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 우리 문학사를 보면 남한 지역에 한정돼 대학에서 이것만을 우리의 문학으로 가르치고 있는데 이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임 = 평론가들이라면 그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되죠. 한국의 아이덴티티에 관한 많은 논의가 있는데 당의 힘을 빌어 통일을 이룬 신라시대의 문화는 우리의 문화라기보다는 외세에 의한 불교문화입니다. 단순히 비주체적 통일이었다는 정치적 차원이 아니라 백제의 서정짙은 문화와 고구려의 기상을 담은 문화 즉 우리의 토착문화가 이로 인해 소멸돼 버린 것이 무엇보다 큰 역사적 오점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합니다.
일제 침략을 통해 더욱 외세 의존적 문화가 되고 분단을 빙자해서 외세 문화가 토착돼 버린 현재의 한국 문화를 보면 더구나 신라권역 즉 남한의 경상도 문화 아니겠습니까? 이 탓에 우리는 지금 외세문화 의존현상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세태까지 낳게 됐죠. 대대적인 외과수술이라야만 주체성을 되찾을 수 있는 우리의 문화는 지금 중병을 앓고 있습니다.
김 = 결국 우리의 뿌리를 잃고 있는데도 외세 의존적 문화를 우리의 문화로 착각하고 있다는 말이군요.
임 물론 외세라고 해서 무조건 부정적으로 볼 건 없습니다만 수용해야할 문화가 아니라 타개해야할 문화를 받아들여 문학관을 변형시킨다는 게 문제입니다.
프랑스 문학사를 보면 철학과 역사, 과학, 정치 사상이 다 포함돼 있고 대학에서도 그것을 가르치고 있거든요. 우리의 경우는 이상하게도 가벼운 연애 소설과 연애 시 같은 오락적인 요소만을 받아들이고서 이것이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문학하면 우리 전통 문화에서 얼마나 좋은 것들이 많았습니까만 그런 것은 다 잃어버린 것이죠. 그런 과정에서 올바른 문학의식을 찾자는 움직임이 일제시대의 카프문학으로 나타났고 이들은 사실 당시 우리 문학의 주류를 이뤘습니다. 작품 양으로나 작가 수로나 분단이후 남은 우리 남한 문학은 4분의 1에 해당한다고 볼까요. 그 4분의 1 중 극소수가 청년문학가협회를 형성해 단독 정부구성의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옹호해주는 역할을 하게 되면서 관제문학이 되고 이것이 곧 순수문학, 순수문학은 교과서문학이 되었습니다.
김 = 이승만의 정치적 기반을 옹호하고 독재정부에 협력하는 역할을 했음을 청년문학가협회 회원이었던 조연현씨가 실제로 시인했죠.
임 = 그랬습니다. 30대의 젊은 작가들이 주축이 된 이 단체는 이승만 정부를 등에 엎고 당시의 교육과 문학과 예술을 완전 장악했습니다. 감수성이 충만한 중고등학교시절에 얻어진 문학관은 좀처럼 바뀌기가 어려운 것 아닙니까? 노벨상이라도 받을만한 작품처럼 배웠습니다.
분단자체도 비극이건만 분단을 조장하고 분단을 영구화하기 위해 민족의식을 왜곡했던 지식인, 그들의 문학작품들은 어떻게 보면 신라가 통일 후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를 포함해 그 이후까지 계속적으로 역사를 신라의 관점으로 제편하였던 것에 이어 분단의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담아내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민족적 비극이 아닐 수 없죠.
김 = 그 단체에는 공교롭게도 경상권 출신이 중심이에요. 김동리씨과 조연현씨도 그렇구요.
임 = 박목월 선생과 박종원 선생도 그렇습니다. 출신을 떠나서도 식민지말기에 등단 직후 친일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았던 때 친일을 주도했던 세력과 이승만 관계 하에 노골적으로 정부부처로 밀고 들어온 해외문학파가 우리 문학과 예술의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냈죠
김 = 그것이 여전히 우리 문화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거 아닙니까?
임 = 재생산되는 거죠. 이데올로기의 재생산이라는 것인데, 이것이 미당 신화와 김동리 신화를 만드는 계기가 됩니다. 우리 정치인들은 오로지 집권에만 관심을 가졌지 올바른 민족문화관 정립에 대한 자각이나 의식이 없었기에 그런 일들이 벌어진 것입니다.
선생님도 참여문학의 1세대이신데 민주화운동을 통해 지속적으로 변화를 꾀해왔지만 정치인들도 결국은 예전 왜곡된 문화속에서 성장했고 공부한 사람들 아닙니까? 뚜렷한 주체적 예술관이나 문학관이 정립되었을 리 없는거죠. 따라서 사회가 변화하고 민주화가 진척되었다고 하나 문화예술정책은 여전히 다를 바가 없습니다. 친일파 문학이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죠.
김 = 순수문학이 하나의 장르임은 분명하나 참여문학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은 일제시대에 현실기피나 일본에 동조한 세력이며 해방 후 단독 정부 수립과 독재정부 유지를 옹호했던 사람들이 아닙니까?
그런데도 우리 문인들이 정치와 사회가 달라진 지금까지도 그들을 왜 강력하게 견제하지 못하는가, 친일의 과오를 범한 한 문인의 사망 후 왜 한국 최고의 문화훈장까지 수여해야 했는가 하는 점이 참으로 문제입니다.
