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T형'종합대'냐 칼텍형'특성화'냐
과학기술계 대학 ‘4大 4色’ 발전방향 모색
KAIST “세계와 경쟁할 규모” 강조, 포스텍 “소수정예 고수”
GIST 올해 학부생 100명 첫 선발, 울산과기대 “융합교육”
‘MIT’냐 ‘칼텍’이냐? 국내 과학기술대학의 지향점이 종합대 수준으로 규모를 키우는 방향과 소수정예로 교육·연구의 특성화를 이루는 쪽으로 갈리고 있다. 전자가 MIT 모델이라면 후자는 칼텍에 해당한다.
1861년 설립된 MIT는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종합대학으로 변모했다. 1950년대 이미 인문사회대학과 경영대학을 설립하고, 1977년엔 보건의료대학도 갖췄다. 때문에 이공계뿐만 아니라 경제학 분야도 시카고대와 함께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있다. 학부생은 4172명, 대학원생은 6048명으로 칼텍에 비해 4~5배 가량 규모가 크다.
반면 칼텍은 자연과학과 공학에 중점을 두고 소수정예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2008년 기준 학부생은 921명, 대학원생은 1205명이다. 특히 학부과정은 학생·교수 비율이 3대 1이 때문에 밀착교육이 가능하다.
양 대학은 세계 공과대학 순위에서 수위를 다툰다. MIT가 ‘더 타임스’ 세계대학 평가에서 2008년 2009년 모두 1위를 차지했고, 칼텍이 4위와 5위를 기록했다. MIT가 부동의 1위를 고수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음에도 불구하고 노벨상 수상자를 28명이나 배출 한 칼텍의 경쟁력도 만만치 않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규모’를 강조하는 KAIST는 MIT 모델을 지향한다. 이미 경영대학과 문화과학대학을 갖춘 KAIST는 연구병원과 의과대학 설립도 희망하고 있다. 연구병원과 의과학대학원 설립을 계획 중인 세종시에는 장기적으로 의대 설립을 고려중이다. 이에 대해 최근 정부로부터 부정적인 의사를 타진받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의대 설립에 대한 희망을 버리진 못했다. KAIST 고위관계자는 정부의 세종시 발표 직전 “장기적으로는 의과대학을 설립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그래야 의과학대학원과 연구병원에 대한 인력수급이 선순환구조를 이룰 것”이라고 밝혔다.
KAIST가 의대 설립을 희망하는 이유는 BT연구와 재정확충 때문이다. 서남표 총장은 사석에서 “향후 과학기술분야에서 시장 규모가 가장 커질 분야는 BT”라고 밝힌 적이 있다. 연구병원과 의대 설립은 세계적인 이공계 대학을 지향하는 KAIST로서는 포기하기 아까운 부분인 셈이다.
KAIST는 교수·학생 수에 있어서도 ‘규모’를 강조한다. 양지원 대외부총장은 “현대의 기술분야가 워낙 세분화 돼 있고, 연구 인력이 많을수록 세계적인 연구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학생 수도 중요하지만 교수 수도 중요하단 얘기다. 그는 “세계 일류대학은 교수대 대학원생 비율이 5대 1, 6개 1을 넘지 않는다”며 “반면 KAIST는 8~10대 1에 가까운데 이렇게 되면 좋은 연구결과는 나올 수 있어도, 개별 연구지도가 줄어들어 학생들은 오히려 불이익을 받는다”고 밝혔다.
반면 포스텍은 칼텍 모델을 지향한다. 학생 규모도 칼텍과 같이 1000명 안팎이다. 이진수 교무처장은 “학부 입학정원 300명 규모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며 “소수 정예를 고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그는 “포스텍은 설립할 때부터 칼텍을 모델로 했다. 칼텍은 재학생이 900명 정도 임에도 세계적인 대학이 됐다”고 덧붙였다.
포스텍은 소수 정예를 고수하면서 2020년 세계 20위권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최근 포스텍이 정년보장 심사에서 탈락한 교수들에 대해 재임용을 거부키로 한 것도 이런 목표를 위해서다. 이재성 교학부총장은 “교수들이 부교수 승진과 정년보장 심사에서 탈락하면 1년간 유예기간을 준 뒤 곧바로 퇴출시키기로 했다”고 밝혔다.
