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대학 출신이라 사업하기 어려웠냐고요? 글쎄요. 아마도 그런 선입견들이 있었을 겁니다. 근데, 그런 것 다 신경 쓰고 어떻게 살아요. 그냥 자신이 재밌고 잘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면 그걸로 행복한 거죠.”
디지털서체 개발업체인 헤움디자인을 이끄는 김진덕 대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당시 인기 높던 전자과에 입학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자퇴했다. 군복무를 마친 후 1981년 인덕대학 시각디자인과(당시 도안과)에 재입학한다.
“그냥 재밌을 것 같아서 들어갔습니다. 학창시절에도 미술 관련 활동은 한 적이 없는데 당시는 무슨 배짱이었는지 모르겠어요. 막상 들어가서 수업을 들어보니 제 적성에 딱 맞았습니다. 과제도 재밌었고, 성적도 좋았습니다. 한마디로 적성을 찾은 거죠.”
대학에서 자신의 적성을 찾은 김 대표는 한국 산업디자인의 아버지라 불리는 고 김교만 교수의 CIP연구소 등을 거쳐 1988년 인피니트라는 디자인 회사에 입사한다. 쌍방울 레이더스, 한국마사회 CI작업(기업의 이미지를 통합하는 작업. 기업 로고 타입이나 심볼마크 등을 통해 표현됨) 등이 김 대표가 참여했던 프로젝트다.
“회사가 안정권에 접어드니, 전문대학 졸업생이 위축되기 시작하더라고요. 신입사원은 4년제 대학 졸업자만 선발했고요. 실무를 담당했던 전문대학 졸업자들은 경력이 쌓여도 갓 입사한 4년제 대학 출신과 보수 차이가 없으니 하나 둘 떠나기 시작했죠. 승진도 어려웠고요. 저 역시 인피니트를 나와 회사를 설립했죠.”
김 대표가 2001년 세운 아이빛은 그의 경험과 대우종합기계, 한국전산원, 팬택앤큐리텔 등을 주 고객으로 삼으면서 본격적인 성장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2명으로 시작한 종업원 수는 26명까지 늘어났고 매출액은 30억원까지 성장했다. 하지만 직원이 급격히 늘면서 디자인 업무보다는 내부 관리업무에 치중해야 했고, 관리 미숙으로 인한 손실도 커졌다. 이에 싫증을 느낀 김 대표는 2005년 회사를 넘기고 나왔다.
“이젠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자는 결심을 했죠. 돌이켜보니 로고에 사용될 서체를 제작할 때 가장 즐거웠다는 결론이 나더라고요. 네비게이션·스마트폰 등 디지털 제품이 늘어나면서 디지털폰트 수요도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고요. 그렇게 2007년 7월 헤움디자인을 세웠습니다.”
시작은 쉽지 않았다. 축적된 폰트가 없으니 개발하는 데만 2년이 걸렸다. 김 대표는 차근차근 폰트를 제작해 축적하기 시작했고, 한 달에 세 번은 인터넷에 올려 무료로 공급했다. 헤움이 만든 아기자기한 폰트는 입소문을 탔고, 지상파의 오락프로그램에도 사용되면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올해부터 본격적인 성장세를 탈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후반기부터 실질적인 영업을 시작했는데 3억원 정도의 매출을 올렸습니다. 올해는 18억~20억원의 매출은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 말미 전문대학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전할 조언 한 마디를 부탁하자 김 대표는 “많은 자극을 받아야 한다”고 주저 없이 말한다.
“디자인을 전공하는 후배들에게 많은 것을 보고 느낀 후 자극받으라고 항상 조언합니다. 4년제 대학에 편입하는 것이 자극이 된다면 그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학벌을 올리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 말고도 전시회나 전람회, 세미나, 스터디모임 참가 등등 끊임없이 자극받을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제가 부족했던 부분이기에 후배들에게는 꼭 그렇게 하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