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신문 홈 > 뉴스 > 평가

목록
프린트 스크랩
[창간기획]신뢰잃은 대학평가 공정성·전문성 확보 시급
주요8개大 교수협 이어 대교협도 ‘거부 성명’ 발표
가짓수 늘고 신뢰성 떨어져… 정보공시 도입 영향

대학평가의 위상이 추락했다. 순위 매기기에 지친 대학들이 앞장서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그간 대학평가는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최근 수년간 대학들에게 평가 결과 발표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순위 한 계단이 올라가고 떨어질 때마다 희비가 엇갈렸다. 사회적 평가와 직결될 뿐 아니라 학내 구성원과 동문들의 관심도 높아 평가 준비에 엄청난 시간과 인력이 투입됐다. 상황은 달라졌다. 순위 경쟁이 과연 대학경쟁력에 도움이 되느냐는 근본적 물음이 제기된 탓이다. 평가 지표나 기준의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인식도 확산돼 대학평가의 실효성 여부는 시험대에 섰다.

■ ‘평가 피로감’ 대학가 거부 반응 잇따라 = 14일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이하 대교협)는 ‘언론사 대학평가에 대한 입장’을 발표해 “대학을 서열화하는 평가에 협조하지 않겠다. 발표된 순위도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대교협은 평가의 △전문성·타당성 부족 △대학간 서열화·과열경쟁 조장 △결과의 상업적 이용 등을 근거로 들어 대학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의견은 처음 나온 게 아니다. 지난달 서울대·연세대·고려대 등 주요 대학들이 참여한 서울 8개 대학 교수협의체 연합회(이하 연합회)도 줄 세우기식 대학평가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내용보다는 시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간에도 대학들은 평가의 맹점을 지적했지만 공개적 반대 움직임을 보이지는 않았다. 때문에 지금의 대학가 반응은 그동안 쌓인 ‘평가 피로감’이 거부감으로 표출된 것이란 해석이다. 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는 박진배 연세대 교수평의회 의장은 “전문성이 부족하거나 포퓰리즘에 가까운 평가 잣대를 들이대는 경우가 많아 준비하는 대학 입장에선 피로감이 쌓여 있다”고 말했다. 서울 지역 사립대 한 평가 관계자도 “예전에는 평가 결과에 예민하게 반응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맷집’이 세졌다고 할 수 있지만 평가 피로증이란 말도 맞다”고 덧붙였다.

평가를 주관하는 언론사들이 대학에 미치는 영향력이 지나치게 커진 점은 이러한 거부 반응을 부채질했다. 평가에서 조금만 순위가 떨어져도 동문과 구성원들의 압박이 커 ‘평가 지표 = 대학경영 관리 지표’ 공식이 불가피해졌다는 게다. 대학평가의 공정성 시비도 나온다. 연합회는 성명에서 “언론사들이 평가의 막강한 영향력을 등에 업고 수익사업의 일환으로 활용할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언론사가 직접 요구하지 않더라도 평가받는 입장인 대학이 알아서 ‘갑’인 언론사에 유료 광고를 게재하는 등 암묵적 압박이 큰 것으로 전해진다.

■ 대학평가 숫자↑·위상↓ 정보공시도 한몫 = 더 큰 문제는 늘어나는 추세의 대학평가 숫자다. 1990년대 시작된 중앙일보 대학평가 외에 조선일보가 영국 QS와 손잡고 평가 시장에 뛰어들었고, 올해부터는 경향신문도 합류했다. 각각 내건 평가의 목적은 조금씩 다르지만, 이를 모두 준비해야 하는 대학은 그만큼 부담이 늘어난다. 모 언론사 평가에 대해서는 지표 설정이 잘못 됐다며 여러 대학 기획처장들이 보이콧을 선언했다는 후문. 지방의 한 대학 관계자는 “평가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코멘트가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라며 “대학평가가 늘어나는 것은 ‘상위기관’이 늘어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꼬집었다.

