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신문에서 연재하는 칼럼입니다.
이런 봉사활동의 긍정적 의미는 새삼 논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무척 아쉬운 것 하나가 있다. 봉사는 남을 돕는 일이므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정도에 따라서 앞뒤 순서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네팔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중국 등 수십 개국으로 흩어져 나가면서 왜 북한이 빠졌을까? 북한은 그런 도움이 필요 없는 곳일까?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나 기타 대북봉사단체 일부가 발표한 바에 의하면 북한의 아사자가 3백만 이상이다. 물론 이것은 확실히 검증된 수치는 아니지만 북한 내부까지 방문 답사했던 외국인 봉사자들의 증언이나 기타 정보를 종합해 보면 사태가 지극히 심각한 것만은 사실이다. 몰래 촬영된 비디오를 보면 그곳은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극한 상황이다. 굶어 죽어가는 아프리카의 난민들도 참혹하지만 그래도 외부인에게 불평 한마디라도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 그곳은 북한보다 낫다.
이처럼 다른 어느 곳보다 봉사활동에서 우선순위가 되어야 할 북한이 바로 우리 곁에 있고 더구나 그들은 우리의 혈육인데 비행기 타고 전세계로 다른 나라부터 찾아가는 것은 큰 모순이 아닌가? 물론 이렇게 된 것은 대학생들의 잘못이 아니다.
가장 큰 원죄는 강대국에 있지만 또 남북의 지배세력들이 그렇게 만들었다. 북한은 반세기 넘도록 철대문을 걸어 잠그고 접근을 금했으니 우리가 쌀이 넘쳐도 나눠 먹을 수 없었고 또 우리가 그 쪽 혈육의 편지 한통만 받아 봐도 고문해서 간첩 만들고 출세하던 자들이 여전히 이 땅을 지배하고 있으니 북에 대한 봉사활동은 생각조차 못하고 살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의 남북화해정책으로 북한의 식량사정이 조금은 개선되었겠지만 그것 역시 한편으로는 북한 돕기를 방해하고 있다. 왜냐면 평양에서 두 사람이 악수한 이후부터 북한에 대한 보도는 밝은 것 일색으로 돌변했기 때문이다. 누가 어떻게 참혹하게 죽어가고 있는지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진실이 은폐되기 시작한 것이다.
남을 돕는 행위는 밥 주고 약 주고 인터넷기술지도 해주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남을 도우려는 의지는 실상을 보고 느껴야만 가능하므로 진실보도가 우선순위다. 거지 하나 없는 평양거리만 TV로 보면서 누가 봉사하러 가자고 나서겠나!
이밖에도 현행 실정법과 절차상의 문제와 상대방의 태도 등 장애물이 많지만 최근의 변화로 보면 이제는 대학이 앞서서 선구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우리 민족의 역사발전에서 새로운 전기를 만든 선구자 대열에는 항상 학생이 있었듯이 우리는 북한돕기에도 선구적 결단을 해야 한다. 어설픈 통일론의 말장난은 잠시 접어 두고 체제와 이념을 초월해서 함께 잘 사는 길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그걸 위해서는 학문을 통해서 그 사회발전의 원동력을 키워주는 것보다 더 훌륭한 봉사활동은 없다. 과학기술만이 아니라 인문 사회 예술 등 모든 분야가 큰 도움이 된다. 이런 봉사활동부터 적극 전개하면 통일의 길도 그만큼 빨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