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박사로 서울서 교수되기 불가능”
국내 대학의 교수임용 실태<2>
서울대·연세대·고려대 교수 10명 중 국내파 2명 뿐
대학들 임용 후 해외 네트워크 등 고려 ‘해외파’ 선호
“석사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할 때까지는 학벌에서 밀린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박사과정을 마치고 교수가 되려고 하자 ‘해외파’와의 차이를 심감하고 있다.”
김민호(가명·39)씨는 학부와 석사과정을 국내 최고 명문대에서 마쳤다. 잠시 국회의원 비서관 생활을 하다 다시 대학으로 돌아와 공부를 시작, 현재는 박사후과정(post-doc)을 밟고 있다. 그는 요즘 국내에서 딴 박사학위가 걱정이다. 교수가 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김 씨는 “해외박사학위를 선호하는 대학들이 많아 해외파와 경쟁하려면, 적어도 2~3배 많은 연구업적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진로에 대한 우선순위를 ‘지방대 교수’→‘국책연구소 연구원’→‘민간연구소 연구원’ 순으로 잡고 있다.
◆국내 박사, 대학교수 접고 연구원 행=서울의 명문 사립대 대학원 이지현(가명, 박사2년)씨도 마찬가지다. 대학 교수가 되길 원하지만, 국내 박사의 한계를 잘 알기 때문에 국책연구소 취업을 목표 정했다. 이 씨는 “교수로 나갈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스펙’이 안 되기 때문에 국책연구소나 해외연구소 취업을 원한다”며 “요즘은 해외박사가 워낙 많다보니까 해외파들도 지방대에서 교수로 경력을 쌓아서 (서울로) 올라오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국내 박사학위로는 교수되기가 어렵다는 말이 점차 ‘정설’로 굳어지고 있다. 특히 서울·수도권 대학 교수가 되기 위해선 해외박사 학위가 필수 ‘스펙’으로 받아들여진다. 실제로 본지가 서울대·연세대·고려대 인문사회계 교수들의 박사학위를 조사한 결과 국내 박사학위자는 20% 내외였다. 3개 대학의 교수 10명 중 토종 박사학위자는 2명 뿐이란 얘기다. 이번 조사서는 해당 대학 홈페이지와 <연합뉴스> 인물 DB를 활용했다.
연세대의 경우, 인문사회계열 전임교수 335명 가운데 파악 가능한 202명(60.3%)을 조사했다. 이 가운데 국내 박사는 37명 뿐, 나머지는 모두 해외박사였다. 국내박사 비율이 18.32%인 셈이다. 그마저도 22명은 국어국문학과(10명)와 법과대학(12명) 등 국내 박사가 통화는 분야에 집중돼 있었다. 그 외 학과에선 해외박사가 절대적으로 많다. 특히 경영대학과 영어영문·독어독문·노어노문·정치외교·행정·사회복지·문화인류·응용통계학과는 전원이 해외박사다.
고려대는 390명의 인문사회계열 교수 가운데 345명(88.46%)의 교수를 조사했다. 그 결과 국내박사가 68명으로 19.7%를 차지했다. 나머지 80.3%는 미국·독일·일본 등에서 학위를 따온 해외파다. 고려대도 한국사학과와 국문학과에 국내파(22명)가 집중돼 있다. 경영대학·불어불문·일어일문·언어·정치외교·통계학과 등은 해외파 일색이다.
◆SKY, 인문사회 교수 80% 가량이 해외파=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인 서울대도 국내 박사는 23%에 불과했다. 인문사회계 466명의 전임 교수 중 426명(91.42%)을 조사한 결과, 토종 박사는 98명에 불과했다. 나머지 328(77%)명은 모두 해외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서울대도 영어영문·불어불문·정치외교·인류학·회계학과 등에선 국내파 교수를 찾아볼 수 없다.
