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일본의 로스쿨이 위기를 맞고 있다. 미국의 로스쿨은 경제 악화로 인한 취업난이 ‘학점 거품’을 부추겨 정상적인 학사 운행이 어려워지자 일부 대학들을 중심으로 전통적인 학점 시스템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일본의 로스쿨은 도입 6년 만에 처음으로 문을 닫는 대학이 발생, 도미노 로스쿨 폐교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일본 법조계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미국과 일본의 로스쿨이 당면한 과제를 어떤 식으로 풀어나갈지 주목된다.
■ 로스쿨도 ‘학점 거품’ = 경제 악화로 인한 취업난이 미국 로스쿨의 ‘학점 거품’을 부추기는 현상이 만연하자 전통적인 학점 시스템이 변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미국의 전통적인 명문인 뉴욕대·조지타운대 등 최소 10개 이상의 로스쿨이 지난 2년간 학점을 취득하기 쉬운 쪽으로 학제를 개편해 왔다고 보도했다. 이러한 ‘학점 인플레’는 학생들의 취업을 돕고자 하는 목적도 있지만 실상 로스쿨 간 취업률 순위 경쟁과 대학의 명성 유지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로스쿨이 학생들의 학점 요구를 무조건 들어주는 부분도 없지 않다고 이 신문은 보도 했다.
미국 LA 지역의 로욜라 로스쿨의 경우 학생들이 취업에 유리하도록 평균 0.333 학점을 추가하는 방법을 써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로욜라 로스쿨에 재학 중인 새무얼 류(26) 학생대표는 “캘리포니아주 다른 로스쿨의 1학년 평균 학점은 3.0 이상인데 반해 로욜라 로스쿨은 2.667에 불과하다”며 “로욜라 로스쿨 학생들이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 학점 때문에 취업에 불리할 것”이라며 학점제 개편을 줄기차게 요구하고 나섰다.
학점 인플레뿐만 아니라 로스쿨 간 취업률 순위·명성 높이기 경쟁은 더 치열하다. 미국의 주요 대학인 듀크대·텍사스대 등은 자교 출신 졸업자를 채용하는 로펌에 일부 비용을 지불하는 방법을 쓰기도 하는 등 취업률 제고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실제 대학들은 학기가 시작되면 취업 상담부터 시작해 타 대학과의 경쟁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미국 내에서 학점 거품이 만연하고 학점 자체가 가진 신뢰성에 의문이 생기자 미국의 명문 로스쿨들은 학점 시스템 자체를 바꾸고 있다.
미국 내에서 최고로 꼽히는 예일대 로스쿨과 버클리대 로스쿨의 경우 점수제를 아예 없애버렸다. 대신 ‘PASS’와 ‘FAIL’ 만으로 평가하는 시스템을 도입했으며, 이는 오히려 로펌 취직에서 졸업생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평도 나오고 있다.
대형 로펌의 경우 이 같은 일부 로스쿨의 학점 시스템 개편에 대해 파악, 면접 과정에서 이를 감안하고 있으나 소형 로펌들은 아직까지 로스쿨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
시카고 로스쿨의 경우엔 기존 ‘A, B, C, D, F’로 이뤄진 학점 평가 방식과는 달리 학생들의 성적을 155~186점 사이에서 평가하고 있다. 새로운 평가 방식에 일부 로펌이나 대기업의 채용 담당자들은 아직 적응하지 못해 혼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일본 로스쿨, 도입 6년 만에 첫 폐교 사태 발생 = 일본의 법과대학원(로스쿨)이 사상 유례없는 위기를 맞고 있다. 로스쿨이 일본에 도입된 지 불과 6년 만에 처음으로 폐교하는 대학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는 일본의 로스쿨이 사법제도 개혁의 일환으로 지난 2004년에 도입됐지만 로스쿨 난립으로 인한 학생 수준이 크게 떨어지는 탓에 정원을 채우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올해 입학생이 단 한 명도 없었던 히메지돗쿄(姬路獨協)대 로스쿨은 내년부터 학생 모집을 전면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이 대학 법인은 최근 이사회를 열어 “내년에도 모집이 어려워 보인다”며 로스쿨 폐교라는 극약처방을 내렸다. 이 대학의 첫 로스쿨 폐교 조치로 일본 법조계 안팎에서는 도미노 로스쿨 폐교 현상이 이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효고(兵庫)현에 있는 이 대학이 처음부터 신입생이 적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2004년 처음으로 로스쿨 입학생을 모집했을 때는 316명의 신청자가 몰려들어 경쟁률만 무려 8대 1을 기록했다. 그러나 사법시험 합격률이 매년 크게 저조하자 지원자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이 대학은 로스쿨 수료자들이 처음으로 응시한 2006년 사법시험에선 합격자를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총 합격자는 불과 3명뿐. 이에 히메지돗쿄대는 지난해 문부과학성으로부터 “대대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처럼 일본의 일부 로스쿨이 존폐의 기로에 서있는 이유는 무엇보다 로스쿨의 난립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일본 로스쿨의 총 정원은 출범 당시 4000명. 그러나 이듬해엔 5800명으로 2000명 가까이 크게 늘어났다. 정원이 늘자 로스쿨 설치 대학만 74개교에 이를 정도로 난립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교육의 질 저하가 현실로 다가왔다. 로스쿨 수료자들의 낮은 사법시험 합격률도 로스쿨 폐교 사태를 자초했다. 이에 도쿄대·교토(京都)대 등 상당수 대학들은 정원을 지금보다 20% 감축하기로 했다. 정원 미달인 로스쿨들도 통·폐합에 박차를 가하는 등 다양한 생존 방식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