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폐합 대학들 '하나 되기' 진통
논의 당시 제시했던 ‘약속사항’ 이행 여부 싸고 갈등
"본교와 차별,효과 미미"...인내심 갖고 소통해야
통폐합한 대학들 중 상당 수가 ‘후유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천신만고 끝에 물리적 통합에 성공했지만, 본래 남이었던 두 대학이 ‘한가족’이 되려면 해결해야 할 문제가 여전히 산더미다. 그러나 대학 간 통폐합은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한동안의 어려움을 감내하겠다는 각오 하에 내려진 결정인 만큼, 당초 목적을 이루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약속 왜 안 지키나?” VS “약속 어긴 적 없다”
통폐합 이후 대학들이 갈등을 겪게 되는 가장 주된 원인은 통합 시 했던 약속의 이행 여부다. 조건을 제시받았던 대학에서는 상대가 약속을 지키지 않아 속상하고, 제시했던 대학은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데도 상대가 알아 주지 않아 답답하다. 최근 이 같은 이유로 마찰을 빚고 있는 대학은 지난 2008년 통합한 경북대·상주대(현 상주캠퍼스), 전북대·익산대학(현 익산캠퍼스) 등이다.
경북대 상주캠퍼스 비즈니스경제학과 학생들은 졸업요건 규정으로 본교 졸업장을 받지 못하는 것이 부당하다며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지난해 6월과 올해 3월 두 차례에 걸쳐 승소했다. 판결을 맡은 대구고법 행정부는 “졸업요건 규정은 총장이 만들어야 하는 것인데, 권한이 없는 경북대 경제통상학부장이 제정했다. 또 통합과정에서 경북대가 상주대에 제시했던 규정과도 달라 무효”라고 판결했다.
2008년 3월 통합 당시 경북대는 상주대 내 비즈니스경제학과 등 3개 학과를 없애고 본교 경제통상학부 등과 협의해 졸업 특례규정을 마련, 기준을 충족한 학생에게는 경북대 졸업장을 주기로 했다. 그러나 실제 통합 이후 경북대 경제통상학부는 상주캠퍼스 학생들이 과목별 수강 인원의 15%를 넘지 못하게 하는 등의 제한을 뒀다. 이에 따라 상주캠퍼스 학생들은 수강신청을 못해 제때 졸업할 수 없는 위기에 처했다.
정영우 상주캠퍼스 비즈니스경제학과 학생회장은 “2심 승소 이후, 절차에 맞춰 경북대 총장이 졸업특례규정을 제정하고 수강인원 제한을 풀어 주기로 했다”며 “그러나 경북대에서 수강해야 하는 학점은 그대로다. 비즈니스경제학과는 대학 통합 시 폐과돼 현 재학생은 2012년까지 경북대에서 45학점을 수강해야 졸업할 수 있는데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경북대는 최대한 상주캠퍼스의 입장을 들어주겠지만, 수강학점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졸업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는 데다, 경북대로 입학하지도 않았고 수업도 듣지 않은 학생에게 졸업장을 줄 수는 없다는 말이다.
박경로 경북대 경제통상학부장은 “2012년까지 비즈니스경제학과 학생들은 △상주대 비즈니스경제학과 △경북대 비즈니스경제학과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등 3종류의 졸업장을 받을 수 있다. 이 중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졸업장을 받길 바라는 경우에만 본교로 와 수강하면 된다”며 “학생들은 경북대 경제통상학부로만 졸업할 수 있다고 알고 반발하고 있는데 아니다. 또 2012년까지 졸업하지 않은 학생은 경북대로 자동 편입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박 학부장은 “통합 시 제시했던 사항을 지키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하고 있다”며 “그렇지만 경북대에서 최소한의 수업도 듣지 않은 학생에게 졸업장을 줄 수는 없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전북대 익산캠퍼스에서도 전북대가 통합 당시 제시했던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전북대가 수의대를 익산캠퍼스로 이전하겠다고 했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익산캠퍼스 한 교수는 “전북대는 익산캠퍼스로의 수의대 이전을 통한 특성화를 약속한 바 있다”며 “그러나 현재 이전을 위한 움직임이 잘 드러나지 않아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북대는 계획대로 이전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서은경 전북대 기획처장은 “수의대가 옮겨 가려면 건물 증축, 동물병원 이전 등이 필요해 준비하고 있다. 기존 시설로는 당장 이전하기 어렵다”며 “익산대학으로 입학했던 학생들이 올해 졸업했다. 그동안 강의 등으로 인해 공사가 어려웠는데, 이제 본격적인 이전 작업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본교와 차별 마라” VS “통합 왜 했나”
본교와의 차별, 기대 이하의 통합 효과 등도 통폐합 대학들의 주요 갈등 원인이다. 2006년 전남대와 통합한 여수대(현 여수캠퍼스) 학생 50여 명은 지난달 21일 본교와의 불평등 해소를 요구하며 부총장실 점거 농성을 벌였다. 이에 앞서 전남대는 같은 달 3일 여수캠퍼스 리더로 박충년 부총장을 선임한 바 있다.