교과부에 따르면, 서울대 전체 교수 가운데 해외박사 출신은 50.4%에 이른다. 일본 도쿄대(5.2%)의 10배에 가까운 수준이다. 한국교육개발원의 ‘연도별 신규 임용교원의 국내외 학위 소지 비율’을 살펴봐도, 해외박사는 2000년대 들어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4년제 대학을 기준으로 2003년엔 30.9%에 불과했지만, 2005년 36.3%로 늘더니 △2007년 42.5% △2008년 43.9% △2009년 48.9%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교수가 되고자 하는 대학원생들은 해외유학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서울대 대학원 이정식(가명, 석사 2년)씨는 “박사과정은 미국에서 할 생각이다. 지금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도 미국으로 갈 생각을 하고 있다”며 “교수가 되려면 해외 박사학위가 있어야 하는 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고 밝혔다.
해외박사 출신이 비교적 적은 국문과조차 지도교수가 해외 유학을 권할 정도다. 서울 A대학 대학원 박상현(가명, 박사 1년)씨는 “교수가 되고 싶으면 아무리 국문과라도 해외 학위가 있는 게 좋다는 말을 지도교수에게 들었다”며 “박사학위를 마친 뒤 바로 강사로 뛰어들려하지 말고, 해외에서 공부를 하고 오는 게 교수되는 데 훨씬 유리하다는 얘기였다”고 전했다.
◆“국문과도 교수하려면 유학가라”=본지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고려대 인문사회계 교수 345명 가운데 해외파는 277명. 이 가운데 미국 박사가 71.5%로 단연 높았다. 이어 독일(11.9%), 일본(5.4%), 영국(4.6%) 순으로 높은 비율을 나타냈다. 연세대와 서울대도 미국 박사가 인문사회계 전체 교수 가운데 각각 67.82%, 69.81%를 차지했다. 해외박사 가운데서도 ‘미국 쏠림’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는 셈이다.
대학들이 해외 박사를 선호하는 이유는 크게 △선진화된 교육·연구 시스템에 대한 신뢰 △국제적 경험과 네트워크 △대학 인지도 상승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형규 한양대 교수처장은 “이공계의 경우 논문의 질적 평가로 교수를 채용하는 분위기”라면서도 “다만 임용 후 국제적 활동을 기대하기 때문에 해외파를 선호할 수는 있다”고 말했다. 교수로 임용한 뒤 해당 교수의 해외학회 활동이나 글로벌 네트워크를 기대한다는 말이다.
해외박사 출신의 미국 쏠림에 대해선 한 지방 국립대 교수는 “상대적으로 미국 박사가 엄격한 학사관리를 통해 학위를 수여받는다는 데에 대한 신뢰가 있다”며 “석·박사 과정에서 탈락하는 유학생도 많기 때문에 (미국박사에 대해) 박사과정을 체계적으로 밟았다는 믿음이 있다”고 말했다.
◆“자신들이 키운 박사 못 믿다” 비판도=이공계에선 해외 대학의 연구 시스템이 선진적이라는 점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한상준 중앙대 교무처장은 “아무래도 해외 유학에서 선진 연구시스템을 경험했다는 점을 평가하기 때문에 해외박사 출신이 교수채용에서 좀 더 유리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최근 몇년 간 국내 대학에서 교수 채용시 SCI 논문이 강조되는 것도 대학들이 해외파를 선호하게 된 배경이다. 아무래도 해외유학을 통해 영어에 익숙한 사람이 SCI 저널에 논문을 게재할 기회도 많기 때문이다. 서울대 박사후과정 김민호씨는 “학문분야에 따라선 SCI 보다 국내 등재지에 논문을 싣기가 더 어려운 경우가 있다”며 “그럼에도 국내파들은 해외 저널에 논문을 싣는 게 익숙지 않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불이익을 받는다”고 말했다.
대학이 자율적으로 해외 우수한 교수를 채용하는 것을 탓할 일은 아니다. 우수학생 유치만큼 우수 교수를 임용하는 것도 대학 발전의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대학들의 지나친 해외파 선호와 토종박사에 대한 차별에 대해선 비판이 많다. 세계적 대학과 경쟁할 역량을 갖췄다고 자평하는 대학들이 정작 자교가 키워낸 국내박사를 신뢰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서울대 대학원 관계자는 “교수들이 자기가 키운 국내 박사를 채용하지 않는 것은 결국 자신의 실력과 학사관리를 믿지 못 한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신하영 기자, 김재홍·조용석·이성희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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