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과 미국에 있는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들이 자존심을 구겼다. 아직까지 남아있는 세계 금융위기의 여파로 영국과 미국의 명문대 학부 졸업생과 대학원 학위 취득자까지도 취업난 앞에서는 속수무책이기 때문. 영국에서는 임페리얼 칼리지 등 명문대 졸업생들이 취업난에 대출 받은 등록금 빚까지 떠안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도 취업난이 극심해지자 학부 졸업생들 상당수가 대학원으로 피난했지만 막상 학위를 취득해도 실업자 신세를 면치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 이처럼 혹독한 취업난에 영국과 미국의 대학들이 어떤 식으로 돌파해 나갈지 주목된다.
■ 영국 대졸자, 혹독한 취업난에 ‘시름’ = 졸업을 앞둔 영국 명문대 출신 학생들 중 절반에 가까운 45%가 직장을 구하기가 힘들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영국의 한 일간지는 여론조사업체 ‘High Fliers research’의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최근 이같이 보도했다.
영국의 명문 30개 대학 출신 1만 6000여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이번 조사에서 오직 36%만이 졸업 후 바로 취직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한다고 응답했다. 전체 응답자 중 26%는 대학원 진학을, 16%는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14%는 아직 아무것도 정한 것이 없다고 밝혔다.
이는 경기침체로 퇴직자가 증가한데다 지난해 직장을 구하지 못한 졸업자까지 쏟아져 나와 경력 없이 취직하기가 더욱 어려워진 상황이기 때문. 이에 슈퍼마켓 점원이나 콜센터, 레스토랑, 바, 공사현장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하는 졸업예정자도 수천 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특히 6명 중 1명은 구직경쟁이 이렇게 심할 줄 알았다면 대학진학을 아예 포기했을 것이라고 답했다.
여론조사업체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직장을 구하지 못한 구직자가 수천 명에 달한다. 졸업예정자들이 아무런 경력 없이 안정된 직장을 구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다”라며 “특히 역사·지리학·언어 등 예술·인문과학 전공자들의 직장 구하기는 더욱 어려울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 졸업자들은 미디어·교육·마케팅 분야를 가장 선호한다고 꼽았다. 이는 지난해 조사결과와 동일한 것으로 정보통신·공학분야 선호도는 지난해에 비해 각각 5%, 11% 씩 감소했다. 졸업자들이 희망하는 연봉은 평균 2만 2000파운드로 지난 2008년에 비해 3.1% 감소했다.
전공별 희망연봉도 차이를 보였다. 법학 전공이 가장 높은 2만 4800파운드를 희망했다. 예술·인문과학 전공은 1만 9700파운드로 가장 낮았다.
희망연봉은 줄어든 반면 졸업예정자들의 빚은 증가했다. 올해 대졸예정자들의 평균 부채는 1만 7900파운드로 지난해에 비해 2200파운드가 증가했다. 가장 많은 부채를 갖고 졸업하는 대학은 런던 임페리얼 칼리지 출신들로 평균 2만 5700파운드의 빚을 지고 졸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미국 대학원, ‘실업자 양산소’ 전락 = 미국의 취업난이 극심해지자 많은 학생들이 대학원에 진학해 박사학위 취득자는 사상최고를 기록했지만 대학조차 이들을 위한 일자리를 줄여나가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미국의 한 일간지는 대학들이 사상 최고로 박사 학위자를 배출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교직을 줄여나가는 등 고학력 실업자 양산을 심화시키고 있다고 최근 보도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 등으로 취업하지 못한 학생들이 대거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미국 내 박사학위 취득자는 지난 2008년 기준으로 4만8802명을 기록, 사상 최고치를 갱신했다. 지난 1970년 기준으로는 두 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이처럼 박사학위 취득자는 증가하고 있지만 정작 대학은 재정난 때문에 오히려 교직을 줄여나가고 있어 문제는 심각하다.
금융위기로 재정난에 봉착한 많은 대학들은 우선적으로 전임교수를 줄이고 시간강사직을 늘렸다. 교직 자체를 줄여나가자 박사들의 일자리는 점점 감소했다. 캘리포니아 주의 경우 대학들이 교수직을 10% 정도 줄이면서 1230개 이상 일자리가 사라졌다. 교직원 고용사정도 비슷해서 1970년대 78%였던 미 대학 내 풀타임 교직원은 2007년 51%로 급감했다.
미국 명문 캘리포니아대학(UCLA) 인지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엘레나 스토버씨의 경우 지난해까지만 해도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꿈을 키워왔다. 하지만 대학들이 재정난을 이유로 예산을 줄이자 교직으로 진출하는 희망은 물거품이 됐다. 결국 취업상담소의 조언으로 온라인 포커 사이트에 입문해 포커 게임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처지가 됐다.
대학 내에서 자리를 찾지 못한 박사학위 소지자들은 취업 시장에서도 찬밥처지다. 특히 인문학 분야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 현대언어협회(ALS)에 등록된 문학 박사 소지자 구인 목록은 지난 2년간 약 40% 감소해 최악을 기록했다. 2009∼10년 수학 박사를 위한 교내 일자리 역시 40% 정도 감소했다.
미 국립과학재단(NSF)에 따르면 공학 박사는 약 75%가 전공 관련 산업 등에서 일자리를 구했지만 인문학 분야 박사는 관련 비즈니스 취업이 3%에 불과했다.
이처럼 대학이 고학력 실업자 양성소로 전락할 상황이 되자 대학원 과정에 회의적인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005년 UCLA에서 비교문학 박사학위를 받고 3년간 실업자로 지낸 에린 하이먼씨는 “절대로 대학원을 가지 말라”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