늘어난 가짓수가 오히려 대학평가의 위상을 깎아내린다는 평이 많다. 희소성이 떨어져 대학 현장에서 체감하는 평가의 영향력은 반감됐다는 것이다. 2008년 도입된 대학 정보공시제 역시 영향을 끼쳤다. 고려대 기획예산처 홍준석 과장은 “대부분 정보가 정보공시를 통해 공개되기 때문에 대학평가 순위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 줄어든 것은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박진배 의장도 “평가 가짓수가 늘어나고 ‘대학알리미’가 기능을 하면서 개별 평가의 역할이 줄어들었다”며 “대학평가의 위상 하락은 결국 대학 구성원들의 신뢰를 못 받았기 때문이다. 합리적이고 공정하게 평가가 진행됐다면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대학평가의 양적 증가로 각기 다른 평가 기준과 지표에 대처해야 하는 고충도 생겼다. QS가 주관한 올해 아시아대학평가에서 국내 연구력 순위가 상승한 대학들이 아시아 순위는 일제히 하락한 게 대표적 사례다. 국내에선 대부분 평가 잣대로 SCI 논문 게재 여부를 따지지만, QS는 ‘스쿠퍼스’ 인용을 기준으로 평가한 탓이다. 경북대 기획과 안재홍 씨는 “국내 대학들은 SCI 논문에만 신경을 써 QS 평가에선 손해를 입었다”고 설명했다. 반면 ‘강의평가 공개 비율’은 국내 대학평가에서만 적용되는 항목이다. 또한 영어강의 비율, 외국인 교원·학생 숫자 등도 배점이 비교적 높아 평가의 일관성에 흠이 된다는 지적이다.

■ 순위매기기 탈피, 평가목적 다변화 필요 = ‘공개’가 대세인 사회적 흐름 속에 평가 자체의 순기능에 대해선 이론의 여지가 없다. 다만 순위 매기기 일변도의 대학평가는 바뀌어야 한다는 게 대학가 여론이다. 대학간 순위 경쟁이 평가의 영향력은 극대화할지언정 대학 발전으로 이어지진 않는다는 것. 서울 지역 한 사립대 교수는 “평가 자체보다 언론을 통해 대학을 서열화하는 구조를 벗어날 수 없는 게 안타깝다”며 “순위를 매기지 않는 평가, 진정 대학 발전에 도움을 주는 평가를 고민할 때”라고 강조했다.

평가 부정론자와 긍정론자 양쪽의 입장이 일치하는 지점도 있다. 대학의 특성을 감안해 평가 기준을 잡아야 한다는 의견이 그것이다. △국립대·사립대 △수도권·지방대 △대규모·소규모 대학 등을 동일한 잣대로 평가해선 안 된다는 문제 제기다. 김승용 동국대 경영평가팀장은 “대학은 복잡한 조직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당사자인) 대학 참여를 통한 평가 방법의 진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어 “평가를 위한 평가에 그치지 않기 위해 각 평가가 차별화된 목적과 가치를 가져야 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현행 대학평가의 대안은 아직 논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 대교협은 스스로 평가의 주체가 될 것임을 천명하며 대학 인증평가 시행 의사를 밝혔다. 대학가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평가를 유료 컨설팅과 연계할 가능성이 있는 데다, 대교협이 주관한 대학종합평가 역시 비판받은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연합회는 정부가 나서 비영리 전문 평가기관이 대학평가를 시행하도록 요구했다. 공적 기관 설립만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해외 사례에서 확인되듯 ‘비영리’와 ‘탈순위’를 전제로 공인된 민간 평가기관의 필요성을 제시하기도 했다.

