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대학 구조조정과 별개라고 보겠느냐. 퇴출 예정 대학으로 낙인찍힌 것이다.” 지난달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가 발표한 ‘학자금 대출제한 대학’ 명단에 포함된 한 대학 기획처장의 하소연이다.
대학 입학자원 감소가 가시화되면서 정부의 대학 구조조정이 궤도에 올랐다. 국립대 통폐합과 법인화, 부실 사립대에 대한 컨설팅 등에 이어 부실대학 퇴출을 예고한 것이다. 교과부 뿐 아니라 기획재정부도 수년 내 대학 구조조정 강제와 관련 예산 삭감 방침을 들고 나왔다. 학자금 대출제한 대학 발표는 본격적인 대학 구조조정의 신호탄인 셈이다.
■ 설립 준칙주의부터 부실대학 퇴출까지 = 지금 대학들이 맞는 구조조정의 칼바람은 문민정부 시절 발표된 이른바 ‘5.31 교육 개혁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자유롭게 대학을 설립할 수 있는 대학 설립 준칙주의 시행과 함께 퇴출 시스템의 틀까지 마련됐다. 이주호 교과부 장관 역시 당시 전문위원으로 5.31 교육 개혁안 구상에 참여해 대학간 경쟁에 따른 퇴출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측했다.
문제는 1996년 기존 인가제를 폐지하고 설립 준칙주의를 도입한 후 설립된 신생 대학들이 퇴출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지난해 안민석 의원(민주당)이 펴낸 정책자료집 ‘고등교육 재구조화 및 부실대학의 합리적 개선방안’(이하 정책자료집)에 따르면 설립 준칙주의 시행 후 총 88개 대학이 신설됐다. 그러나 이들 대학의 신입생 충원율(2008년 기준)을 살펴본 결과 4년제 대학 36개 중 8개, 전문대학 11개 중 5개만 정원을 채웠다. 당초 목표였던 ‘대학간 경쟁 촉진’이 ‘진입 장벽’에 막힌 꼴이 됐다.
대학을 대상으로 한 구조조정 압박은 최근 들어 구체화됐다. 단계별 정책이 수립되고, 대학선진화위원회가 대학 퇴출 정책을 전담하며 내놓은 각종 안이 시행되고 있어서다. 지난 2008년 시행된 정보공시제는 그 1단계. 참여정부 시절의 ‘대학구조개혁방안’이 기본틀이 됐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서도 정책 기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2단계에선 대학평가와 행·재정 지원 연계로 구조조정을 촉발하고, 3단계로 퇴출 대학을 선정하는 구상이다.
■ 부실대학 낙인 앞서 개선책 마련해야 = 그러나 ‘부실대학 퇴출’로 귀결되는 정부의 대학 구조조정 정책은 일면적이란 비판도 나온다. 자유주의적 정책인 설립 준칙주의가 부실대학 양산의 주요 원인인데 같은 자유주의 기조의 퇴출책을 제시하는 것은 잘못된 해법이란 얘기다. 자칫 ‘인&아웃’의 악순환 구조를 야기할 우려가 있다. 부실대학 낙인에 앞서 부실의 원인을 찾아 개선하는 자세가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대학 구조조정의 주된 근거인 “대학이 너무 많다”는 세간의 인식부터 객관적 사실이 아니다. 한·미·일 3국의 인구 대비 고등교육기관 숫자를 비교하면 한국의 대학 수가 가장 적다. 정책자료집에 의하면 미국은 인구 6만 8835명, 일본은 10만 3949명 당 대학 1개가 있는 데 반해 한국은 13만 671명 당 1개다. 정확한 근거 없이 국내 대학 수가 많다는 인식을 퍼뜨린 것은 대학 퇴출을 주창한 정부 책임이라 볼 수 있다.
퇴출이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란 점도 지적된다. 대학사회는 시장과 다른 만큼 시장주의적 구조조정이 적용돼선 곤란하며, 시장주의의 문제점을 케인즈주의가 보완했듯 자유주의적 대학 정책의 문제점은 다른 방식으로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로선 문제점 개선은커녕 부실대학 여부를 판가름하는 기준도 정립되지 않았다는 게 중론이다.
최근 교과부의 학자금 대출제한 대학 발표에 대한 비판은 이 연장선상에 있다. △취업률 △신입생 충원율 △전임교원 확보율 등 몇몇 정량적 지표만 들이대 부실대학으로 낙인 찍었다는 불만이다. 명단에 포함된 대신대 김성빈 기획처장은 “부실대학을 제대로 가려내려면 재정 건전성 지표나 학사비리·분규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평가를 위한 평가”, “대학 특성을 무시한 탁상행정”이란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 “학생수 감축, 고졸자 대책” 인식 변화 = 퇴출 위주 정책은 여러 문제점을 야기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열악한 환경에 놓인 지방대부터 우선 퇴출될 가능성이 높다. 교과부가 지방대 육성을 위해 펼쳐온 NURI사업, 광역경제권 인재양성사업 선도산업 등에 반하는 결과다. 대학 퇴출로 큰 방향을 잡는다 해도 대학 진학률을 특정 비율까지 낮추겠다다는 것인지, 입학자원 수준에 맞추겠다는 것인지 세부 내용이 분명치 않다.
때문에 일각에선 ‘대학 수’가 아닌 ‘학생 수’로 포커스를 옮겨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대규모 종합대학의 정원 축소를 통해 입학자원 감소를 어느 정도 완화할 수 있다는 논리다. 특성화 전략과 정원 조정을 병행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대학마다 특성화 분야를 집중 육성하고, 비(非)특성화 분야의 덩치를 줄이는 방식의 대처도 검토할 만하다.
80%를 웃도는 대학 진학률도 쟁점이다. 부실대학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데는 고학력 청년실업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부실대학 퇴출이 필요악이라면 동시에 고졸자의 진로 문제 해결에도 나서야 할 필요가 있다. ‘대졸자 주류 사회’를 비판한 김진석 인하대 교수(철학)는 “대졸 실업에 가려 더 심각한 고졸 실업이 간과되는 현 체제도 함께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