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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학신문 칼럼] 한국대학신문
대학 졸업을 어렵게 하면…
한국의 공교육, 즉 학교 교육은 점점 더 혼란과 무기력으로 빠져들어 갈 것이라고 내다 보는 사람들이 많다. 혼란과 무기력의 원인은 무엇일까

한가지는 고등학교 교육에서 대학 입학으로 연결하는 부분이다. 고등학교 이하는 평준화가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대학들 간에는 차등이 있다. 대학은 전국의 거의 모든 대학이 그 순위가 일련번호로 매겨져 있다시피 하다.

대학의 품질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 보다도 교수와 학생의 품질이다. 대학들은 서로 더 우수한 학생을 뽑으려고 경쟁해야 하고, 또 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경쟁은 대학들의 가장 중요한 경쟁 항목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우수한 학생을 뽑지못하는 한 그 대학은 품질과 등급이 개선되기 어렵다.

전국의 모든 지원자의 등급은 정부가 독점하고 있는 수능 시험 성적에 의하여 일련 번호로 등급이 매겨진다. 그런데 해마다 지원자는 자신의 등급에 맞는 대학을 찾아 지원한다.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게 자신의‘수능 시험성적’과 꼭 맞는 등급의 대학을 지원한다. 그 바람에 한 대학의 이미 정해진 등급은 영구화된다.

이런 형편인지라, 어떤 한 대학이 그것에 매겨져 있는 등급에 상응하는 등급 이상의 신입생을 다수 뽑는 다는 것은 너무도 어려운 일이 된다. 아마도 한국의 대학이 지금 같은 평준화된 고교, 정부가 독점하는 단일 대입 수능 시험, 정부가 독재하는 대학운영제도 아래서 고순위 신입생을 선발함으로써 고순위로 상승하는 것은 설사 불가능한 일은 아니더라도 거기에는 진화론적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대학들이 더 우수한 대학이 되기 위하여 서로 경쟁을 하지 않거나 해 봐야 소용 없는 것이야 말로 한국 교육이 가진 무기력의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이것은 나아가 세계 속에서 한국의 모든 대학을 저순위에 붙잡아 매 둔다.

다른 한가지는 공교육이 가지고 있는 교육 공급 능력의 한계다. 이 한계는 교육 수요의 다양화와 다원화에 따라 공교육 만으로는 이것을 다 충족할 수 없다는 자연적 추세에 일부 기인한다.

그리고 다른 일부는 한국 공교육의 권위주의와 책임회피적 자세에 기인한다.

예컨대 유아를 위한 영어 조기교육을 공교육이 담당하지 못 하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러나 고등학교 학생들이 공부는 주로 입시전문 학원에서 하고 학교 수업은 등한히 한다는 것은 공교육이라는 제도의 파괴로 이어질 수 있다. 이것은 교육부 , 교육위원회, 학교, 교사, 교사 단체가 모두 자기들이 가진 권위주의와 책임회피를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대학생들이 전공을 불문하고 사법 부문이나 기타 고시 공부에 열중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대학생 생활의 갈등은 무엇 보다도 공부할 시간과 놀 시간의 배정과 실행에서 온다. 노는 시간을 줄이고 자기의 전공 외에 고시 공부를 병행한다는 것은 존경할 만한 일이다. 대학은 이런 경우 고시 과목에 대한 청강생 제도나 복수 전공을 확대 보강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자기의 본래 전공은 공부를 게을리 해도 졸업하는 데는 지장 없을 정도의 성적은 거의 누구나 딸 수 있다면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다. 반성하는 공교육이 최대의 전략적 매듭으로 삼아야 할것은 대학을 졸업하는 일을 진짜 인생의 난사(難事)로 만드는 것이다. 아마도 지금처럼 정부의 손 아귀에 모든 공교육이 틀어쥐어져 있는 상황에서 대학이 자기의 등급을 상승 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학생들의 성적을 엄격하게 매기고 기준에 미달하는 학생은 가차 없이 낙제시키는 것일 것이다.

교수와 대학 당국이 이것을 꾸준히 지속할 수 있기만 하면 그런 대학 졸업생은 좋은 직장을 보다 쉽게 얻을 수 있게 될 것이고 한 10년 후에는 그 대학에는 전에 없던 우수한 지원자가 몰릴 것이다. 학생들 공부 들볶기를 실시하는 대학이 적을 때가 이 전략을 실전에 옮기는 데는 가장 좋은 시기일 수 있다.

졸업하기가 어려워지면 자연히 입학하기는 쉬워질 것이다.

모든 대학이 학생들 공부 들 볶기를 실시하는 때가 오면 평준화된 모든 고등학교도 공부 들볶기를 하게 될 수 있다. 대학을 졸업할 수 있는 학생은 고등학교 교실에서 태어난다는 올바른 생각이 퍼질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한국대학신문 칼럼 | 입력 : 02-05-27 오후 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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