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은 ‘돈’이 되는 학문이 아니다. 나라의 기초학문으로써 다른 학문에 직접적으로 기여한다. 하이서울장학금 대학원분야 폐지는 학문에 대한 열정으로 공부하는 모든 인문학 연구자에게 비수를 꼽는 행위다.”

“미래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면서 정작 가장 기본적인 장학 사업을 뒷전으로 여기는 시의원을 비롯한 시의회 구성원에게 매우 유감스럽다.”

“하이서울장학금 수혜 덕분에 SCI급 논문 3편을 주저자로 발표했다. 만약 장학금이 없었다면 기초과학을 계속 공부하지 못했을 것이다. 기초학문을 공부하는 대학원생들의 희망을 꺾지 말아 달라.”

서울시의회가 지난달 30일 올해 예산안 처리과정에서 ‘하이서울장학금 대학원분야’의 신규 장학생 지원비 15억 원을 전액 삭감한 것을 두고 기초학문을 공부하는 대학원생들의 성토가 시의회 홈페이지와 주요 포털 사이트 게시판에 올라왔다. 특히 일부 글은 조회수가 무려 2만여 건을 넘어가면서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하이서울장학금 대학원분야(이하 대학원 장학금)가 ‘사실상 폐지’됐다. 이번 대학원 장학금 폐지로 박사과정생들의 중도 포기 속출과 학문간 불균형 심화 등 국내 기초학문 분야의 연구가 크게 위축될 것으로 우려된다.

서울시는 서울장학재단을 통해 지난 2005년부터 대학원분야사업으로 인문학(어문·사학·철학)과 과학(물리·화학·생물) 등 기초학문 분야의 박사과정생을 지원해 왔다. 엄격하고 공정한 심사를 거쳐 장학생에 선발되면 인문학 분야는 학기당 250만원씩, 기초과학 분야는 학기당 300만원씩 최대 4학기 동안 지원 받을 수 있다. 대학원 장학금은 2005년 467명을 시작으로 △2006년 1294명 △2007년 1769명 △2008년 1809명 △2009년 1678명 △2010년 1762명 등 약 3300(누적인원 8779명)명에게 230억 원을 지원했다.

성과는 속속 나타났다. 장학금을 받은 박사과정생의 학업 중도 포기율이 2.9%로 전국 평균(5.5%)보다 훨씬 낮게 나타났다. 중도 포기율이 낮아지면서 논문의 질도 자연스럽게 높아졌다. 이는 장학생들이 사이언스와 네이처 등 세계 최고 수준의 학술지에 논문을 등재하는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졌다.

하지만 서울시의회가 사업 전체 예산 48억 2000만원 가운데 신규 장학생 지원비 15억 원을 전액 삭감하면서 기존에 장학금을 받는 학생까지만 지원할 수 있게 됐다. 올해부터 신규 장학생을 뽑을 수 없는 것이다.

대학원 장학금 전액 삭감의 가장 큰 이유로 서울시의회는 저소득층 고교생 지원을 꼽았다. 이와 함께 서울대·연세대·고려대 등 주요대학 박사과정생이 대학원 장학금을 대부분 차지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서울시 재정경제위원회 소속 김용석 의원은 “대학원 장학금은 주요 대학 박사과정생이 50%이상 차지하고 있다”며 “주요대학에 쏠린 대학원 장학금 보다는 저소득층 고교생 예산을 위해 우선순위에서 밀린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 의원은 “SH공사의 경영부실과 재무상태 악화로 매년 100억 원씩 출연해오던 저소득층 고교생 장학금이 불투명하게 됐다”며 “서울시 예산이 풍족해서 대학원 장학금까지 지원하면 좋겠지만 이미 한국장학재단과 겹치는 부분도 있기 때문에 저소득층 고교생 장학금으로 전환하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시의회의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지난해 국고와 서울시 교육청, 서울장학재단을 통해 1300억 원 이상의 예산이 저소득층 고교생에게 돌아갔다”며 “4학기 동안 지원해 이제 성과를 나타내기 시작한 대학원 장학금 예산을 전액 삭감한 것은 기초학문의 싹을 자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 관계자는 “주요대학 박사과정생에게 장학금을 지원한다는 것은 이들 대학의 지원자 수가 타 대학에 비해 월등히 많기 때문”이라며 “학교별 접수인원 대비 선정비율로 따져보면 경기대(100%), 홍익대(82%), 서울여대(71%)가 서울대(46%), 연세대(47%), 고려대(43%) 보다 두 배 이상 높다”고 말했다.

하이서울장학금 대학원분야 인문학 심사위원장인 동국대 국어교육과 윤재웅 교수는 “서울시의회는 대학원 장학금의 취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할 것”이라며 “대학원 장학금을 추경예산에 반영해 어려운 환경에서 기초학문을 공부하는 대학원생에게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