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회담 틀과 미국과 북한의 ‘직접대화’를 병행해야 합니다. 북미간 직접대화는 북한이 고 김일성 주석 때부터 일관되게 제기해온 문제입니다. 미국과 직접 만나 모든 이슈에 대해 실질적 협의를 하겠다는 거죠. 물론 한국도 참관자(observer) 역할로 참가해야겠죠.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서는 북한과의 1:1 대화를 포함한 외교 정상화가 우선돼야 합니다.”
지미 카터(Jimmy Carter) 전 미국 대통령은 한국과 미국이 북한과의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주문했다. 그는 23일 고려대에서 명예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열린 ‘북핵과 한반도 평화(A nuclear north korea and peace in the korean peninsula)’ 주제의 강연에서 한·미가 북한에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비핵화 원칙에 대한 토론을 전제로 ‘제한 없는 대화’를 제안했다. 그는 “한국과 미국이 먼저 행동해야 북한도 반응할 것”이라며 “6자회담을 핑계로 북한과 소원한 관계를 지속해서는 안 된다. 직접대화 통로를 확보하는 등 용기있는 외교적 노력이 필요할 때”라고 말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이 같은 판단의 근거로 북한의 정치상황을 들었다. 그는 “북한은 이미 수십년 동안 고립 상태를 겪어왔다. 때문에 새로운 봉쇄조치에 큰 압박감을 느끼지는 않을 것”이라 분석하고 “부시 정권 이후 북한은 미국이 선제공격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크다. 북한이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려운 상황이므로 한·미가 먼저 움직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북미간 직접대화와 직접협상은 이미 2005년과 2007년에 북한 고위 관료들과 미국이 직접 합의한 내용”이라며 “제안을 받아들일지는 북한이 결정할 문제지만, 직접대화에 나서는 것은 미국의 몫이다. 한반도 비핵화와 북미관계 개선을 위해 손해 될 일이 없는 만큼 합의한 사항을 실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1994년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탈퇴해 북핵 위기를 맞았을 때 방북한 당시의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고 김일성 주석과 만나 남북정상회담 약속을 이끌어냈었다.
카터 전 대통령은 “한반도와 인연이 깊지만 1994년 6월이 가장 깊은 인연을 맺은 때”라고 떠올렸다. 그는 “당시 미국 고위 관료들은 북한과의 직접대화를 꺼렸다. 김 주석의 긴급요청을 받았을 때 나 또한 주저했지만, 무력충돌 방지를 위해 방북 제의를 받아들였다”면서 “한국전쟁 이후 처음으로 중국을 경유하지 않고 판문점을 지나 평양으로 갔다”고 회상했다.
그는 “나는 원자력 엔지니어 출신이라 핵 문제에 대해 자세히 논의할 수 있었는데, 김 주석이 모든 사안에 대해 경청하고 또 잘 알고 있는 것에 놀랐었다”고 말했다. 이어 “김 주석은 김영삼 대통령의 정상회담 제의를 기쁘게 받아들였고, 조건 없이 즉각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당시엔 실행되지 않았지만 이후 2000년 정상회담의 터전을 닦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전쟁이 아닌 외교’ 원칙을 확고히 해 북한에 믿음을 줘야 상황이 진전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고 김일성 주석이 강력히 제안한 직접대화 원칙을 지키지 않으면 한반도 상황은 나아지기 어려울 것이다. 미국은 북한에 적대 의사가 없음을 알리고, 북한 또한 핵사찰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역설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또 “북한 정권이 고수하는 원칙은 외부 정치세력이 개입하지 않는 것이다. 실질적 권력을 가진 군부에게 이 부분의 유연성을 기대하기는 더 어렵다”고 평가했다. 그는 “정권이 바뀌어도 여기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대화 원칙과 함께 북한 시민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이 계속돼야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풀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