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신문에서 연재하는 칼럼입니다.
그러나 상아탑은 진짜 상아로 만들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대학을 상아탑이라고 부르기를 굳이 고집하는 사람들은 대학을 '현실'에서 멀리 떨어진 순수한 학문의 전당으로서만 오롯하게 보존하려는 갸륵한 학문적 보수주의자일 경우가 많다. 이 때 현실이라는 것은 군력, 시장, 기업을 주로 의미한다.
대학이 권력 판과 시장 판이 되어서는 대학의 존재 이유가 없어진다. 그러나 대학이라고 해서 권력과 돈으로부터 자유로운 특별한 공간과 시간 속에 존재할 수는 없다. 대학은 현실 속에서 존재할 수 밖에 없고 또 현실을 학문의 주제로 삼을 수 밖에 없다.
대학은 불교에서 연꽃에다 의탁하는 사바와 열반 사이의 논리와 같은 이해(理解)를 자신에 대하여 가질 필요가 있다. 진흙 밭에서 살되 가장 초월적인 아름다움의 꽃을 피운다는 논리 말이다. 더 냉정한 진리는 진흙 밭에 뿌리를 두지 않고는 연꽃은 필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대학에 '학교 기업'을 설치 하는 것을 법이 허용할 것 같다는 보도는 반갑다. 옛날의 선비는 나아가면 벼슬을 하고 물러 가면 농업과 학문연구를 겸업했다. 이 순환을 지식인의 일생이 겪는 당연지사로 알았던 것 같다. 도연명의 귀거래사가 노래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런 내용이다.
歸去來兮여 田園이 將蕪하니 胡不歸리요(돌아가리로다, 농토가 황폐해지려 하니, 어찌 돌아 가지 않으리요)
기업은 농사의 변화된 확장이다. 농업 시대에도 시장은 있어 왔다. 농사꾼이 수확 가운데서 정부에 조세(租稅)를 내는 것은 수직적이고 강제적인 재화의 흐름이다. 농산물이나 수공업품의 상업적 거래는 수평적이고 자발적인 민간끼리의 재화의 흐름이다.
농업시대를 지나 공업, 정보 서비스업 시대가 되었다. 공장이나 사무실은 논 밭과 별로 다를 것 없는 노동의 현장이다. 농사 짓는 일은 고상하고 다른 현대적 생업은 비천한 것이라고 보는 것은 옹졸한 착각이다. 동양의 전제왕조(專制王朝) 사회의 권력은 시장이 가진 수평성과 자발성을 두려워 했다.
산업 혁명 이후 등장한 마르크스주의는 기업을 임금 노동자에 대한 착취의 현장이라는 낙인을 찍는 일에 온갖 노력을 쏟았다. 한국의 상아탑이 시장과 기업을 보는 각도는 전제 왕조의 음모적 천시(賤視)와 마르크스주의의 착각한 중상(中傷)의 영향을 과도하게 받았다.
아직도 우리 나라의 상아탑은 기업과 시장에 대한 이런 편견에 흠씬 물들어 있다. 학생들에게 조만간 그들이 합류하여 봉사하게 될 사회를 더럽고 불의에 찬 저주 받은 모임으로 가르치는 일이 빈번하다. 그들은 대학에서 反사회, 反기업, 反시장의 논리를 습득한다. 이들은 일단 反직장적 인간으로서 직장에 취직한다.
한국의 대학 졸업생들이 사회에 나갔을 때 어리둥절해 하고 그들을 받아 들이는 사회는 불편해 하게 된 데는 또 하나 다른 까닭이 있다. 현실 사회가 대학을 졸업한 사람에게 기대하는 수준에 그들의 지식이 미치지 못 한다는 점이다. 현실로부터는 편벽(偏僻)되고, 학문으로서는 용잡(冗雜)한 상아탑적 공주병 속에서 공부해 온 때문이다.
직장은 이런 젊은 이들을 다시 정상적인 직장인으로 만드는데 엄청난 노력과 시간을 들여야 하게 된다. 그리고 젊은 당사자들은 그 동안 개인적으로 배운 것과 현실 사이의 갈등에 시달리게 된다. 이 갈등을 평생 극복하지 못 하고 마는 경우도 허다하다.
대학 안에 기업이 부설되고 거기서 기술개발, 영업, 위험부담 사이클이 대학 외부의 여타 기업과 개방된 경쟁과 제휴 속에서 진행 되면 이것은 앞에 말한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길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대학은 상아탑이기 보다는 살아 있는 연꽃이 되는 편이 훨씬 더 바람직하다.
강 위 석 월간 에머지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