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신문에서 연재하는 칼럼입니다.
다른 하나는 개별 대학에서나마 전국적 성적순 줄 세우기를 지양하고 그것을 지방별 성적순 줄 세우기로 바꾸는 것이다. 전국의 모든 수험생을 동일한 문제의 시험을 치게 하고 그 성적을 한 줄로 세우는 바람에 대학들은 각기 자기네 대학의 입학 커트라인 순위를 가지게 되었고 그것이 대학들 사이의 거의 고정적 순위가 되고 말았다.
이것이 대학을 신분제적 계급 세계에 몰아 넣었다. 대학에 고정된 순위가 매겨지면 대학 간에는 경쟁이 들어 설 여지가 별로 없게 된다. 이것을 다소라도 바꾸는 어떤 것이든 유연화 카테고리에 들어 간다. 대학의 자유화와 유연화는 한국 대학의 발전에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이다.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대학 사이의 경쟁을 불러 일으킬 가능성의 마당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대학의 자유화는 정부의 간섭에서 벗어 나는 것이다. 유연화는 대학 자신이 구태에서 벗어 나 스스로를 재조직하는 것이다. 자유화 없이는 유연화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전자는 후자를 위한 더 기본적 전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방안이 서울대를 곧장 개선시킬 것으로 기대할 수는 없다. 그것은 이 방안의 목표하는 바가 발전이 아니라 평등에 있기 때문이다, 서울 대학이 입학의 평등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은 가소로운 점이 있다. 자신이 세계적으로는 '별 볼일 없는' 대학이라는 점은 모르고 한국에서는 가장 좋은 대학임이라는 점에만 가슴이 벅차서 발전을 위한 각고(刻苦) 보다는 평등이라는 시혜(施惠)를 먼저 생각한 모양이다.
서울대가 세워야 할 목표는 국내적 입학생 평등 선발이 아니라 세계 일류 대학이 되는 것이라야 한다. 이 보다 한 술 더 떠 서울대학교와 경쟁하는 대학들의 관계자 가운데는 서울대학교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있기도 하다. 대학의 평준화 주장이 극도에 가면 이런 환상적인 극단론에 도달하는 것이다.
국내에는 몇 가지 대학의 분류 기준이 있다. 서울대학과 非서울대학, 수도권 대학과 지방대학, 국공립 대학과 사립 대학 등이 그것이다. 이런 분류는 대학의 평준화를 주장할 때 곧 잘 동원된다. 모든 대학이 다 세계적 명문 대학이 될 수는 없다. 국내에서도 대학 사이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여러 가지 면에서 차등이 날 수 있다.
학생들도 적성에 따라 재능에 따라 각자 차등이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모든 학생이 다 명문대학에 입학하고 다 우등생이 될 수는 없다. 대학 공부를 해야겠다는 학생들에게 누구라도 어떤 한 대학에 들어 갈 기회가 있기만 하면 그것으로 평등은 얼추 다 이루어진 것이리라고 볼 수 있다.
흥미있어 보이는 것은 서울대학이 지방별 신입생 쿼터제를 실시하면 명목은 평등에 있었으나 그것이 실제로는 더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는 길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지방 고등학교가 가진 불이익 때문에 대학 입학 시험에서는 성적이 서울대에 진학할 수 없었으나 대학에 들어 가서 같은 조건으로 공부했더라면 실제로 합격한 다른 학생 보다 공부를 더 잘 했을 수 있는 학생을 뽑을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한국은 지금 국가의 전략적 목표 가운데 최우선 순위의 하나를 세계적 대학 서너개 만들기에 두어야 한다고 나는 본다. 그 가운데 구체적으로 가장 높은 가능성을 주어야 할 곳이 서울대다. 그 길은 세계적 교수, 연구자, 학생들을 후한 조건으로 모으는 데 있다. 한국의 월드컵 축구 팀이 성공한 것은 프로 구단이 외국 선수를 데려 오고 국가 대표팀을 외국 감독에게 맡겼던 데 있었음을 서울대는 먼저 곱씹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덕을 본 것은 외국이 아니라 우리 나라였다. 선수 선발의 국내적 평등화는 가장 나쁜 길일 수 있었다.
<강 위 석 월간 에머지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