여수캠퍼스 관계자는 “여수캠퍼스 부총장 선임 권한이 본교에 있다. 여수캠퍼스의 리더는 여수에서 뽑아야 옳다”며 “이와 함께 학생들은 모집정원·복지·장학금·교원인력 등 모든 부분에 있어서 본교와 차별을 당하고 있다. 여수캠퍼스 구성원들이 느끼는 박탈·소외감이 상당하다”고 토로했다.
점거 농성 당시 박충년 부총장은 “직접 나서 여수캠퍼스 구성원들이 느끼는 불평등을 적극적으로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박 부총장은 취임 때도 “여수캠퍼스와 광주캠퍼스는 지리적 조건뿐 아니라 심리적 거리 때문에 기대만큼 소통·교류를 활발하게 진척시키지 못하고 있다. 양 캠퍼스의 중개자로서 모든 분야에서 만남과 소통, 그리고 상호 협력의 굳건한 버팀목이 되겠다”며 양 캠퍼스의 화학적 통합에 대한 의지를 밝힌 바 있으며, 현재 문제 해결을 위해 전남대 본부측과 논의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통합 효과가 미미해 갈등을 겪고 있는 대학도 있다. 강원대는 2006년 삼척대(현 삼척캠퍼스)와 통합했지만 긍정적 효과가 없어 학내 구성원들의 비판이 거세다. 실제로 강원대는 최근 3년간 전국 국립대 중 유일하게 통폐합 평가에 따른 정부 지원금을 삭감당했다. 또 양 캠퍼스 구성원들의 반발로 무려 13개에 달하는 유사·중복학과가 운영되고 있다.
강원대 한 교수는 “통합을 왜 했는지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대학 발전을 위한 길이라고 했는데, 전혀 효과가 없지 않느냐”며 “통폐합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답답하다”고 털어놨다.
또 삼척캠퍼스 관계자는 “삼척캠퍼스는 몇 가지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다. 신입생 등록률이 매년 상승하고 있고, 인지도도 상당히 높아졌다”며 “하지만 개별 대학으로 존재하다가 다른 대학으로 흡수됐다는 것에 대한 상처는 여전히 지울 수 없는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통폐합 불가피 … 인내심 갖고 ‘소통’해야
그러나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대학 간 통폐합은 앞으로도 불가피한 만큼, 불평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당장의 상황을 탓하기보다는 인내심을 갖고 양 대학이 하나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강원대 한 교수는 “통폐합 필요성에 대해서는 대다수 구성원들이 공감할 것이다. 통폐합을 피할 수 없다면, 좀 더 나은 방향을 모색하는 게 모두의 미래를 위해 좋을 것”이라며 “현재 많은 대학들이 표면적으로만 통합됐지 서로 간 교류·소통은 상당히 미진한 것으로 알고 있다. 서로의 입장을 헤아려 조금씩 양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 지방 한 대학 기획처장은 “그동안의 국립대 통합은 지역의 거점대에 소규모 대학이 흡수되는 형태로 진행돼 왔다. 이에 따라 통합 후 거점대는 돌봐야 할 식구가 늘었고, 소규모 대학은 갑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바꿔야 해 어려움이 많다”며 “단기간에 큰 변화를 이뤄 내려고 하기보다는 인내심을 갖고 천천히 무리 없이 바꿔 가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어 그는 “대학 구성원들은 통폐합의 본래 목적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며 “더불어 통합 시 양 대학이 약속했던 사항들이 잘 지켜질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엄격한 감독과 꾸준한 지원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 한국대학신문(http://unn.net)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