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육 살리기는 대학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박영아 한나라당 의원은 국회 내 몇 안되는 과학 전문가다.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펜실베니아대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28세 때(1998년) 명지대 교수로 부임, 20년간 대학 강단에 서다 18대 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그가 인터뷰에서 대학에 특별히 주문한 것은 ‘대입 문제 해소를 위한 대학의 역할’이다. “상위권 대학들이 ‘우리 대학에 입학하려면 최소한 이 정도 과목은 이수하고 와야 한다’는 조건만 걸어도 공교육이 정상화될 수 있다”는 요지다. 만약 주요 대학들이 국사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한다면 고교 교육과정이 이에 따라 조정되고, 공교육 내에서 ‘국사’의 중요도가 높아질 것이란 점을 예로 들었다.
의학전문대학원(이하 의전원)으로 인한 이공계 교육의 황폐화를 지적, 의전원의 의대 전환 자율화를 이끌어 낸 박 의원은 약대 학제개편의 당위성도 강조했다. 과학비즈니스벨트(이하 과학벨트) 입지 논란에 대해선 “충청권 입지 공약을 고려하되, 과학계의 의견을 모을 필요가 있다”며 신중론을 폈다.
- 28세에 명지대 물리학과 교수로 부임하고, 2008년 세계여성물리대회(ICWP) 조직위원장을 맡는 등 과학계에서 촉망받는 물리학자로 명성을 날리다 18대 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우리나라는 경제규모 12위권 국가이지만, 기초과학 부분은 거기에 못 미친다. 노벨상 수상 국가가 세계적으로 28개국인데 우린 과학기술 분야에선 아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했다. 휴대폰·조선 등 세계적으로 1등 제품은 있지만, 1등 기술은 없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외환위기 이후 이공계 연구 인력들이 위기감을 갖게 됐고, 안정적인 진로를 선택하려는 경향이 강해졌다. 국가적으로 기초과학에 대한 특별한 지원이 필요한데, 현 정부 들어 과학기술부가 교육부와 통폐합되면서 이공계의 불만을 샀다. 특히 과학기술 전문가들은 정책 결정과정에서 자문 역할에 그치고 있기 때문에 국회의원에 출마해 의정활동을 하게 됐다.”
- 20여 년간의 대학 교수직을 거쳐 국회 교과위 소속 위원으로 활동했는데 그간의 성과는.
“대학 교수를 할 때부터 초·중·고 교육은 교육청이, 대학교육과 고급인력 양성은 교과부가 담당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져왔다. 그런 역할분담을 실현하기가 쉽지 않아 정치 입문을 하게 됐다. 교과위에서 활동하면서 교육부문의 중요 아젠다(의제)를 제시하려 노력했다. 현재 보람을 느끼는 의정활동 중 하나가 의전원 문제를 해결했다는 점이다. 의전원은 심각한 대입 문제를 완화하려고 미국식을 제도를 무리하게 접목시키려다 문제가 발생한 사례다. 이공계 교육을 황폐화시킨다는 지적에 따라 결국 의전원의 의대 전환을 자율화시켰다. 의학계가 참여하는 공동 위원회를 만들어 원래의 방향을 고수하려던 정부 정책을 바꾸는 역할을 했다.”
- 약대 2+4학제도 이공계 교육을 황폐화시킨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약대 학제개편에 대한 박 의원의 생각은?
“현재 정부와 정책 협의를 통해 ‘통 6년제’로 전환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나는 2012년부터 학제개편안을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지만, 정부 입장에선 최소 1년 반 전에 개편안을 공고해야 하기 때문에 이르면 2013년부터 시행하는 것으로 얘기가 되고 있다. 현행 약대 ‘2+4학제’ 때문에 이공계는 약대 편입을 위한 준비과정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 자연계·이공계 교육의 황폐화 가능성이 있는 만큼, 입시 혼란을 최소화하는 범위 내에서 통 6년제로 전환해야 한다.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형성됐다고 본다. 정부가 전환하겠다는 입장만 세우면 2013년부터 학제 개편이 가능하다.”
- 과학계 출신 의원으로서 최근 일어난 KAIST ‘로봇영재’ 자살 사건에 대해 느끼는 바가 남다를 것 같다. 이번 사건의 근본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나.
“KAIST에는 과학고를 조기 졸업하고 진학하는 학생이 많기 때문에 자살 사건이 종종 있어왔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고 교장들이 오히려 조기 진학보다는 3학년 졸업 후 진학을 권장할 정도다. KAIST가 학생·교수 정원을 늘리며 확정정책을 편 점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과거에는 학생들이 모두 수업료를 면제받고 다녔는데, 서남표 총장 취임 이후에는 학점에 따라 50%는 수업료를 내야 한다. 과거보다 학점에 의해 구속받는 상황에서 부담이 늘어난 것이다. 또 모든 학부 과목을 영어로 강의하고 있다. 국사 과목도 영어강의로 배운다. 수학실력이 뛰어나지 않은 전문계고 출신 학생이 미적분 과목까지 영어로 배우니까 문제가 생긴 것이다. KAIST가 잠재력 있는 학생을 선발했으면, 해당 학생을 특별히 관리했어야 한다. 그런 정책 마인드가 없었던 게 이번 사건을 불러왔다.”
- 과학비즈니스벨트 입지 선정에 대한 논란이 격하다. 이에 대한 박 의원의 입장은.
“과학벨트는 기초과학 발전을 위한 요람으로 조성될 것이다. 새로운 지식 창출을 통해 선진 과학기술강국으로 도약한다는 목표 하에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충청권 입지 공약을 고려하되 입법 취지에 맞게 과학계 의견을 모을 필요가 있다. 과학계에서 과학벨트 입지를 검증하고 선정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 대학교육에 대해 대학가에 특별히 주문하고 싶은 부분은?
“대학이 사회적 책무를 다해야 한다. 우리 대학은 지난 20년 동안 연구에 치중하고 교육엔 소홀했던 측면이 있다. 대학 경쟁력은 대학교육에 달려있다. 선진 강국이 되려면 인재양성을 제대로 해야 한다. 특히 대입 문제가 심각하다. 이로 인해 사교육 문제가 발생하고 출산률 저하로까지 이어진다. ‘공교육 살리기’와 ‘사교육 문제 해소’는 대학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다. 상위권 대학들이 ‘우리 대학에 입학하려면 최소한 이 정도 과목은 이수하고 와야 한다’는 조건만 내걸어도 공교육이 정상화될 수 있다. 만약 유수의 대학에서 국사를 필수과목으로 정하면 당장 고교 커리큘럼이 조정된다. 미국은 고교 졸업요건이 곧 대학 입학요건이 된다. 특히 사회과학 분야에선 역사와 세계사가 필수 이수과목이다. 고교생이 자기 나라 역사를 4년간 공부하고 나서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다. 과학 과목의 근간도 물리·화학·생물이다. 우리나라에선 물리학과에 입학하는 학생도 물리를 안 배우고 들어간다. 특히 공대는 물리학이 필수인데 이를 이수하지 않고 입학하는 학생들이 있다. 이는 교과부가 해결하기 힘든 문제다. 오히려 대학에서 이를 조정하는 게 자연스럽고 쉽다.”

<대담 : 박성태 발행인, 사진 : 한명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