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그 후 집안형편이 넉넉하지 못했고 그러다보니 돈을 벌어 집에 도움이 줘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습니다.”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전씨는 중학교 졸업 후 바로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화물차 조수, 시외버스 남차장, 건설현장에서 일용직 노동자 등 안 해본 일이 없었다고.
그 뒤 세월이 지나 서울에 와서 자리를 잡고 사업이 커지면서 그동안 가슴 속에만 간직한 배움의 열의도 다시 높아졌다. 그러던 중 마음속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던 전 씨에게 학업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결정적인 사건이 생기게 된다.
“사업 차 독일에 간적이 있었어요. 근데 목이 말라 슈퍼에 물을 사러 갔는데 말이 통하지 않아 살 수 없었어요. 정말 답답하더군요. 그때 결심했죠. 공부를 다시 시작하자고 말이죠.”
한국에 돌아온 이후에 바로 검정고시 학원에 다니면서 1년 동안 준비를 했고 지난해 4월, 합격통지서를 받았다. 기쁨도 컸고 특히 말없이 옆에서 성원해 준 가족들이 정말 좋아했다고 한다. 이런 가족들을 보며 이번에 대학에 도전해 보자는 생각을 갖게 됐다.
“그전엔 자녀들과 대화가 잘 없었어요. 서로 간 자꾸 멀어진다는 느낌이었죠. 하지만 공부를 다시 시작하는 제 모습을 보고 딸들이 먼저 말을 걸어 줘 기뻤어요.”
그가 운영하는 감로건설은 1999년 노동부장관상, 2002년에는 자체 개발한 철근이음공법으로 특허청장상을 받았으며, 경희대 건축학과와 산학협력을 맺은 우량 건설업체다.
“사업이 커지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배움의 부족을 많이 느꼈습니다. 실무에서 배운 지식도 중요하지만 학교에 들어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전문적 수업을 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성균관대 자기추천전형으로 올해 입학하는 전 씨는 요즘 영어공부에 한창이다. 하루 일과가 마치는 저녁에 영어학원을 등록, 문법과 회화를 공부하고 있다.
“설레이고 아들뻘 친구들과 내가 잘 지낼 수 있을까하는 걱정도 듭니다. 하지만 어린(?) 선배들 잘 모시고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전 씨는 학교에 다니면서 집안 형편이 힘든 친구들을 도와주고 싶다고 한다. 배움이 가난으로 인해 끊겨서는 안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행복해지기 위해선 꿈이 있어야 하고 그걸 성취하기 위해 부지런히 준비해야 합니다.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 항상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누구보다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인터뷰에 응한 그를 보며 4년 후 학사모를 쓰고 활짝 웃는 전완준 씨가 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