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의경 칼럼
박의경
[박의경 칼럼] 전남대 정치외교학 교수
여론은 항상 옳은 것 아니다
여론 휘둘리지 말고 자신의 신념 따라야
20세기의 민주주의는 사실상 엘리트가 주도했다면, 이제 21세기의 민주주의는 대중이 주도하고 있다. ‘엘리트주의’가 막을 내리고 바야흐로 ‘대중주의(populism)’가 세상을 주도하게 됐다.
대중주의는 말 그대로 대중 중심주의다. 풀어서 말하자면,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는 방향으로 많은 것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소수 엘리트의 뜻에 따라 움직이던 세상이 이제 보통 사람들의 결정으로 변화하게 됐다. 20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민주주의가 이제야 진정으로 그 빛을 발하게 된 셈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일상에 매여 있는 소시민 한명 한명이 결정의 주체이자 대상인 셈이다. 즉, ‘내가 결정하고 내가 따르는 것이다.’ 사회계약론자 루소가 말하는 ‘치자와 피치자의 자기동일성’이다.
대중주의는 사회의 다양성을 추구하고 다원사회를 지향하는 현대에 가장 걸맞은 이론으로 보이기도 한다. 현실에서 대중주의는 ‘여론’이라는 이름으로 곧잘 등장한다. 특히 많은 분야에서 갈등의 마지막 해결방법으로 선거라는 방법을 채택하게 되면서, 여론·여론조사라는 용어는 이제 우리 사회에서 사안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으로 등장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결정을 할 때에,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구한다. 이러한 작업의 집단적 결과가 바로 여론이라고 하겠다. 즉, 나의 결정이 여론에 따라 움직일 수 있다는 결론이다.
나의 결정은 기본적으로 ‘나’라는 결정 주체의 판단에 근거해야 하는 것임에도, 나의 결정이 궁극적으로 타인의 판단에 근거하게 되는 도착적 상황이 발생한다. 나에게 영향을 주는 중요한 결정이 책임을 물을 수 없는 타인의 판단에 따라 이뤄진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필자는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현상이 집단적으로 발생하고 있음을 보면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실제로 내 판단과 생각의 근거와 증빙으로 여론이 제시되고 있음을 빈번하게 목도한다. 여론이 많은 사람들의 생각임에는 틀림없으나, 그러기에 언제나 옳은 것은 분명 아니다. 사회적 판단 기준이나 근거가 되기에 여론은 자의성·즉각성이 과도하고 객관성·신중성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여론의 향배가 선악과 정사의 기준이 되어서는 그 사회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운용될 수 없다. 따라서 여론과 판단에는 일정 거리가 존재하며, 여론이 판단되기 위해서는 별도의 검증장치가 필요하다.
대통령 선거를 포함한 모든 선거에서, 선거일에 임박하면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여론조사 결과에 따라 사람들이 흔들릴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여론 조작의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수년 전 미국에서 대통령 선거 직전의 여론조사, 당선 확정 후 여론조사, 당선 확정 일주일 후의 여론조사, 당선 확정 한 달 후의 여론조사에서 결과가 달라지는 현상이 일어남을 한 여론조사 기관이 실험한 바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보다 많은 사람들이 당선자 쪽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보인다는 결과였다. 인간의 불완전함과 자신감 결여로 인한 결과로 단순히 치부해 버리고 말 수도 있겠으나, 문제는 이러한 불완전한 여론의 결과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론은 여론이요, 내 생각은 내 생각이고, 옳은 것은 어떤 것이라는 다원적 사고가 자리 잡아야, 여론에 휘둘리지 않고 제 길을 가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많아지고, 위축되지 않아야 비로소 열린 사회는 형성된다.
여론의 판단은 그저 참고일 뿐, 내 인생의 주역으로 대체될 수는 없다. 타인의 의견에 휘둘리지 않는 내가 정립되어야 내가 주체가 되어 남의 수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는 일반시민 중심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활성화돼 지난날의 엘리트주의의 장점까지 포괄하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조건이다. 즉, 모든 사람의 엘리트화가 21세기 열린 사회의 전제조건이자 만인의 민주주의, 즉 참여민주주의로 나아가는 길이다.
박의경 칼럼 | 입력 : 10-04-05 오전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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