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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가 전공인 교수들이 말하는 박완서
치밀한 심리묘사로 마음을 해명해주던 작가
“지금보다 나중이 빈자리 더 크게 느껴질 것”

‘김수환 추기경님의 묘소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것도 저승의 큰 ‘빽’이다. 다만 차도에서 묘지까지 내려가는 길이 가파른 것이 걱정스럽다. 운구하다가 관을 놓쳐 굴러 떨어지면 혹시 저 늙은이가 살아날까 봐 조문객들이 혼비백산할테고 그건 아마 이 세상에 대한 나의 마지막 농담이 되겠지’     

-박완서 산문집〈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中〉

자신의 죽음까지도 농담의 소재로 생각했던 ‘만년 이야기꾼’ 소설가 박완서 씨가 지난 22일 별세했다. 추모 물결이 이어지는 가운데 박완서 소설로 박사 논문을 낸, ‘박완서’가 전공인 동국대 이선미 교수(이하 이)와 성균관대 신영지 교수(이하 신)와 이야기를 나눴다.


▷김점선 작가가 그린 박완서 작가 초상


(이) “그 어머님께서 90세까지 사셨기에 박완서 선생님께서 이렇게 빨리 돌아가실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토요일 아침, 갑작스러운 소식에 마음이 부산스럽고 심란했죠. 예전에 박완서 선생님 댁을 찾아 논문을 드리고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어요. 그때 선생님은 그 집이 봄에 꽃 필 때가 참 좋다고 하셨는데….”

박사 논문을 쓸 때 작고한 작가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문단에서 경력이 일단락되거나 문학사적인 규명이 어느 정도 이뤄진 작가를 다루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작가가 활발하게 활동 중이던 2000년대 초·중반에 논문을 썼다. 이선미 교수의 2001년 논문은 박완서 소설 연구로는 처음 나온 박사논문이었다.

(이) “박사과정 중에 결혼하고 애를 낳으면서 공부를 계속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함이 있었어요. 그런데 박완서 소설을 읽으면서 위안을 많이 얻었습니다. 그래서 문학이 개인의 삶에서 힘에서 되는 것 자체를 연구해야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어요.”

1970년 다섯 아이를 둔 주부였던 소설가 박완서는 여성동아 장편소설 현상공모에 ‘나목’이 당선되며 문단에 나왔다. 그의 창작 속에는 전쟁체험과 70~90년대 한국 현대사가 고스란히 묻어났다. 시류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소재를 썼던 작가였고 살아온 과정 자체가 한 세대인 작가였다.

(신) “박완서 작가는 단지 전쟁뿐 아니라 중산층 여성의 인간다움을 끄집어내는 타고난 이야기꾼이에요. 특히 <포말의 집>, <휘청거리는 오후>, <도시의 흉년> 등에서 70~80년대 도시의 파편화가 잘 드러났죠. 현대 여성들의 문제를 치밀하게 그려냈음에도 여성해방운동의 구호는 드러나지 않아요. 하지만 박완서 소설은 읽은 후 여성이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하는 힘이 있죠.”

비단 여성뿐 아니라, 박완서 소설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사랑하는 이유에 대해 두 교수는 입을 모아 ‘치밀한 심리묘사’라고 답했다.

(이) “인간의 내면은 굉장히 깊고 다층적이며 겹으로 쌓여 있는 것인데, 박완서 선생님의 소설은 이것을 낱낱이 헤집어내고 파헤쳐내는 게 있어요. 행동은 심리의 한 면일 뿐 그것으로만 인간을 다 이해할 수 없거든요. 내면의 겹이나 층을 다 보였을 때 인간이 진짜 인간이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독자들은 박완서 선생님의 소설이 ‘자신을 잘 해명하는 소설’이라고 생각하는 거 같아요.”

(신) “박완서 선생님은 말년에 불행한 일들(남편과 아들의 죽음)을 극복해낸 심리마저도 소설 속에 과감히 드러냈죠. 다른 작가와 달리 세상을 보는 시선이 큰 데서 시작하지 않고 개인사가 곧 역사였던 그 시선이 울림을 줬다고 생각합니다.”

작가의 죽음에 누군가는 울음으로 그를 보내고 누군가는 그의 소설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두 연구자는 박완서 소설 연구로 그에 대한 애도를 준비하고 있다.


(이) “각자 자기의 맥락에서 애도의 시간을 가져야 할 것 같아요. 올해 박완서 소설에 대한 논문을 더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또, 한국 여성문학학회에서 4월 셋째 주쯤에 박완서와 한국현대문학의 관계를 살펴보는 학술대회를 마련하려고 합니다.”

(신) “박사 논문을 쓰고 난 후 외국으로 교환교수를 다녀오느라 연구를 많이 못 했어요. 앞으로 박완서 문학 돌아보기를 하며 논문을 쓰고 싶어요. 분명히 지금 돌아가신 시점보다 이후에 그 빈자리가 더 크고 아쉬울 겁니다.”

‘신이 나를 솎아낼 때까지는 이승에서 사랑받고 싶고, 필요한 사람이고 싶고, 좋은 글도 쓰고 싶다’고 밝혔던 작가 박완서는 이제 세상에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사랑하고 그를 필요로 하며 그가 남긴 좋은 글들을 읽을 것이다. ‘그립다는 느낌은 축복이다’라던 작가의 말처럼 축복 속에서.


사진 (위) 도서출판 깊은샘 제공, (아래) 윤수경 기자

윤수경 기자 (skyoon@unn.net) | 입력 : 11-01-28 오전 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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