간 농촌지원 전투에도 동원돼야 한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대학과 가장 큰 차이점으로 이 원장은 방학을 꼽았다. 북한 대학의 경우 방학이 한 학기에 기껏해야 1주일에서 열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근엔 식량이 부족해 식량방학이 주어진다고 덧붙였다.
이 원장은 마지막으로 탈북자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탈북자들이 점차 증가하고 있고 가까운 시일 내에 10만 명에 달할 것이라며 이들을 포기하지 말라고 호소했다.
“탈북자들이 남한에 정착하기까진 눈물겹도록 어려운 점이 많아요. 지금 겪는 어려움은 차후 통일 조국에서 겪게 될 진통과 아픔, 고통일 것입니다. 통일 조국의 미래를 위한 예비시험이라는 관점에서 탈북자들을 따뜻하게 배려하고 품어 주었으면 좋겠어요.”
한편 이 원장은 북한 신의주경공업대학을 졸업한 후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이학(식품영양학 전공) 석·박사학위를 취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