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대는 지난 1997년 중국경제 신임교수 채용과정에서 당시 총장이던 이수오 전 총장이 채용과정에 개입, 비리를 저질렀다며 중국경제 신임교수 채용과정에 지원했던 김모하 씨(경남창원·현 대학강사)가 2000년 행정소송을 제기한 뒤, 아직까지 행정소송이 끝나지 않고 있다.
그동안 창원대는 1심 지방법원 판결, 2심 고등법원 판결에서 승소했지만 현재 김모하 씨는 대법원 상고를 준비하고 있어 이 사건이 종결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사건의 전말
창원대는 지난 1997년 6월 중국경제 신임교수 공개채용을 실시했다. 지원자는 현재 행정소송을 제기하고 있는 김모하 씨를 비롯해 모두 4명이었다. 당시 중국학과 학과장이었던 A교수가 심사위원장을 맡았고 중국학과 B교수와 경제학과 C교수가 각각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문제는 B교수가 지원자 중 한명인 전 모 씨가 연구실적물로 제출한 ‘중국의 공업화 전략과 외국인 직접투자’라는 논문이 아직 저서로 출판되지 않은 사실을 확인하고 이의를 제기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즉 B교수는 전 모 지원자의 연구물은 연구보고서일 뿐 저서가 아니므로 연구실적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당시 심사위원장이었던 A교수는 전 모 지원자의 연구실적물은 저서로 인정할 수 있다고 반박해 결국 심사위원 간 갈등이 빚어졌다. 이에 교수채용 심사는 계속 지연됐으며 결국 학교 측은 1997년 9월 4일 부로 교수채용을 중단했다.
이후 이 사건은 지난 2000년 교육부 감사 결과 당시 3명의 심사위원이었던 교수들에게 경고가 주어져 일단락되는 듯 했다. 하지만 김모하 씨가 지난 2000년 97년 당시 교수채용 심사에 대한 정보공개청구 소송을 시작으로 이 사건에 대한 행정소송 등을 꾸준히 제기하면서 현재까지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김모하 씨, “당시 사건은 전 총장 개입된 비리”
김모하 씨는 당시 사건을 이수오 창원대 전 총장이 자신의 고등학교 후배인 전 모 지원자를 교수로 채용하기 위한 비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하며 행정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즉 이 전 총장이 전 모 지원자의 허위 연구실적 논란이 계속되자 교수 공채를 의도적으로 중단시켰다는 것.
김 씨는 또 당시 창원대에서 시간강사로 강의를 하던 자신이 전 모 지원자의 교수임용 심사에 가장 걸림돌이 될 것으로 우려해 학교 측이 자신의 연구실적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실제 김 씨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확보한 자료에 의하면 김 씨의 북경대학 경제학원 연수증서는 경력계산에서 누락돼 있다.
이에 따라 김 씨는 창원대 총장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진행해 1차, 2차 판결에서 모두 패소한 뒤, 현재 3차 대법원 상고를 준비하고 있다.
김 씨는 “반드시 진실을 밝혀내겠다는 의지로 힘든 싸움을 계속 하고 있다”면서 “대법원에서도 패소한다면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 심판을 제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창원대 측, “심사위원 간 내부 이견 따라 심사 종결”
하지만 이에 대해 창원대 측은 당시 사건은 전 모 지원자의 연구실적 인정 여부를 두고 학과 심사위원 간 의견 불일치로 공채업무 진행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못하자 전형지침에 의거 교수채용 심사를 종결처리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특히 김모하 씨 측이 주장하고 있는 이 전 총장과 전 모 지원자의 학연에 의한 교수임용 비리 주장에 대해서는 당시 그런 소문만 있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창원대는 또 김모하 씨는 교수공채 지원 당시, 전임강사는 40세 이하로 나이를 제한한다는 조항에 따라 지원자격이 원천적으로 부적합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김씨가 본인이 제출한 북경대학 경제학원 진수과정(예비과정)을 인정하면 조교수(45세 이하)로 임용 심사를 받을 수 있다는 주장과 함께 교수 채용 종결 처리가 3년이 지난 2000년부터 행정소송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 씨의 북경대학 경제학원 진수과정(예비과정)은 교육부 질의 회신 결과, ‘연구경력이 아닌 동 대학의 교과과정을 이수하기 위한 학습준비과정’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명균 교무처장은 “소송 당사자가 조정 제의도 했지만 조정은 절대 없다”면서 “계속 소송을 제기한다면 법적인 대응만이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