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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학 칼럼
이명학
한국대학신문 논설
[이명학 칼럼] 성균관대 사범대학장
政治人과 漢字成語
이명학 성균관대 한문교육과 교수·사범대학장
남아공 월드컵이 한창이다. 아르헨티나에 패한 허정무 감독은 "파부침주(破釜沈舟)의 각오로 남은 경기에 임하겠다"고 했다. ‘단지 사흘 치 식량만을 남긴 채 모든 솥을 깨부수고(破釜), 타고 온 배를 침몰(沈舟)시켜 돌아갈 길을 스스로 없애 버린’ 항우(項羽)처럼 죽음도 불사한 결연한 각오와 의지가 보였다. 그런 자세로 임해서 그런지 월드컵 사상 해외 첫 16강이라는 훌륭한 성과를 거뒀다. 이어 허 감독은 ‘결초보은(結草報恩)’하는 심정으로 우루과이와의 16강전도 후회 없이 치르겠다고 다짐했다. 이렇게 단지 네 글자의 한자성어로 자신의 비장한 심경을 군더더기 없이 강렬하게 함축적으로 잘 표현했다.

얼마 전 세종시 문제로 어수선한 정국 속에서 정치인들은 한자성어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치열하게 공방했다. ‘尾生之信(미생지신)’ ‘曾參殺彘(증삼살체)’ ‘蚌鷸之爭(방휼지쟁)’ ‘鷄肋(계륵)’ 등 자신에게 유리한 한자성어를 택해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면서 상대방을 궁지에 몰아넣으려 했다.

아마 우리나라 정치인 가운데 한문 문장과 한자성어를 가장 시의적절하게 사용한 사람으로 김종필 전 총재를 따를 이는 없을 것이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고 이듬해인 1980년 봄은 그야말로 민주화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다. 그러나 국민의 기대와는 달리 신군부가 장악한 ‘서울의 봄’은 민주화와는 거리가 멀 정도로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이때 김 전 총재가 언론에 발표한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이라는 다섯 글자의 시 구절(당나라 동방규의 시)은 당시 정국을 간명하고 정확하게 표현한 것이었다. ‘봄은 분명 왔건만 봄 같지 않다’, 즉 ‘민주화는 된 것 같은데 아직 느낄 수 없다’는 의미로 당시 암울했던 정국의 상황을 은유적으로 국민에게 알렸던 것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大道無門(대도무문)’은 모르는 국민이 없을 정도로 오랫동안 회자됐다. 지난 1997년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에 쓴 ‘有始有終(유시유종 :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다)’은 남은 임기를 잘 마무리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기도 했다.

이처럼 한자 성어는 단지 몇 글자로 당시 상황을 품위 있게 함축,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데 더할 수 없이 훌륭한 기능을 하곤 한다. 그러나 간혹 본의를 잘못 이해해 그르치는 경우도 있다. 2010년 새해를 맞아 각 정당 정치인들은 올해의 각오와 희망을 담은 한자성어를 발표했었는데, 어느 정당 대표는 대전 국립 현충원에 가서 방명록에 ‘騎虎之勢(기호지세)로 國運(국운)이 隆盛(융성)하게 하소서’라고 썼다. 아마도 호랑이를 타고 몰아가는 형세로 호방하게 나가자는 뜻으로 쓴 것 같다.

그러나 기호지세는 우리가 상상하듯 포효하는 호랑이 등에 올라타 호기를 부리며 기풍당당하게 달려 나간다는 뜻이 아니다. 아마 우리나라가 庚寅年(경인년) 호랑이 해를 맞아 기세 좋게 나가자는 의미로 쓴 것 같으나, 이 성어는 ‘호랑이 등에 올라탄 사람이 내려왔다가는 호랑이에게 먹혀 죽을 수 있으니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갈 데까지 가 보자’는 뜻이다. 즉 ‘일은 시작했으나 도저히 앞날의 상황을 예측할 수 없으니 기왕 시작한 일 해 보는 데까지 해 보자’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 성어는 ‘중도에 그만둘 수 없는 상황’ 또는 ‘내친 김에’의 뜻으로 쓰이니 ‘國運이 隆盛하게 하소서’라는 문구와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정치인이 한문 구절을 인용하는 것은 우리나라가 오랜 세월 한자문화권에서 살아 왔기 때문이다. 그래도 쓰려거든 상황에 어울리고 시대를 포괄하는 적절하고 쉬운 것으로 본뜻에 맞게 정확히 사용해야 하지 않겠나.
이명학 칼럼 | 입력 : 10-06-28 오전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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