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신문에서 연재하는 칼럼입니다.
이것을 우리 나라에 적용하자면 한국의 신문재벌도 견제가 필요하지만 국가권력이 견제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는 것. 그리고 신문은 그것을 선택해서 구독하는 한국의 국민 수준을 따라가는 것 뿐이니까 그 국민이 그걸 읽어주는 한 누구도 그 괴물의 횡포를 막을 수 없다는 것. 그래서 우리는 신문이 더러우면 더러운 대로 그 오물을 뒤집어 쓰며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론 조용준씨는 일반 원칙론만 말했지 우리 한국 언론의 일그러진 모습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언론이 방종해도 국가권력이 이를 견제할 수 없다는 것은 중요한 지적이다.
그렇다면 시민의식이 달라지지 않는 한 금년말 대통령선거에서부터 국회의원도 그들이 입맛대로 골라서 만들어 놓고 장관도 검찰도 모두 자신들의 각본과 연출로 조종하며 세상을 망쳐 나가도 속수무책으로 구경만 할 것인가? 과연 시민의식은 언제쯤이나 달라질 수 있을 것인가?
지난호 사설에서 교수들의 사회참여를 주장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왜나면 교수와 학생이라는 최고지식인 집단은 이런 위기를 극복할 유일한 대안이기 때문이다.
첫째, 그들은 누구보다도 올바른 사고력과 판단력을 지닐 수 있다. 왜냐면 그것은 높은 지식과 함께 때묻지 않은 순수성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를 다 갖춘 것이 대학이라는 지식인 집단이다.
둘째, 올바른 판단력에는 실천적 의지가 따라야 한다. 모험심과 용기가 필요하다. 그 점에서 젊은 대학생들은 최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셋째, 사회적 변화는 역사를 전진시키는 힘이 따라야 하고 추진력은 다수의 집단이라야 한다. 지금 한국에는 전문대를 포함해서 총 3백76개 대학이 있고 학생수는 약 3백58만명에 달한다. 대학원을 빼고도 그렇다. 마음이 하나가 될 수 있는 동질적 집단으로서 이렇게 큰 집단은 없다.
넷째, 그 집단에는 정신적 지도자가 있고 나머지 다수는 그로부터 쉽게 영향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어야 한다. 대학집단은 사제간의 집단으로 지도자와 피지도자의 구성조건이 갖추어져 있고 늘 가까이서 만나기 때문에 이들은 사회변화의 주체로서 최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다섯째, 이미 입증된 경험집단이기 때문에 실천에 자신감이 따른다. 그들은 과거의 조선조시대에도 유생으로서 그런 역할을 했지만 2·8독립운동, 3·1운동을 비롯해서 최근까지 그들이 나서면 역사가 바뀐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 언론재벌이 이 나라의 최고 권력으로서 대중선동으로 진실을 왜곡하고 은폐하고 정치를 농간하고 있는 이 현실을 대학은 외면해서 안 된다. 대학만이 이 괴물의 난동을 막을 유일한 대안이며 또 그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언론의 목소리가 아무리 크더라도 교수와 학생들이 정말 진실한 대화를 인터넷이나 벤치의 속삭임으로 시작하고 호응을 얻기 시작하면 그것은 어떤 신문지들도 막지 못한다. 그러므로 교수와 함께 학생 3백58만명이 하나가 되어 ‘더러운 종이들’을 찢어버리고 투표장에도 가며 합법적으로 다시 한번 민주화운동에 나서자. 이것은 감옥에도 안 가고 시간도 안 뺏기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