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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학 50년을 말한다] ‘쌍쌍파티’에서 ‘보드카페’까지
문화 변천사를 통해 본 ‘한국대학 50년’
2003년 지금, 어느덧 반세기를 넘어선 한국 대학의 현대사를 되돌아본다. 1945~50년대의 해방과 전후 시대, 1960~70년대의 독재에 맞선 저항 시대, 1980년대의 민주화 태동 시대, 1990~현재의 변화의 시대를 거치면서 대학도 수많은 영욕의 사건을 겪어왔다.

이에 본지는 해방 후 미군정대위의 문교부 접수에서부터 최근 사이버아카데미 설립까지 대학가를 뒤흔든 주요 1백대 뉴스를 정리한 책자를 발행, 과거를 돌아보고 보다 나은 대학의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였다.

여기서는 1백대 뉴스 가운데 시대별로 문화 관련 뉴스를 모아 문화 변천사를 통해 ‘한국 대학 50년’을 되짚어 본다.

■대학, 현대사의 장으로 - 1945~50년대

해방과 함께 정권을 맡았던 미군정은 락카드 대위를 중심으로 문교 행정을 실시해 46년 ‘국립서울종합대학교 설립안(이하 국대안)’을 발표했으며 논란 끝에 서울대가 출범하게 됐다. 이어 보성전문(현 고려대), 연희전문(현 연세대) 등은 4년제 종합대학으로 승격했고 국립부산대, 국민대 등 국∙사립대학들의 설립이 붐을 이뤄, 대학의 현대사가 열리게 된다.

이 시기에 있어 또 하나 중대 사건은 바로 전시연합대학체제의 출범. 50년에 발발한 한국전쟁은 한반도를 폐허로 만들었지만 한국 대학의 행보만은 막지 못했다. 문교부는 51년 5월 4일 문교부령 제19호를 공포해 ‘대학교육에 관한 전시 특별 조치령’으로 유례없는 전시연합대학체제를 출범시켰으며 먼저 부산에서 전시연합대학이 발족하여 광주, 전주, 대전으로 이어졌다. 전시연합대학은 그해 9월 이화여대가 단독 개강을 하고 10월 중순부터는 부산대학교가 이탈하면서 52년 3월에 해산됐으나 이후 지방대의 모태가 되는 결과를 낳았다.

■대학 문화의 시작을 연 ‘쌍쌍파티’ - 1960년대

60년대는 박정희 정권의 독재와 그에 맞선 투쟁으로 대학가 또한 바람 잘 날 없던 시대였지만 6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대학축제로 대학에 본격적인 문화시대가 열리게 됐다.

당시는 쌍쌍파티가 가장 중요한 프로그램이었으며 특히 장안의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것은 이화여대 ‘쌍쌍파티’ 축제로 여기에 양복과 하이힐 차림으로 참석하고 싶어 애간장을 태운 남학생들이 상당했다. 하지만 이화여대생들의 '메인 파트너'는 육사생도들로 축제가 벌어지면 육사생도들이 대거 이화여대 캠퍼스에 등장해 한껏 위용을 자랑했다.

또 당시 여대 축제의 경우 빼놓을 수 없는 메인 행사는 바로 '메이퀸'이라 불리는 '학교 대표미인' 선발대회. 김활란 박사와 한신대 사회과학대학장을 지낸 김주숙 박사 등이 이화여대 메이퀸 출신이며, 80년대를 뒤흔든 사채시장의 큰손 장영자씨도 S대 메이퀸 출신이다. 하지만 이 행사는 학생과 동창들의 반발로 70년대 말 대부분 사라졌다.

한편 이 시기는 비틀즈와 존 레논이 한국 대학가에 상륙, 독재정권에 억압받았던 젊은 지성들에게 일종의 분출구 역할을 하기도 했다.

■닫힌 캠퍼스, 열린 미팅 캠퍼스 - 1970년대

70년대는 박정희 정권이 유신을 선포하는 등 우리나라 현대사 중 가장 독재와 억압이 심했던 때였던 만큼 대학문화도 우선적으로는 통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60년대부터 불어닥친 서구문화의 유입으로 70년대 초 명동과 종로, 신촌 등 도심과 대학가 주변에서는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통기타를 둘러멘 남학생과 미니스커트와 핫팬츠, 판탈롱 등을 착용한 여학생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으며 이에 박정희 정권은 ‘퇴폐적인 사회풍조를 일소한다’며 긴 머리의 남학생과 짧은 치마의 여학생들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경찰은 손에 가위와 자를 들고 단속에 나서 장발족의 경우 머리를 짧게 깍은 뒤 훈방하거나 이를 거부하는 경우 ‘경범죄’를 적용해 즉심에 넘겼고 미니스커트족의 경우 30㎝ 자를 들고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여성들을 잡아 세워 길이를 재 긴 치마를 입도록 종용하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장발족과 미니스커트족의 단속, 위수령과 휴업령 등으로 자유의 문이 굳게 닫혔던 70년대 의 대학가. 하지만 그 누가 알았으랴? 대학의 젊은 청춘들은 또 다른 열린 캠퍼스, 즉 미팅 캠퍼스로 모여들고 있었다는 사실을.

