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인희 칼럼
함인희
한국대학신문 칼럼
[함인희 칼럼]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가 온다!
함인희 본지 논설위원·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새 학기가 시작됐다. 대학의 강의실은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N세대 논의를 주도했던 돈 탭스콧은 다시 디지털 네이티브에 주목하면서 이들을 일컬어 “인류 역사상 가장 영리한 세대”라 칭하고 있다.
디지털 혁명의 소용돌이를 지나면서 ‘디지털 원주민’과 ‘디지털 이주민’으로 분화가 진행되고 있는데, 이들을 나누는 기준에는 세 가지가 있다 한다. 하나, 하루에 문자 메시지 보내는 횟수가 20통에 못 미치면 이주민, 20통을 훌쩍 넘으면 원주민. 둘, 중요한 정보를 반드시 프린트해서 지면상의 활자로 확인해야 하면 이주민, 화면만으로도 충분히 정보 습득이 가능하면 원주민. 셋, 인기 드라마나 주요 스포츠 중계 프로그램의 본방을 사수하면 이주민,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프로그램을 편집해서 보면 원주민이라는 게다. 이 기준에 따른다면 나는 디지털 이주민에도 못 미치는 아날로그임이 분명하다.
사이버 강의실이 보편화되기 이전으로 기억하는데, 당시 대형 교양 강의를 담당할 때였다. 수업 시간이 끝나자 한 학생이 찾아와 “선생님 강의 노트 빌려주세요. 복사하고 돌려드리겠습니다” 하는 것이 아닌가. 예전엔 친구들끼리 혹은 선후배의 도움을 받아 해결하던 문제를 이젠 교수에게 직접 해결해 달라 요구하는 세대가 왔구나 싶었는데, 그것도 잠시 교수의 강의 노트를 빌려줄 필요성 자체가 사라져 버렸다. 사이버 강의실에 강의노트 형태든 PPT 파일이든 동영상이든 준비된 강의 자료를 미리 올려놓는 것이 필수가 됐기 때문이다. 과거 교수의 저작권에 해당됐던 강의 노트가 공유의 대상인 정보로 화하고 있는 현실의 도도한 흐름을 감히 누군들 거스를 수 있겠는지.
돈 탭스콧은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의 특징을 다음 여덟 가지로 요약하고 있다. 무수한 선택지 앞에 놓여 있는 이들은 안정성이나 헌신보다는 선택과 자유로움의 가치를 중시하는 세대요, 획일성 및 몰개성을 넘어 자신만의 차별화된 개성을 추구하는 세대이자, 폭증하는 정보의 바다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찾기 위해 검색에 몰입하는 세대란다. 덕분에 한편으론 불법다운로더라는 오명을 얻고 있긴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자신이 간절히 원하는 최적의 정보를 찾기까지 특유의 인내력을 발휘하는 세대라는 게다.
그런가 하면 오프라인 상에서의 팀워크엔 취약하지만 반쯤은 익명성을 지닌 타인들과 온라인상에서의 협업에는 매우 익숙한 세대요, 멀티태스킹의 순발력을 발휘하면서 ‘일=재미, 유희, 쾌락’임을 추구하는 세대이자, 10억분의 1초 만에 즉각 답변을 내놓는 검색 엔진 덕분에 늘 초스피드를 갈구하는 세대요, 얼리어댑터로서 최첨단 기술 습득이 지위의 상징이 되는 세대가 바로 디지털 네이티브란 것이다.
이제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도구의 폭증으로 인해 양방향의 신 소통 개념으로 무장한 세대가 대학 강의실로 몰려들고 있으나, 이들의 강점과 잠재력을 키워 줄 강의실 환경은 여전히 아날로그의 미덕을 중시하는데 머물러 있는 건 아닌지 모를 일이다. 덕분인가, 이들 디지털 원주민들은 깊이 있게 사고하는 능력을 상실한 세대요, 도무지 책을 읽지 않는 무식한 세대이자,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표현하는데 매우 미숙한 세대라는 오명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물론 디지털 네이티브들은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논리정연하게 표현하는 능력은 아날로그 세대에 비해 확연히 떨어질 것이다. 대신 디지털 기기를 다루는 솜씨, 전 세계 모든 이들과 자유로이 연계망을 형성할 수 있는 능력, 문화적 감수성 및 순발력 등은 아날로그 세대에 비해 탁월한 역량을 갖추었을 것이다. 다만 이들의 능력을 평가하는 기준이 여전히 아날로그 세대에 있는 만큼 이들에 대한 평가가 유보적일 수밖에 없는 것일 게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중 어느 것이 더 우월한지 판단하자는 것도 아니요, 둘 중 하나를 필히 선택해야만 한다고 주장하려는 건 아니다. 디지털 세대가 갖추고 있는 능력을 충분히 인정해주고 잠재력을 적극 계발해주면서, 동시에 아날로그적 가치와 미덕을 더 이상 상실해가지 않도록 조화와 균형을 잡아주는 일을 대학 강의실에서 어떻게 구현해낼 수 있을 것인지, 진지한 고민을 시작했으면 하는 바램 간절하다.
함인희 칼럼 | 입력 : 11-03-02 오후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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