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원지위 향상을 위해 설립된 교원소청심사위원회(이하 소청위)가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대학의 부당한 인사나 징계처분에 대해 소청위가 구제 결정을 내려도 대학에 이를 강제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대학이 소청위의 결정에 불복해 법적소송을 제기하면서 학교와 교수 간 소모적인 법적공방이 벌어지는 사례가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난 추세다. 이에 소청위가 실질적인 영향력을 갖도록 관련 법이 개정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소청위 올해 국회 주요 업무보고 자료에 따르면, 교원소청심사 청구건수는 △2008년 307건 △2009년 368건 △2010년 450건으로 해마다 크게 늘고 있다. 그만큼 부당한 징계나 인사를 당했다고 느끼는 교원이 많다는 얘기다. 하지만 소청위를 통해 권리 구제나 신분을 보장받은 사례는 많지 않다. 대학이 법적소송을 불사하면서 소청위의 결정을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소청위의 결정이 강제력이 없는 탓이다.
대학이 소청위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게 된 것은 2007년, 교원지위향상을 위한 특별법(이하 교원지위특별법)이 개정되면서부터다. 그 전까지 대학은 소청위 결정을 무조건 따라야 했다. 하지만 일부 사립대들이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2005년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이것이 받아들여지면서 2007년 교원지위특별법은 제 10조 2·3항에 의해 사립대의 경우 소청위 결정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개정됐다.
소청위 관계자는 “소청위가 항상 올바른 판단을 내린다고는 볼 수 없기 때문에 대학에도 반론을 청구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라며 “국립대는 소청위의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지만 사립대는 다르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제는 법 개정 후 이를 악용하는 대학들이 우후죽순으로 늘었다는 것이다. 소청위 결정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하는 일이 일종의 관행처럼 자리 잡은 것이다.
소청위 관계자는 “예전에는 소청심사가 단심으로 끝났다면, 법 개정으로 행정과 민사소송을 포함해 총 7심까지 가는 경우도 있다”며 “사실 교원지위특별법은 교원에게 전혀 특별하지 않은 법”이라고 꼬집었다.
심지어 몇 년씩 진행되는 지루한 소송과정을 거치면서 대학을 상대하는 교수들은 소송비에 경제적인 부담을 느끼거나 힘에 부쳐 중도 포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대학도 이 부분을 노리고 있는 것이다.
A대학 관계자는 “대학이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꼭 승소하겠다는 부분도 있지만 재판과정에서 교수 스스로가 지쳐 물러나길 바라는 것 아니겠느냐”며 “설사 교수가 승소하더라도 복귀하기까지는 순탄치 않은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강대에서 국고연구비를 횡령한 동료교수를 검찰에 고발했다는 이유로 파면과 해임 등 중징계 처분을 받은 내부고발 B교수 등에 대해 소청위는 정직과 감봉으로 당초 징계 수위 보다 낮췄지만 학교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강대는 최근 소청위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본지 6월 7일자). B교수 등은 소청위 심사청구에 앞서 민사재판을 통해 교원지위를 가처분 받아 최소시수의 수업은 진행하고 있지만, 학교 측이 제기한 행정소송에 대응하기가 벅찬 상황이다.
서강대 교수협의회 관계자는 “학교가 행정소송을 교수 개인을 상대로 진행한다면 교수 입장에서는 경제적인 부분은 물론이고 연구와 강의도 제대로 못하는 상황”이라며 “만약 학교가 장기간 소송을 진행한다면 해당 교수는 연구력을 상실해 경쟁력을 잃게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른 대학도 사정은 마찬가지. 경주대에서 2009년 총장의 부당한 인사 처리를 비판하다 해임 등 중징계 처분을 받은 일부 교수들은 소청위에서 해임무효처분을 받았지만 2년이 되도록 학교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학교 측은 소청위 결정에 따라 교수들을 복직시켰지만, 바로 재징계하기를 반복했다. 결국 해임건은 행정소송에 이어 민사소송으로 넘어갔다. 결국 소청위 결정이 교원지위나 신분보장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이다.
때문에 아예 소청심사 청구 자체를 꺼리는 교수들도 있다. 충북의 한 사립대 비정년트랙 B교수의 경우 부당하게 재임용이 거부됐다고 주장하고 나섰지만 소청심사를 제기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소청위에서 교수의 손을 들어주더라도 바로 이어지는 2차, 3차 소송에 대한 부담 때문이다.
B 교수는 “대학을 상대로 소송을 벌인 전력이 오히려 다른 대학 임용에 불이익이 될 수 밖에 없다”며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부담이 앞서 소청심사 청구를 꺼리고 있다. 다른 교수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정혁·홍여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