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한 늦봄 오후, 판소리 ‘사랑가’와 ‘사철가’의 한 대목이 대학의 합동강당 강의실을 채운다. 담당 교수는 강단에서 북채를 잡고 장단을 맞춘다. 학생들의 목소리 사이사이 “좋다”, “얼쑤” 같은 추임새도 집어넣는다. 설익은 목소리지만 학생들의 내공도 만만찮다. 여러 번 되풀이 부른 덕인지 ‘사랑가’와 ‘사철가’의 노랫말을 외워 부르는 학생들도 더러 눈에 띈다.
이 낯선 풍경은 전북대의 ‘전통음악’ 수업에서 볼 수 있다. 학생들은 매번 수업시간에 판소리 한 마당을 벌이고, 강단에 직접 나가 흥을 돋우기도 한다. “전주 사람이라면 판소리 몇 대목 정도는 곧잘 한다”는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 대목. 전북대생들도 20~30명씩 분반으로 나눠 전교생이 이 수업을 듣고, 한 학기 수업을 마칠 무렵엔 판소리 경연대회도 연다.
전북대는 지난 2008년 전국 최초로 교양필수 과목으로 ‘전통음악’ 강좌를 개설했다. 학생들은 판소리와 단소 중 하나를 택일해 수업을 들을 수 있다. ‘교양필수’ 과목이기 때문에 이 수업을 들어야만 졸업할 수 있다. 전북대생이라면 누구나 판소리 한 대목이나 단소 한 곡조를 부를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전북대가 이 수업을 개설한 데는 ‘소리의 고장’ 전주의 지역적 특성이 감안됐다. ‘남도소리’ 하면 전남 남해안 지역의 진한 전라도 방언이 연상되지만, 사실 판소리의 본고장은 전주다. 가사문학의 결정체인 판소리는 당시 호남 지방 정치·경제·문화적 중심지였던 전주에서 체계화됐기 때문이다. 일종의 콩쿨 격인 ‘전주대사습놀이’의 존재가 이를 뒷받침한다.
애초에 전북대는 ‘국악 감상과 이해’란 교양선택 과목을 운영했었다. 그러던 차에 젊은 시절 전주 천변에서 여러 국악공연을 관람했던 서거석 총장이 발벗고 나서 필수 과목으로 바꿨다. 학창시절 겪은 예술적 경험이 장기간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에서였다. 전주 한옥마을에 위치한 총장 관사를 리모델링해 ‘예술진흥관’으로 탈바꿈시킨 것도 이 연장선상에 있다.
특히 조통달, 김일구, 김영자 명창 등 이름난 소리꾼들이 수업에 직접 강사로 나서 눈길을 끈다. 무형문화재를 비롯한 도립국악원 교수 등 내노라 하는 전문가들이 학생들을 가르쳐 수업의 질도 높다. 전북대 관계자는 “학생들의 호응이 크다. 경연대회에선 다양한 레퍼토리를 판소리와 단소 연주로 소화해내 많은 관심이 쏠린다”고 설명했다.
이 수업이 높은 평가를 받는 더 큰 이유는 ‘아마추어 소리꾼’들의 저변 확대에서 찾을 수 있다. 정회천 전북대 교수(한국음악학)는 “사실 국악을 전공하는 학과보다도 대학 구성원들이 앞서 ‘전통음악’ 커리큘럼을 만들었다”며 “많은 학생들이 판소리나 단소 같은 우리 고유의 음악을 실제로 해보고 즐기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정 교수는 “전주는 판소리가 하나의 장르로 완결된 곳이다. 지역과 함께 하는 특색 있는 수업을 만든 셈”이라며 “학생들이 직접 판소리를 같이 해보고, 그 가치를 공유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젊은 세대에 대한 전통 문화 전수란 측면에서도 의미있는 시도”라며 “국악인의 한 사람으로 다른 곳에도 이런 수업이 확산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