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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수첩]졸업유예라는 최면
한용수 기자(대학팀장)
대학들이 졸업유예제를 속속 도입하고 있다. 졸업을 앞두고도 취업하지 못한 학생들의 호응도 크다. 취업시 졸업생보다 재학생 신분이 더 유리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취업난을 반영하듯 이 제도는 올해에도 성황을 이루고 있다. 국립대와 사립대 할 것 없고 서울의 유명 사립 Y대 등도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제도의 효과는 일종의 최면과도 같다. 졸업하고도 취업하지 못해 ‘백수’가 될 운명임에도 불구하고 제도를 통해 재학생 신분이 되고 백수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병에 걸린 환자에게 의사가 치료할 생각은 하지 않고 “당신은 병에 걸리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까.

이 제도의 효과를 예상할 때 앞서 시행된 학점 포기제도의 효과를 점검해 볼 필요도 있다. 부족한 학점을 만회하려는 노력은 인정해줘야 하겠지만, 학점 인플레가 만연했고 기업들은 학점을 아예 보지 않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취업하지 못한 학생 누구나 졸업유예를 선택한다면 비슷한 결과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우려된다.

졸업유예제가 학생들에게 취업에 대한 압박감을 잠시 덜어 줄런지는 모른다. 그러나 대학이 앞장서서 학생들의 졸업 미루기를 부추기는 모양새는 교육기관으로서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이 제도에 드는 비용을 차라리 취업 지원에 사용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특히 대학이 졸업생의 취업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 보다는 감추려 한다는데 문제가 크다. 대학 입장에서는 손해 볼 것 없는 장사와 같다. 미취업 학생 모두가 졸업유예를 선택한다면 취업률 100%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대학들이 내심 지표상의 취업률 상승을 바라고 있지나 않은지 묻고 싶다.

이 제도가 성행하는 이유는 정부도 문제 삼지 않기 때문이다. 교육과학기술부 관계자는 “법에 어긋나지 않지만, 큰 민원이 불거지면 전수조사 해 관련 지침을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대학이나 학생 누구도 문제 삼기 어렵다는 걸 감안하면 정부가 학생들의 졸업미루기를 방치하게 되는 셈이다.

‘플래시보 효과’라는 게 있다. 환자가 의사나 약의 효능을 신뢰한 나머지 가짜 약에도 치료 효과를 본다는 것이다. 가짜 약이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결국은 사기와 다르지 않다. 졸업유예제가 대학들에게는 취업률 상승을 학생들에게는 백수가 아니라는 최면을 걸고 있는 건 아닌지 의문이다.
한용수 기자 (unnys@unn.net) | 입력 : 10-02-01 오전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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