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상황을 두고 ‘인문학의 위기’가 아닌 ‘인문학자의 위기’라는 지적이 나오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권호종 한국연구재단 인문학 단장(경상대 중어중문과 교수)은 이 문제에 대해 “그동안 논의됐던 ‘인문학의 위기’는 사실상 ‘인문학자의 위기’였다”며 “인문학자들이 취업할 곳이 없다든가 맡을 수업이 줄어든다 하는 게 마치 인문학의 위기처럼 여겨졌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새로운 인문학 준비하는 한양대 |
| “원하던 인문학 공부하게 돼 기뻐” [인터뷰]한양대 트랜스내셔널 석사과정 진학하는 류호진씨 “학업 계획서에 이렇게 적었어요. ‘교수가 되고 싶다는 말은 잘못된 것 같다. 교수는 직업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난 학자가 되고 싶다’라고요. 졸업 후 뭐가 되고 싶으냐고 묻는다면 지금 당장 답을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우선은 공부를 하고 싶고 연구를 하고 싶습니다.”1983년생 류호진씨<사진>. 동국대 사범대 역사교육학과 04학번이다. 재작년 졸업 후 기간제 교사로 일하다 인문학을 공부하고 싶어 한양대를 찾았다. 아이들에게 국사를 가르치면서 교과서에 배어 있는 민족주의적인 사고방식에 대해 문제의식으로 느낀 게 계기였다. 얼마 전 일본 원전 사고 이후 일본을 대하는 누리꾼들의 태도도 그를 대학원으로 이끌었다. “왜 이와 같은 폐쇄적인 민족주의가 한국인들에게 있는 걸까 문제의식을 느꼈어요. 그리고 이 분야를 연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렇게 해서 찾은 곳이 바로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입니다.” 류씨는 즉각 이메일을 보내 위에서 말한 것들에 대해 공부하고 싶다고 밝혔다. 비교역사문화연구소에서는 “이번 2학기에 ‘트랜스내셔널 인문학’ 과정이 생기는데 생각이 있으면 지원해 보라”는 답변을 보내왔다. 류씨는 지원했고, 합격했다. 합격자는 단 2명이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원하던 인문학 분야에 발을 들여놓게 됐지만, 교사 일을 그만두고 대학원에 오기까지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는 게 류씨의 설명이다. “대학원을 택하면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동기들은 계약직 기간제 교사로 몇 년 동안 경력을 쌓고 사립학교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처럼 인문학을 공부하기 위해 대학원에 가는 것은 좀 특별한 케이스죠. 친구들은 모여서 주식 이야기를 하는데 저는 ‘인문학’이라니. 그래서 ‘내가 이 모임에 어울리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도 했고, ‘뒤처지는 것 아닐까’ 하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돈벌이가 마땅찮은 인문학을 택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인가 하는 고민이었다. 그리고 트랜스내셔널이라는 분야가 워낙 생소한 까닭에 ‘잘한 일이었을까’ 하는 고민도 이어졌다고 한다. “트랜스내셔널이라는 게 워낙 생소하다 보니 잘 선택한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게다가 국내에서는 처음 시도되는 거잖아요. 이쪽 분야 연구가 워낙 적었기 때문에 ‘우선 도전해 보자’는 생각도 들었어요.” 류씨는 “인문학을 공부하려는 수요는 충분하다고 본다”며 “그렇지만 공부를 마친 이후에는 미래를 알 수 없으니 다들 섣불리 도전을 못하는 거 같다”고 말했다. 인문학의 미래를 생각할 때 정부의 지원이 이어져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류씨는 이에 대해 “인문학 공부가 이어질 수 있도록 여러 장치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연구소 등과 연계한 인턴십을 운영하는 방법이라든가, 인문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해외진출을 수월히 할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이야기다. 초보 인문학자로의 길을 걷게 된 류씨는 최근 2학기 학습계획을 꼼꼼히 챙기고 있다. 좋아하는 분야여서 여러 가지 계획을 세우고 있다며 즐거운 모습이다. “근대 국민국가와 그 경계를 당연한 것으로 전제하는 기존 민족주의 역사서술과 이와 관련된 제 통념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새로운 인문학적 사유부터 시작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이후엔 유럽의 변경사에 대해서 공부해 보고 싶어요.” 트랜스내셔널에 대한 연구가 편협한 내셔널리즘의 기능을 무장해제시킬 수 있는 하나의 좋은 무기가 될 것을 꿈꾸며, 초보 인문학자는 그렇게 발을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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