“순위 안 매겨야 ‘오버’ 않는 평가 가능”
[인터뷰]박진배 서울8개大 교수협의체 연합회장

- 대학평가에 대한 비판이 많다. 일선 반응은 어떤지.
“평가 자체는 순기능이 있다. 평가를 안 받겠다는 건 아니다. 다만 너무 많은 수의 평가가 시행되는 점, 공정성·객관성이 없는 잣대와 지표로 대학을 평가하는 것은 문제다. 정량적 지표는 통계를 내기 쉽지만 대학평가는 그렇게 해선 곤란하다. 예컨대 강의평가 공개 비율, 영어강의 비율 같은 항목은 포퓰리즘에 가깝다고 본다. 평가에 투입되는 시간과 인력이 엄청나기 때문에 불필요한 기준이나 지표를 잡으면 낭비가 된다. 각 대학마다 평가 준비를 전담하는 인원이 적어도 5명, 많은 대학은 20~30명에 이른다. 학과별로도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1~2년 전부터 평가를 준비해야 하는 실정이다.”

- 순위 매기기가 경쟁 유도를 위해 필요한 부분도 있지 않은가.
“부작용이 너무 많다. 순위를 매기면 자연스러운 평가가 불가능하다. 있는 그대로보다 더 보여주려고 ‘오버’하게 되지 않느냐. 국제화를 예로 들어보자. 외국인 교원·학생 숫자가 평가 항목으로 잡혀 있으면 일단 그 숫자를 채우는 데 집중한다. 장기적 안목을 갖고 대처하는 게 어려워지는 셈이다. 대학이나 학과의 특성, 질적 부분에 대한 고려는 뒷전이다. 평가에서 높은 순위를 받기 위해선 불가피한 선택이다. 순위에 신경 쓸 수밖에 없는 게 몇 계단 내려가면 동문 등의 압력이 상당하다. 그래서 평가 지표에 따라 대학의 재원도 그쪽에 집중된다. ‘울며 겨자먹기’로 순위 경쟁에 올인해야 하는 구조다.”

- 대학평가가 갖는 현실적 문제점을 대학 입장에서 꼽아달라.
“순위 매기기 자체가 권력이다. 언론사가 마치 대학의 상위기관처럼 되지 않았나. 언론사 주관 대학평가에 불만이 있어도 평가에 불이익을 받을까봐 건설적 논의조차 어렵다. 게다가 언론사는 영리기관이다. 대학 측에 수익사업에 대한 압박이 직접 들어오지 않더라도, 그럴 개연성이 있다는 게 이미 문제 아닌가. 대학간 협력이 되지 않는 폐쇄적 구조가 형성되는 것도 큰일이다. 경쟁자 입장에 서면 각종 노하우를 공유하거나 공동으로 성과를 내는 데 소극적으로 변한다. 이런 부정적 요소들이 쌓여 ‘평가 피로증’을 불러온 것으로 본다.”

- 현행 대학평가에 대한 대안이 있다면.
“평가 방향의 문제를 지적하고 싶다. 종합평가도 중요하지만 학문 분야별 평가가 더 바람직할 수 있다. 특화된 분야별 전문기관이 순위를 매기지 않는 방식으로 평가하면 의미가 있겠다. 현행 평가는 인기 위주의 비전문적·비학문적 평가 항목이 있는 게 사실이다. 각 학문의 질적 성장을 위해 공정성·전문성을 담보한 적절한 지표 설정이 필요하다. 평가기관으로는 객관적 평가를 전제로 순수 민간기관이 맡는 방안을 생각해봤다. 미국의 경우 연방교육부가 인정하는 민간 교육평가기구가 있다. 평가의 신뢰성이 문제되면 다른 기관으로 대체된다. 국내에도 종합평가와 학문 분야별로 1~2개씩 생기면 어떨까 싶다.”

김봉구 기자 (paper81@unn.net) | 입력 : 10-10-15 오전 4:03
ⓒ 한국대학신문(http://unn.net)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목록
프린트 스크랩

관련기사

이 름 내 용 비밀번호

1

최신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