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신문 홈 > 뉴스 > 칼럼/이슈 홈

목록
프린트 스크랩
한국대학신문 칼럼
한국대학신문

한국대학신문에서 연재하는 칼럼입니다.

[한국대학신문 칼럼] 한국대학신문
[기고] 대학이 넘쳐난다
전일환 (전주대 부총장·한국어문학)
대학이 넘쳐난다. 1980년대 중반만 해도 전국의 4년제 대학수가 90개에 미치지 못했다. 그런데 20여년이 지난 2000년대엔 우리나라에 4년제 정규대학만 해도 200개를 넘어섰다. 가히 우리나라는 대학공화국이라고 할 만큼 대학으로 포화상태다. 이미 대학정원도 고교졸업생수를 훨씬 넘어섰다. OECD회원국 가운데 우리나라는 인구대비 가장 대학이 많은 나라로 기록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김영삼 정부 이래로 소위 ‘신자유주의’와 ‘준칙주의’의 원칙 아래 얼마든지 대학을 인가해 주고 있다. 어떤 이들은 대학설립을 아예 선거공약에 넣어 지방발전을 약속을 하고 ‘공약대학’을 만들어 준 사람도 있다. 1982년도 3월에는 영국의 개방대학(open university)을 도입해 경기공업전문대학을 설치함으로써 ‘공업전문대학’ 시대를 열었고, 10년 뒤인 1992년도엔 전국에 서울 산업대학 등 8개 산업대학을 설치해 공업과 경상계를 중심으로 한 ‘산업대학’ 시대를 연 이래, 국·공사립대학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이러다보니 가히 적자생존의 자연법칙이 대학사회에 강풍을 몰고 휘몰아칠 기세로 다가오고 있다. 이렇게 대학이 어려워지자, 대학은 교육의 원리보다 경영의 마케팅 원리가 강세를 얻으면서 판을 치고 있다. 이제 대학경영의 총수인 총장도 대학발전기금을 마련하지 않으면 대학을 운영할 수도 없는 세상이 되어 버렸고, 대학은 경쟁논리의 전장이 되고 있다. 여기에 우리나라가 세계 최저 출산국이라는 기록도 한 몫을 거들고 있다. 이대로 간다면 2030년대에 가서는 대학에 들어갈 학령인구가 지금의 반절도 이르지 못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말하자면 현재 대학의 절반 이상이 문을 닫아야 할 위기에 처하게 된다는 것이다.

교육당국도 이제까지의 원칙이나 규정을 내세워 대학을 슈퍼마켓처럼 늘어놓을 게 아니라, 정책적으로 대학설립을 해줘야 하고 대학의 목적대로 대학이 운영될 수 있도록 지도감독을 철저히 해야 한다. 누가 뭐라 해도 대학은 경영의 원리보다 교육의 원리로 운영될 수 있도록 각종지원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측면에서 참여정부가 미국의 클러스터형 대학정책을 세운 것은 참 잘한 일이다. 지방의 균형발전을 위해 지역대학들이 산학관연 등 기관들과 협력체제를 구축하여 인재를 양성하는 ‘지역혁신역량강화사업’(NURI사업)이나 ‘산학협력중심대학사업’을 교육부나 산자부, 과기부와 함께 마련한 정책이야말로 그 성패를 떠나 혁명적인 일이며 참 잘한 일이다.

우리나라 미래대학의 발전을 위해서는 첫째, 대학입시제도를 다소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행 수능고사제도는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수시 1, 2학기입학제도와 농어촌 특례입학을 과감하게 폐지해야만 한다. 수시입학제도로 인해 고교 교육이 정상화되지 못하고 얼마나 많은 폐해를 당하고 있는지 모른다. 교육부에서도 이를 잘 알고 있는 터라, 여러 차례 이 제도를 폐지한다고 해놓고서도 왜 버리지 못하는지 알 수가 없다.

뿐만 아니라, 이 제도로 인해 지방의 인구가 서울, 경인지역으로 급속도로 집중이 되고 따라서 지방이 형편없이 피폐해 간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도 안 된다. 농어촌 특례입학도 이와 같은 폐해를 피해가지는 못하고 있다. 어찌 보면 이 제도는 농어촌 학생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확대하는 이상적인 정책 같지만, 그 허울의 뒤켠엔 탈농촌인구를 가속화한다는 문제가 숨어있다는 걸 모르는 것 같다.

둘째, 교육부의 천편일률적인 규제율을 합리적으로 마련하고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2007년도부터는 대학의 각종 정보 즉 취업률, 등록률, 교수율 등을 공시해 대학의 경쟁력을 공개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각종 경쟁률을 산출하는데 있어 그 기준이 지방대학들은 서울 소재의 대학들과 형평이 맞지 않다는 것이다. 모든 비율을 산출할 때, 재학등록생수를 기준으로 하지 않고, 편제정원수로 비율을 환산토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탈율이 많고 재학생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지방대학은 서울의 대학들에 비해 그 만큼 불이익이 클 수밖에 없는 점을 간과해 버린 결과라는 것이다.

셋째, 이제 더 이상 신자유주의원칙이나 준칙주의를 내세워 대학을 인가해 주지 않아야 하고 대학다운 대학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지원책을 마련하여야만 한다. 대학의 설립이 마치 교육기업창립이 되어 영리사업이 되어서도 안 된다. 이래 놓고서 사학법의 제정이 부실사학척결의 불가피한 조치였다는 그런 논리로 전가되어서도 안 된다. 부조리한 사학이야 우리나라의 법으로 얼마든지 제재하고도 남음이 있기 때문이다. 거개의 사학들은 설립목적에 따라 건전하게 육성이 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법의 제재를 받은 부조리한 사학들은 전체의 10%도 되지 않는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끝으로, 어차피 대학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국, 공·사립이라는 설립방식에 따라 국가의 지원을 달리 하는 잘못된 정책을 과감하게 바꾸어야만 한다. 똑같은 나라의 세금을 내고도 사립대학을 보내는 학부모들의 입장에서 보면 국립대학이 아니라는 이유로 곱절이 넘는 등록금을 부담해야 한다는 것은 민주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불평등조항으로서 헌법소헌을 제기하고도 남을 일이다. 이미 유럽과 미국, 일본 등에서는 이러한 불평등 조항을 없애고 국립대학을 법인화함으로써 대학에 따라서는 오히려 국립대학의 등록금이 높은 나라도 많다고 한다.

교육은 참 어려운 일이다. 대학은 사람을 길러내는 인재양성의 중차대한 정신노동의 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선인들은 일년지계는 농사에 있고, 십년지계는 식목에 있으며, 백년지계는 교육에 있다고 하지 않았을까 싶다.

한국대학신문 칼럼 | 입력 : 06-09-23 오전 9:31
ⓒ 한국대학신문(http://unn.net)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목록
프린트 스크랩
이 름 내 용 비밀번호

1

최신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