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이 졸업시즌을 맞아 다양한 명예졸업생을 배출해 눈길을 끌고 있다. 민주화 운동을 하다 뒤늦게 대학에 입학했지만 세상을 떠난 만학도와 장애아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헌신적으로 대학생활을 함께한 어머니, 아프리카에서 봉사활동을 하다 숨진 ‘봉사 천사’ 등 각각 다른 길을 걸어온 명예졸업생들이 대학가에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성공회대는 이른바 ‘유서대필 사건’으로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한 강기훈씨의 어머니 고(故) 권태평 씨에게 명예졸업장을 수여한다. 1991년에 일어난 유서대필 사건은 검찰이 분신자살한 김기설 전국민주운동연합(전민련) 사회부장이 남긴 유서를 김씨의 동료였던 강씨가 대필한 것으로 몰아 그를 기소한 것. 강씨는 재판에서 3년2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1994년 만기출소 했다. 하지만 권씨 등 유가족은 아들의 무죄를 주장하며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으며, 2009년 서울고법은 18년 만에 유가족의 청구를 받아들였다. 이처럼 권씨는 아들의 누명을 벗기고자 인권운동사랑방과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등에서 인권운동가로 왕성하게 활동하다 2005년 70세의 나이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에 입학했다. 그러나 고령이었던 권씨는 2007년 간암 판정을 받아 학교를 휴학하고 투병생활에 들어갔고 결국 지난해 4월 만학의 꿈을 뒤로한 채 숨을 거뒀다.
성공회대 관계자는 “고령에도 자신이 가진 것을 사회에 환원하고자 한 고인의 뜻을 기리고 유가족을 위로하는 차원에서 명예졸업장을 수여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장애아들과 함께한 감동의 명예졸업생도 있다. 한남대는 뇌병변장애가 있는 아들의 대학생과 공부를 위해 헌신적으로 도운 어머니 윤경애씨에게 명예졸업장을 수여했다. 한남대에 따르면 아들 안지형씨는 고등학교 1학년 때인 2001년 횡단보도를 건너다 교통사고를 당했다. 이 사고 때문에 안씨는 무려 37m를 날아가 떨어졌고, 3개월 동안 혼수상태로 보냈다. 당시 병원 측은 의식을 회복하더라도 식물인간이 될 것이라며 포기했다. 하지만 어머니의 사랑이 아들을 대학까지 졸업시켰다. 윤씨는 뇌수술 2차례를 비롯해 수많은 수술을 받고 살아났음에도 뇌병변장애 2급 장애인이 된 아들에게 병원에서부터 공부를 시켰다. 성과는 속속 나타났다. 4년간의 입원 재활치료를 마친 안씨는 결국 검정고시를 통해 고교 졸업자격을 얻었고, 2007년 3월 장애인시설이 갖춰진 한남대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했다. 이후에도 어머니는 4년 동안 아들과 함께 등하교를 하면서 아들의 공부를 도왔다.
어머니 윤씨는 “더 나아질 수 있는데 재활노력이나 공부를 포기하는 젊은 장애인을 보면 안타깝다”며 “남보다 더디더라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세명대에서도 장애아들의 대학생활을 그림자처럼 함께 해온 어머니에게 명예학사학위를 수여했다. 특히 거액의 기부금이나 유력 정치인에게 수여하는 명예박사학위와 달리 졸업생 부모에게 명예학사학위를 수여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어머니 김명수씨는 선천성 뇌손상에 따른 뇌병변 3급 지체장애로 혼자서 이동이 불편한 아들 이승만씨를 위해 2006년 대학에 입학한 이후로 지금까지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등하교를 도왔다. 특히 아들을 위해 강의를 같이 들으면서 필기를 대신해 주면서 승강기가 없는 강의실은 아들을 교실까지 업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정성까지 보였다. 이처럼 어머니의 끝없는 사람에 힘입어 승만씨는 4년 동안 지각조차 한 적이 없다. 주목할 만 한 점은 100점 만점에 평점 91점의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 경희사이버대 사회복지학과에 편입하는 성과도 거뒀다.
세명대 관계자는 “승만군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이 학생들에게 주는 교육적 효과가 커 감사의 명예학사를 수여했다”면서 “이러한 부모와 자식 간 숭고한 사랑이 널려 알려져 우리 사회가 좀 더 따뜻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대는 25일 학위수여식에서 탄자니아 봉사활동을 하나 세상을 떠난 ‘봉사 천사’ (故) 이용준씨에게 명예졸업장을 수여한다. 2006년 서울대 건축학과에 입학한 이씨는 지난해 7월 탄자니아 킬리만자로 지역 보마 응옴베 마을에 지을 학교 설계도를 완성하고자 출국했다가 해수욕 도중 심장마비로 목숨을 잃었다. 이씨는 대학 1학년 여름 방학부터 다섯 번이나 탄자니아를 방문할 정도로 탄자니아 빈곤 지역 학생들을 향한 애정이 각별했다. 특히 이씨는 탄자니아에서 우물 파기와 태양광 발전판 설치, 유치원생 교육 등 봉사활동을 펼쳤다. 이와 함께 건축학도로서 재능을 살려 초등학교 식당 건물을 설계하기도 했다. 교과부는 지난해 10월 이 같은 이씨의 높은 봉사정신을 기려 ‘대한민국 인재상’ 수상자로 선정하기도 했다.
고인의 어머니 임난숙씨는 “셋째가 얼마 전 군대에서 ‘앞으로 형보다 더 멋진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편지를 보내왔다”며 “부모로서 아들이 이루지 못한 일들을 실천해 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