승진 심사기준도 미국 하버드대 수준으로 강화된다. 앞으로 정년보장 심사 대상교수는 자신과 유사한 전공분야에서 세계 20위권 대학 교수들과 업적·능력을 비교 평가받아야 한다. 기존 심사기준이 계량화된 업적 평가였기 때문에 세계적 역량을 평가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포스텍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또 하나의 도구는 ‘영어’다. 포스텍은 올해 신학기부터 학내 모든 강의와 회의를 영어로 진행하기로 했다. 이는 국내 대학이 영어권 대학에 비해 세계대학평가에서 불이익을 받는다는 지적 때문이다. 한 포스텍 관계자는 “홍콩과기대가 18년 전 포스텍을 벤치마킹하며 설립했지만, 세계 랭킹 35위에 올라있다”며 “이는 영어권 국가 대학이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졸업생들이 세계무대에서 활약하고, 교수들이 영어로 된 연구물을 내놓는데 불편함이 없어야 도약이 가능하단 얘기다.
광주과기원(GIST)도 MIT보다는 ‘칼텍’이 벤치마킹 대상이다. 다만 올해부터 대학원 중심 대학을 탈피, 학부생 100명을 선발하는 게 눈에띄는 변화다. 이는 이공계 인재를 미리 선점하려는 포석으로 해석된다. 국가적으로도 의대 등으로 빠져나가는 과학기술 인재를 흡수한다는 이점이 있다. 대학으로선 ‘수도권 쏠림’ 현상 등으로 대학원 입학자원의 질이 낮아지는 점을 보완할 수 있다.
한원택 기획처장은 “전국의 과학고 졸업생이 매년 2000명 정도다. 이 가운데 절반이 KAIST와 포스텍으로 진학하고, 나머지는 의대와 일반대로 진학한다”며 “의대와 일반대 진학 학생들 중 우수한 이공계 인재를 미리 뽑아 국가 과학기술 인력 수급에 보탬이 될 생각”이라고 밝혔다.
GIST는 교수 1인당 논문 인용 수에서 아시아 최고를 자랑한다. ‘더 타임스’ 세계대학평가에서 이 부문 세계 14위, 아시아 1위를 차지했다. 이런 연구력을 토대로 학사과정 학생을 선발, 석·박사과정과 연계시킬 생각이다. 한원택 처장은 “신입생들은 무전공으로 입학해 3·4학년 때 전고을 선택하게 된다”며 “전공을 선택한 학부생과 기존 대학원생이 같은 과목을 들을 수 있게 해 상호 학문적 자극을 받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국내 최초 법인화 국립대로 출범한 울산과기대는 연구와 대학원 교육은 MIT, 산학협력은 조지아텍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그러나 학부교육에 있어선 올린공대를 지향한다. 정무영 부총장은 “울산과기대만의 독특한 학부교육은 융합전공”이라며 “각 학부의 3~4개의 큰 트랙을 두고, 학부생들이 서로 다른 학부에서 희망하는 트랙을 선택토록 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기전자 쪽의 한 전공을 선택한 학생이 기계공학 분야의 다른 전공을 선택해 자연스럽게 융합교육을 유도하는 것이다.
울산과기대는 인문소양 교육도 강조한다. 문학개론 철학개론 등 틀에 박힌 개론식 수업보다 새롭게 디자인 한 인문학 수업을 듣게 한다. 과목명도 ‘문학과 창의성’, ‘창의성과 예술’로 정해 학생들의 창의력을 높이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정무영 부총장은 “과거처럼 기술만 배워서는 성공하지 못한다”며 “중요한 원천기술을 개발하려면 인문학적 소양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사람을 이해해야 사회가 필요로 하는 기술을 창안하고 개발할 수 있다는 얘기다.
얼핏 보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과학기술대학들의 발전방향은 ‘4인 4색’을 띄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들 대학의 공통 관심사는 우수 학생·교수 확보와 연구력 제고에 있다. 또 교수업적 평가를 강화하고, 영어강의를 전면화 하고 있다. KAIST는 2006년 서남표 총장 취임 후 영어강의를 강화하고 있고, 울산과기대와 GIST는 개교 이래 영어강의를 전면화 했다. 또 인문·융합 교육도 과학기술대학의 새로운 방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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