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맑은 얼굴들이지만, 저들의 속은 시커먼 응어리들로 가득 차 있을 것이 뻔하다. 대학에 들어오기 위해 지난 3년간 입시마왕에 그 영혼을 저당 잡혔던 그들이니, 가슴 속에 제대로 변변하게 남아 있는 것이 있을 리 없다. 대학의 문을 사선삼아 넘어온 저들이니, 정신적으로는 ‘공황’ 바로 그것일 것이다.
이들이 대학에서 제대로 공부할 수 있으려면, 생명줄처럼 기대었던 암기학습 병독부터 해독시켜야 한다. 저들의 눈은 입시병독 때문에 아직도 기묘한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
동물이나 인간이나 통제 할수 없는 힘에 부닥치면 인지(認知)의 문부터 닫아버리기 마련이다. 그런 후에는 희뿌연 안개 속에서 안간힘이나 쓴다. 그렇다고 뾰족한 해결이 있을리 없다. 그래서 더욱더 생각하기를 포기한다.
이런 점은 동물실험에서도 잘 발견된다. 두 마리의 쥐를 각각 우리 속에 넣고 전기충격을 가한다. 단, 한쪽 우리에는 전기 충격을 차단할 수 있는 막대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양쪽 우리 모두는 동일한 전기 회로로 연결돼, 한쪽에서 전기가 끊어지면 다른 쪽의 전기도 함께 끊어진다.
쥐가 들어있는 양쪽 우리에 설치된 전기장판에 전기를 넣고 쥐들에게 전기 충격을 주기를 되풀이 한다. 수십 차례 충격을 받는 동안, 쥐 한 마리가 마침내 전기를 끌 수 있는 막대를 찾아낸다. 바닥에서 전기 충격이 계속 가해오면 녀석은 필사적으로 막대에 매달려 고통의 원인을 제거한다. 스위치에 매달린 쥐는 자기혼자만 민첩하게 활동한다.
반면, 전기 충격을 차단할 수 있는 스위치가 없는 우리 숙의 쥐는 엉뚱한 행동을 해 보인다. 처음에는 탈출구를 찾아 미친 듯이 뛰어다니다가 이내 포기하고 만다. 녀석은 아예 구석에서 몸을 움츠리고 그 어떤 전기 충격에도 꼼짝달싹하지 않고 다른 편 쥐를 쳐다보지도 않는다. 문을 열어도 도망칠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바로 무기력의 결과이다. 녀석은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꾸어 버린 것이다. 더 이상 주변의 사물에 주의를 기울이지도 않는다. 이미 녀석의 몸체에는 전기 충격을 완화하는 내부 마취제인 엔도르핀이 충분할 정도로 분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고통을 마취시킨 채 아예 그 고통을 즐기게 되는 것이다.
인간 역시 자신의 통제범위를 넘는 급작스러운 충격에 노출되면 세상에 대한 문부터 닫아버린다. 이렇게 진행되는 생각의 포기와 자기반성의 폐기가 바로 ‘무지의 충동’을 불러일으킨다.
반대로 ‘배움의 중단’, ‘인지의 중단’은 그가 겪는 고통의 대가로 엔도르핀의 마취 기운을 지불한다. 고통에 겨운 사람들일수록 더욱더 무지를 향하게 되는 것이다. 무지 충동에 약한 대학행정가, 교수, 학생들이 많이 서성거리는 대학일수록 그런 대학에는 먹자판, 놀이판들이나 빛을 발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