동숭동의 ‘학림다방’, 명동의 ‘초원다방’, 광화문의 ‘청자다방’ 등은 미팅 캠퍼스를 만들려는 대학생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았다. 입학기념 미팅에서 피보기 미팅, 줄미팅, 고고미팅, 그룹미팅, 팀미팅 등 갖가지 미팅이 등장하였고 캠퍼스가 정권의 압제로 황량해져감에 따라 다방 등을 중심으로 한 미팅은 교내집회보다 몇 십 배 성황을 이뤄 제 2의 캠퍼스를 방불케 했다.

또한 이 시기는 77년 9월 3일 대학생 출신 가수들을 배출한 대학인의 잔치 ‘대학가요제’가 첫 선을 보이기도 했다.

■당근의 회유, 대학가를 흔들다. - 1980년대

80년대는 전두환 정권이 국민들의 탈정치화를 부추기기 위해 문화적 회유책을 구사하던 시대였다. 당시 학생운동이 거셌던 대학가는 이러한 정책의 가장 큰 목표물이었다.

81년 5월 여의도 광장에서 ‘전국대학생 민속국악 큰잔치’라는 부제로 열린 ‘국풍(國風) 81’은 재야∙학생들의 강한 반발 속에서 치러진 대표적인 정권선전을 위한 문화행사였다. 5일 동안 열린 이 행사는 28일 개막행사를 시작으로 민속제, 전통예술제, 젊은이 가요제, 연극제, 국풍장사 씨름판, 팔도굿, 남사당놀이 등이 엄청난 인파가 동원된 가운데 펼쳐졌다.

또한 82년 1월 5일 밤 12시. 야간 통행금지가 시작된 지 36년만에 전방 접경지역과 후방 해안지역을 제외한 전국에서 통행금지가 해제되었다. 통금해제 후, 해방감을 만끽하고자 했던 청년학생들이 즐겨 찾은 곳은 심야극장. 이어 한 달 뒤인 2월 6일 첫 심야 상영영화인 ‘애마부인’이 개봉했다. 개봉 첫날 밀려드는 인파 때문에 극장 유리창이 깨졌고 지방에서 올라온 관객이 표가 없어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을 정도.

하지만 이러한 사실에 대해 당시 대학을 다녔던 학생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탱크로 광주를 깔아뭉개며 등장한 전두환 정권은 폭압과 자유화라는 양날의 정책을 썼다. 교복과 통행금지 폐지 그리고 두발 자유화는 전두환 정권의 선물이다. 충무로에 대한 전두환정권의 선물은 에로영화에 대한 검열완화였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우리는 참으로 그로테스크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낮에는 전두환의 폭압정치에 맞서 돌을 던지고 밤에는 전두환의 자유화 정책에 발맞춰 싸구려 에로영화를 보며 킬킬댔던 것이다.”

80년대 대학가에 등장한 또 하나의 문화적 화두는 바로 70년대 ‘아침이슬’이나 ‘늙은 군인의 노래’ 등의 민중가요가 80년대에 드디어 대학가에 들어서 대학문화의 하나로 자리 잡게 되었다는 점. 이는 87년 6월 항쟁으로 각종 금지곡들이 해금된 후 보다 본격화되었다.

■대학문화, 급격한 변화의 시대에서 - 1990년대~현재

90년대에 들어서 독재와 저항의 시대가 종식되고 변화와 세계화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대학문화는 이전 시대와 전혀 다른 면을 보이며 신풍속도를 만들어갔다. 락카페, X세대, 인터넷, 보드카페 등으로 대변되는 신세대 문화가 대학가를 강타한 것이 바로 90년대부터이다.

91년초 무렵부터 신촌을 중심으로 서서히 세를 형성하기 시작한 락 카페 문화는 90년대 초반의 새로운 문화징후로 떠올랐다. 비싼 돈 주고 나이트 갈 필요가 없도록 만드는 곳, 3~4명이 한바탕 열광의 밤을 연출하는데 드는 비용이 고작 2~3만원에 불과한 곳으로 통하게 된 락 카페는 젊은이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으며 대학로로, 강남으로 상권을 키워갔다.

헐렁한 힙합바지, 자유롭게 꾸며진 헤어스타일, 폭발적이고 열광적인 음악 등으로 대변되는 ‘X세대’. 이들이 처음 세상에 등장한 것도 90년대 중반이다. X세대의 등장으로 본격적인 세대논쟁이 촉발되었으며 ‘R세대(Red Generation)’, ‘N세대(Network Generation)’ 등 다양한 세대족 탄생의 문이 열렸다.

98년 이후 본격적인 사용이 시작된 인터넷은 대학가에 혁명적인 변화를 불러왔다. 온라인 수강신청에서부터 사이버 강의에 이르기까지 인터넷은 무한히 캠퍼스를 발전시키고 또 지속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최근 대학가에는 블루마블, 체스 게임 등을 선보이는 ‘보드카페’가 유행하는 등 대학가의 문화 시계는 지금도 숨 가쁘게 흐르고 있는 중이다.

정성민 기자 (news@unn.net) | 입력 : 03-10-13 오후 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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