우리 민족문화의 정체성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 왜곡된 정체성 문제를 극복하고 어떻게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중요한 과제일텐데요.
임 = 65년이후 일본문화 개방이 실질적으로 이뤄져 타락한 자본주의 문화를 그대로 받아들이면서도 북한에 대해서는 철저히 외면하고 차단해 버렸습니다. 올바른 문화의식을 선도해야할 문화정책이 도리어 국민을 타락시키는 결과를 낳고 말았죠.
문화운동가들이 개방과 개혁을 주장해 왔지만 한번도 문화운동가의 주장이 제도권에 반영되지는 못했기 때문입니다. 의식을 가진 일부 문학가들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의식을 가진 매체가 거의 없고 있다고 하더라도 영향력과 보급력이 없으니 제도권 교육이나 매스컴이 받아들이지 않은 상태에서는 개혁이라는 것은 어려울 수 밖에 없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죠.
또 교육부나 문화부가 북한 문학가들을 해금시켰다고 해서 다가 아닙니다. 해금을 해도 아는 사람도 없고 의식적으로 찾아보는 사람도 별로 없습니다. 그동안 정부에 의해 옹호돼 온 작가들과 동등하게 경쟁을 해 온 것이라면 다르겠지만 그게 아니니까요. 그냥 묻혀버리는 겁니다.
김 = 우리 민족문화의 정체성을 찾아내고 확립하는 일이 시급하겠군요.
임 = 그렇습니다. 아무리 분단되었다고는 하나 광복된 나라에서 혹독한 식민지 체제 중에도 통용됐던 자랑스러운 우리 문학을 말살하려드는 것은 말이 안되는 것이죠. 해방직후는 몰라도 4.19 이후 60년대 중반부터는 정책적으로 서서히 풀어서 대중들 앞에 동등하게 나오도록 해줬어야 했습니다. 문화의식을 올바로 정립할 수 있었던 기회를 놓쳐버린 것이죠.
김 = 그런 의미에서 남한만의 지역적 울타리 안에서만 우리 문학을 보지 말고 북한과 중국, 일본 등지에서도 우리 민족을 말하는 모든 한국인의 문학에 대한 역사적 평가로 문학의 영역을 확대시켜야 겠군요.
임 = 저도 한국 문화를 한반도 그것도 남한만의 문화에 한정하는 것을 꾸준히 문제로 지적해왔습니다. 얼마전 한민족 공동체 문화 심포지움에서, 우리가 해외동포들의 문화활동에 대해 지나치게 무관심하고 무지하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김 = 일제치하에서의 검열된 문학에는 한계가 있지 않겠습니까? 도피하고 망명했던 사람들일지는 모르지만 이들의 활동은 한반도가 아닌 다른 곳에서라도 민족문학를 찾아가려고 노력했던 만큼 소중한 것이거든요. 지역문학에 지나지 않는 우리 문학으로서는 더더욱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고 보아집니다.
임 = 그렇습니다. 지리적인 한계 뿐만 아니라 성격면에서도 우리 문학은 지역 문학입니다. 중국 조선족과 러시아 고려인, 일본 동포, 재미교포 등 이들 모두의 문학이 우리에게는 중요할 수 밖에 없습니다. 질적인 면에서도 현재 우리의 문학에 못지 않은데다 민족적 현실을 보는 눈은 훨씬 우수하거든요. 우리 문인들이 반성해야 할 부분입니다.
이것을 수용하면 질과 양 모두에서 우리 민족 문학이 더 강력해질 뿐만 아니라 세계 문학계에서 우리 민족의 위상도 크게 높아질 것은 자명한 것입니다.
김 = 우리 민족 문학의 위상이라는 것이 자랑할 만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임 = 각국에서 베스트셀러도 나오고 있고 중국의 김학술 같은 경우는 중국어로 번역돼 크게 알려진데다 김달수, 이외성은 일본 내에서 알아주는 작가죠. 우리 작가들의 수준이 현지에서 1급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 만큼 정책적으로 국내 문학과 이들을 연계시키고 현지에서 지원해줘야 할 필요가 있는 겁니다. ‘한국 출신 작가 누구’ 라는 것이 얼마나 큰 영향력입니까?
김 = 그같은 효과는 수천 수백만 달러의 경제적 효과에 못지 않을텐데요.
임 = 국가에 대한 인상이 달라지는 거죠. 스포츠와는 또 다릅니다. 타고르를 탄생시킨 인도처럼 노벨문학상을 받는다면 문명화된 민족 문화로 긍지를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겁니다.
김 = 경제발전수준이나 스포츠 수준만을 떠올리곤 합니다만 사실 외국에서는 민족 문학 수준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거든요.
임 = 그렇습니다. 일본에서도 우리나라 사람이 아꾸다가와상 후보로 선정됨으로써 우리 조선민족에 대한 편견히 사그라드는 계기가 됐습니다. 결국 세월이 그만큼 흘렀기 때문이라기보다 우리 문화예술인들이 오랜동안 노력하고 활동해 온 힘에 의한 결과로 볼 수 있죠.
김 = 우리는 이들의 문학을 모두 우리 문학으로 수용하고 전체 속에서 우리 문학 또는 문화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면 안될 줄로 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