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국내 이공계 살리기에 본격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시간을 쪼개 지난해부터 서울대 공과대학 겸임교수로 활동하면서 ‘이공계 육성’에 열성을 쏟고 있다.
지난 5월 7일 이인원 본지 회장이 태평로 삼성본관 25층 윤 부회장 집무실을 찾았다. 그의 방은 녹색으로 말끔히 단장한 남산이 한눈에 내다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공계 육성, 효율적인 산학협력체제 구축 등이 인터뷰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한국 최고의 CEO'라는 수식어와 달리 이웃집 아저씨 같은 인상에 가끔 경상도 억양이 묻어 나왔다.
- 반갑습니다. 부회장께서는 평소 이공계육성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우선 요즘 젊은이들이 이공계를 기피하는 원인이 어디 있다고 보십니까.
“사회의 가치관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모두 편하고 안일하게, 쉽게 벌어먹고 살려는 사회풍토가 문제죠. 우리사회에는 아직도 사농공상의 성리학 전통이 남아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고시제’입니다. 고시제는 공무원 사회뿐만 아니라 사회전체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입니다.
우수한 학생들이 의대나 법대보다 공대로 가는 사회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우수 인재들이 창의력을 발휘하고 첨단기술을 연구하는 ‘미래 산업분야’로 몰려야 우리 사회가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겁니다.
변호사나 의사 몇 명이 몇 만명을 먹여 살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수한 기술자나 과학자 몇 명이 수 만명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시대입니다. 빌 게이츠 같은 인물 10명만 있어도 우리나라는 더욱 부유해질 수 있습니다.”
- 사회현상과 인식의 문제를 지적하셨는데 어떤 해결방안이 있을까요.
“무엇보다 인식의 전환, 시스템의 과감한 혁신이 필요합니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병역혜택을 받는 것처럼 우리나라의 유일한 자원인 인적자원을 어떻게 키워야할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국가 차원에서 조기유학도 장려하고 정부가 나랏돈으로 해외유학도 많이 보내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공계 출신의 공직 진출을 획기적으로 늘리고 이들이 대우 받는 사회 풍토가 조성돼야 합니다.”
- 교육제도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많습니다만.
“공대를 졸업해서도 ‘로스쿨’에 입학할 수 있는 교육제도 혁신이 시급합니다. 과학고와 같은 영재교육기관, 특수학교를 활성화시키는 한편 이공계 대학에서도 경영학, 회계학 등을 가르쳐 이공계 출신의 ‘스타 CEO’가 많이 나와야겠습니다.”
- 현재 국내 대학에서 배출되는 인력만으로도 우리나라 IT산업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역량이 된다고 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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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는 산·학간 괴리를 좁히기 위해 대학과 맞춤형 교육을 추진하고 있다. 즉 대학과 기업에서 반반씩 커리큘럼을 개발하는 형태다. 현재 연세대, 한양대, 경북대 등과 맞춤형 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앞으로 계속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또 서울대, KAIST, 포항공대 등 이공계 인력을 대상으로 이론 중심의 대학교육과 차별화된 프로젝트 수행 및 주제연구 중심의 교육을 통해 이공계 대학교육의 발전적인 모델을 제시하는 ‘인턴산학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삼성전자 인재양성 쪽으로 이야기 중심이 이어졌다.
- 초일류기업으로 성장하기위해서는 우수한 인재를 많이 확보하고 이들을 육성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최근 해외인재 확보에도 적극적인 줄 압니다.
“인재가 최우선이라는 삼성의 신념은 변화가 없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인재상은 도전과 창조정신으로 한 분야에서 세계적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부단히 자신을 개발하는 사람이죠.
삼성전자 R&D 인력의 경우 인도와 중국, 미국에 각 3백명, 일본과 영국에 각 1백명, 러시아에 50여명이 있으며 인도, 중국, 러시아지역은 앞으로 규모를 더욱 늘려나갈 계획입니다. 이들 가운데는 미국에서 공부하고 일류기업에서 5~10년 근무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창의력도 뛰어나고 영어도 능통해 외국동창생기술자들과의 휴먼 네트워크를 통해 정보를 빠르게 획득할 수 있는 장점이 있죠. 앞으로는 외국 일류회사에서 5~10년 근무한 인재들을 집중적으로 채용해 국제경제전쟁에서 이겨나갈 것입니다.”
현재 삼성전자에는 1만7천여명의 연구원이 있으며 이중 5천명 이상이 석·박사로 박사급만 1천5백여명에 달한다. 윤 부회장은 인사팀의 인재개발연구소와 각 사업 분야의 연구소를 중심으로 국내는 물론 미국, 인도, 중국, 러시아 등 전 세계적으로 우수인재 확보에 나서고 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초일류 기업으로의 도약을 목표로 해외 우수인재 확보뿐만 아니라 고급인력 양성에도 역점을 두고 있다. 이를 위해 사내 리더십개발센터, 글로벌마케팅연구소, 첨단기술연구소를 비롯, 박사과정까지 개설된 반도체공과대학을 운영하고 있다. 또 지난해는 이공계 인력양성을 위해 5천억원 규모의 ‘삼성이건희장학재단’을 발족시켰다.
- 기초과학의 부재 속에서도 우리나라 IT산업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냈습니다. IT·반도체 산업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우리나라의 IT·반도체 산업은 생산과 제조기술에 있어 다른 나라에 비해 상당히 앞서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기초기술 분야는 취약합니다. 기초기술 없이는 더 나은 발전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기초기술 육성을 위한 정부차원의 인프라 구축이 시급한 실정입니다.”
- 끝으로 대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은.
“역사 발전을 이끄는 것은 과학기술이며 기업은 이를 활용해 사회의 부를 창출합니다. 기술은 사람이고 사람은 곧 기술입니다. 인재양성이야 말로 국가가 미래에 대비하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대학생들은 도전정신과 창의력, 프라이드를 갖고 해보겠다는 의지를 키워야 합니다. 전공과 관계없이 시야를 넓혀 폭넓은 교양과 경영전반에 대한 지식을 쌓아야할 것입니다. 또 영어와 함께 경제에 대해서도 반드시 상식 이상으로 알아야 합니다.”
<윤종용 부회장은 누구>
윤종용 부회장은 삼성전자를 오늘날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전시킨 ‘테크노 CEO'다. 지날 3월 파이낸셜타임스는 ‘정보기술업계의 유력인사 명단에 그의 이름이 없을 경우 완전할 수 없다’고 극찬했다. 또 ‘남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사람이지만 값싼 전자제품을 생산, 판매하던 삼성전자를 오늘날 세계 최고의 영업실적 달성하는 회사로 만든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윤 부회장은 서울대 전자공학과 출신으로 1966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전자소그룹장 겸 삼성전자 총괄대표이사 사장을 거쳐 지난 2000년 대표이사 부회장에 취임했다.
1981년 VCR 사업을 맡아 세계정상으로 일궈냈으며 휴대폰 컴퓨터 TV 등 다양한 전자제품을 융합하는 ‘디지털컨버전스’사업에서도 뛰어난 역량을 발휘했다.
그는 경영현장에서도 기업에 혁신의 바람을 불어넣기 위해 모든 면에서 솔선수범하는 경영자로 알려져 있다. 외환위기 이후 삼성전자 구조조정 당시 조직 전체를 과감하게 쇄신한 것은 그의 경영스타일을 잘 말해준다.
1999년 비즈니스위크 표지인물로 선정되기도 했으며 포천지는 그에게 ‘기술 마법사(Tech Wizard)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