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신문에서 연재하는 칼럼입니다.
그런데 내게는 대학 시절 가운데 이 세 번째 것이 가장 그립다. 세상 일은 마음 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 캘리포니아대 샌디에고 교사(UCSD)에서 두 달 간의 섬머 스쿨을 끝내고 떠날 때 나는 내가 활동할 수 있는 동안은 매년 여름을 어느 대학의 섬머 스쿨에서 보내리라고 작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뒤로 한번도 더는 이것을 실현하지 못 하고 있다.
나는 천성이 게을러 공부하기를 매우 싫어한다. 그러나 모순되게도 지식에 대한 호기심은 꽤나 있다. 특히 남이 하는 말이나 글 가운데 흥미를 끄는데도 이해할 수는 없는 것이 나올 때는 호기심이 발동한다. 나는 UCSD의 섬머 스쿨을 떠나면서 흥미 있는 모든 과목의 학부 1학년을 위한 101번 과정만 이수하기로 마음 먹었다.
내가 지금도 믿고 있는 것은 나이가 50을 넘는 사람은 101에서 B학점 이상만 맞으면 그 학과의 문리를 충분히 깨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나이가 주는 선물이라고 나름대로 추측한다. 때로는 그 과목을 가르치는 교수의 수준을 어떤 면에서는 뛰어 넘을 수 있다. 특히 숲을 먼저 알고 있는데 나무에 관한 101을 또 공부한 경우는 더욱 그렇다.
나는 나이 든 지식인들이 자기의 학생 때 전공이나 직업상의 전문 분야와 거리가 먼 과목들의 101 과정을 섬머스쿨에서 이수하기를 권하고 싶다. 전문적 학자 수준의 지식을 가진 사람이 101을 이수하면 그가 깨치는 문리의 심도와 광폭은 엄청 날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그것도 청강만 해서는 재미가 없다. 낙제와 급제만 판정 받는 것에 머무는 것도 미흡하다. 학부 학생이 다시 된 듯이 A, B, C, D, F로 나뉘어지는 학점을 걸고 제대로 이수하기를 권하고 싶다.
101만큼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 과정은 없다. 내가 이수했던 것은 인체생물학과 음악미학의 각각 101이었는데 정말 그 두 달 동안 먹고 자는 시간과 1주일에 한번씩 신문사에 칼럼 원고를 써보내는 시간을 빼면 전부 읽고 외우고 감상하고 숙제하는데 보냈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그리고 101은 새로운 지식에 대한 새로운 조망을 가져다 준다. 예를 들어 나는 학부 1학년 때 생물학을 이수했다. 그 때의 생물학은 한마디로 식물과 동물의 분류와 거기에 따른 생물체의 기관 비교가 거의 전부였다. UCSD의 인체생물학 101은 대체로 화학, DNA, 생리, 그리고 생태계의 진화론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나는 그 후부터 섬머 스쿨에 가지 못하는 대신 서점에 들려 여러 과목의 101 급 교과서를 사냥하곤 한다. 물리학, 화학에서 정치학, 교육학에 이르기까지 필요하거나 흥미가 찾아 들면 그 과목의 101 교과서를 읽는 것이다. 교과서를 읽는 것이 다른 소설이나 비소설 책을 읽는 것 보다 더 지루하지는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사이에 또 한 가지 알게 된 것은 우리 나라 저자의 것으로 성공적인 101 교과서는 거의 없다는 점이다. 101 교과서는 독자가 많은 큰 나라의 학자들이 이미 썼기 때문에 한국의 학자가 거기에 경쟁할 필요가 없어서 그렇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외국 저술가와는 비경쟁적이고 우리 나라 학자의 특권 영역인 국사, 국어 등 분야는 어떤가. 한국 시학이나 한국 음악학은 어떤가. 이런 분야에서는 할 수없이 우리 나라 저자의 교과서를 사게 되지만 대부분 실망과 불평이 저절로 나오는 것은 억제할 수 없다.
내가 외국어로 된 책을 더 좋아하지는 않는다는 변명을 붙여야겠다. 나는 원서 보다는 한국어 번역판을 사서 읽기를 훨씬 선호한다. 읽기가 훨씬 쉽고 값도 훨씬 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