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대학들이 구조조정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가운데, 대학 본부 측의 일방 행정으로 상당수 학교들이 진통을 겪고 있다. 경쟁력 강화를 명목으로 한 대학의 독단적 구조조정으로 구성원들의 반발이 만만찮다.

전문가들은 구조조정의 속도와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이 더욱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또한 성공적인 구조조정은 각 구성원간의 소통에 바탕을 두고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대학교육연구소 임은희 연구원은 “학과개편은 시대에 따라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며 “대학은 일방적 통보가 아니라 반드시 해당 학과 구성원들과 여러 차례 논의를 거쳐 구조조정을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유한구 대학특성화지원센터 소장은 “대학의 변화는 단기간에 이뤄질 수 없다”며 “속도보다는 학과 통폐합·신설, 인력 재배치 등을 어떻게 하면 좀 더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한다”고 조언했다.

■ 학과 통폐합 일방통보에 학생 반발 = 2일 대학가에 따르면 최근 배재대·청주대·순천향대 등은 학생들과 일체의 논의 과정 없이 학과 통폐합을 확정했다. 학과 통폐합 사실을 일방통보 받은 학생들로선 ‘날벼락’을 맞은 것과 다를 게 없다.

우선 배재대는 지난 1일 ‘학제개편 계획’을 발표하고 아펜젤러국제학부·칠예과·연극영화학전공 등 3개 학과의 폐지가 확정됐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해당 3개 학과는 2012학년도 입시부터 신입생을 선발하지 못한다.

문제는 이들 3개 학과의 폐지가 학생들과의 대화 없이 결정됐다는 점이다. 칠예과 대학원생 최은정씨는 “통폐합 통보에 앞서 대학은 칠예과 학생들과 단 한 번도 소통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아펜젤러국제학부의 한 학생은 “우리 학부는 지난 2008년 신설됐다. 아직 졸업생도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폐과라니 말도 안 된다”며 울분을 토했다.

순천향대도 지난 3월 경쟁력이 낮은 학과의 폐지를 골자로 한 ‘구조조정 계획’을 일방적으로 발표, 학생들의 반발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낮은 취업률로 구조조정 대상이 된 연극무용·영화애니메이션전공 학생들은 “예술관련 직업은 취업률 통계에 잘 잡히지 않는다”며 “취업률을 근거로 폐과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순천향대 관계자는 “경영자 측면에서 볼 때 경쟁력 확보를 위해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며 “폐과 학생들에게는 전과 등의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청주대는 지리교육학과가 지난해 교과부 사범대 평가에서 C등급을 받았다는 것을 주요 이유로 올해 2월 학과 폐지를 결정했다. 이 대학은 앞서 2009·2010년에도 취업률이 낮은 인문·예술 관련 9개 학과를 일방적으로 폐지, 학생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 대학 간 통합 인한 진통도 = 대학 간 통합에 따른 학과 통폐합의 경우 구성원들이 겪는 진통이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충주대·한국철도대학은 지난달 27일 교과부에 ‘한국교통대’로 통합하는 국립대 통합승인신청서를 제출했다. 양 대학은 합의 하에 신청서를 냈지만 이로 인해 학과가 통합 예정인 철도대학 차량기계과·차량전기과 학생들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차량전기과 1학년 황동규씨는 “배우는 교과목이 같다면 학과 통합을 감수하겠다. 하지만 두 학과는 배우는 내용이 전혀 다르다”며 “대학 통합의 희생을 왜 일부학과 학생들이 치러야 하느냐”고 반발했다.

지난 4월 말 경원대와 함께 교과부에 ‘가천대’로의 통합승인 신청서를 제출한 가천의과학대도 비슷한 진통을 겪고 있다. 대학 측이 내년부터 가천의과학대 보건행정학과를 경원대 글로벌헬스케어경영학과로 흡수 통폐합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대학 측은 2014년까지 가천의과학대 보건행정학과 수업을 그대로 개설·운영할 방침이라고 밝혔으나, 학부모·학생들은 혼란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와 관련 김종규 가천의과학대 보건행정학과장은 “2015년 2월까지는 교수들의 소속도 현재와 동일하게 유지된다”며 “끝까지 책임감을 갖고 학생들을 지도하겠다”고 말했다.
 

건양대는 지난 3월 전자정보공학과와 의공학과를 통합하는 공대 구조조정을 추진했다. 건양대 관계자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대학은 일부 교수들에게 전공이 아닌 교양학부로의 이동을 사실상 통보했다. 현재 해당 교수들은 본부 측에 인사이동의 재고를 요청하고 있는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청주대의 경우 2009년 폐과된 철학과 교수들은 현재 소속이 없다. 당시 철학과가 폐지되면서 교수들은 문헌정보학과로 소속을 옮겼다. 그러나 문헌정보학과 교수들과의 마찰로 최근 일부는 이 학과에서 빠져나와 졸업기간이 남은 철학과 학생들의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청주대 관계자는 “폐지되는 학과의 교수들의 소속은 개인의 선택에 따라 결정할 수 있다”며 “철학은 기초학문이기 때문에 교양학부에서 학생들을 가르쳐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민현희·홍여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