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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학신문 칼럼] 한국대학신문
기초학문과 대학의 관계
보호학문 분야 지정, 지속 육성해야
대학의 연구 환경의 질 제고 선행
< 올해 학술과 연구와 관련해 학계나 언론에서 가장 많이 거론된 키워드는 단연 '기초학문의 위기'였다. 인문학에서 시작한 위기론은 이공계까지 모든 학문분야로 퍼져갔다. 그렇다면 어제 오늘 이야기도 아닌 이러한 '기초학문의 위기론'이 다시 심각하게 거론되는 이유에 대해 보다 실제적인 분석을 해 볼 필요가 있다.>

기초학문의 위기라는 중심에는 대학이라는 조직이 있다. 현대 사회에서 대학은 기초적이고 장기적인 학술연구는 물론 국가 전체적인 연구개발 노력의 균형과 질을 보장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오고 있다.

이는 대학은 연구와 교육 활동을 통해 지식기반의 창출과 전달은 물론 과학적 표준유지, 학습의 장 제공, 사회의 각 부문에 요구되는 고등인력의 공급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더욱 근본적으로는 인간과 자연을 둘러싼 현상에 대한 이해와 지식의 창출과 축적이라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특히, 최근 대학에서 이루어지는 학술연구의 방향은 교육을 위한 연구에서부터 직접적인 경제성과를 추구하는 산학협동연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고 있다. 즉, 대학의 학술연구는 기초연구와 학문후속세대 양성이라는 과거의 역할은 물론 사회경제적 수요도 충족시켜야 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국가혁신체제(National Innovation System), 혹은 지식기반경제(Knowledge-based Economy)에서도 대학의 학술연구에 대한 역할을 강조하는 것에서 잘 드러난다.

그렇다면 대학 사회에서 거론되는 기초학문의 위기 핵심은 무엇인가. 인기 학문분야로 여겨지는 법학, 의학, 경영학 등 입시 경쟁이 치열한 학문분야에는 위기론이 거론되지 않고 있다. 이는 기초학문의 위기는 지원자가 줄어들어 해당 학문분야가 결국 고사할지도 모른다는 뜻이 깊게 담겨있다.

그러나 이 문제만 가지고 기초학문의 위기를 헤쳐나가기에는 한계가 있다. 기초학문의 사회적 역할과 중요성을 감안할 때 이를 보호학문 분야로 지정하여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육성하되 사회경제적 수요도를 감안한다면 교육의 양적 축소는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기초학문의 지원'이 곧 '기초학문의 발전'을 담보시키지는 않는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유럽에서는 국립연구기관들이 과학연구의 중추를 담당하고 있는데 비해 왜 미국에서는 대학이 연구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일까? 이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중앙정부가 약했던 미국의 정치적 전통, 대학 연구의 민간 지원 부분 등을 세밀히 들여다보아야 답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2차 세계대전을 전후에 국립연구소가 부재했던 상황에서 미국의 많은 과학자는 대학에 소속되어 있었고 당연히 대학은 국가가 발주한 연구프로젝트를 맡게 된다.

정부의 엄청난 연구비에 힘입어 미국의 각 대학들은 세계적 대학으로 성장하게 되고 이러한 과정에서 생겨난 용어가 '연구중심대학'이다.

연구중심대학은 이제 우리에게도 그리 낯선 용어가 아니다. 21세기 지식기반사회를 대비한 고등인력양성사업의 일환으로 교육인적자원부가 시행하고 있는 '두뇌한국 21 사업'(Brain Korea 21)이 추구하는 바가 바로 연구중심대학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연구의 중핵이 되는 대학 중심의 연구체제와 연구소 중심의 연구체제 중 어떠한 방향이 더욱 우리에게 합리적이고, 가능성이 높은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상당수의 국책연구소가 있는 우리에게는 국책연구소 중심의 연구체제가 더욱 현실적인 대안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 국책연구소가 산업기술 기반 구축에 목표를 두고 있다고 볼 때, 기초학문 육성의 가능성, 연구방향의 탄력성, 학제적 연구에서의 편의성, 후속연구인력 양성의 우월성을 독점하고 있는 대학중심의 연구체제가 우리에게 최선책은 아니어도 설득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

물론 한국에 적합한 연구중심대학의 모델이 'BK 21'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미국식 연구중심대학을 따라갈 수도 없고, 따라가서도 안 되는 우리의 현실을 냉정히 생각해야 한다.

이렇게 볼 때 남는 문제가 하나 있다. 기초학문의 육성이다. 기초학문에 몸담고 있는 연구자들은 '기초학문을 무관심 속에 방치한다면 한국의 미래는 돌이킬 수 없는 수렁에 빠질 수도 있다"고 주장하고 있고, 'BK 21'을 반대하는 의견 중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 문구가 '기초학문의 붕괴와 황폐화'라는 용어다.

'99년 2명의 교수에 이어 얼마 전 서울대의 수학과 교수가 교수직을 박차고 '고등과학원'으로 자리를 옮겼다하여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고등과학원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 부설이지만 완전히 독립된 조직으로 미국의 프린스턴 고등연구원을 모델로 96년 10월 설립되어 현재 수학부와 물리학부, 계산과학부 등 3개 학부에 14명의 교수진, 37명의 박사급 연구원이 있는 연구소이다. 왜 그는 연구중심을 이루는 대학을 박차고 이름도 생소하고 규모도 비교할 수 없는 작은 연구원으로 옮겼을까 의아해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이른바 국내에서 연구중심대학이라 할 수 있는 중요 대학들의 연구 환경의 현실을 살펴볼 때 그 수학과 교수의 선택을 우리는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기초연구의 지원 목적은 단기적 효과보다는 대부분 공익적이고 장기적 기반 육성이라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기초 지식의 차이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미래가 보인다는 이야기가 있다. 단지, 연구비의 증액과 응시자의 증가만이 이 차이를 줄일 수는 없을 것이다.

일 예로 우리의 근 현대사는 일제침략·6.25전쟁·4.19혁명·군사정권 경제개발·민주화 운동 등 20세기 세계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사적 연구자료의 보고임은 언급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그러나 이러한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한국 근현대와 관련된 구체적이며 실증적인 집중연구는 충분치 못한 실정이다. 이는 과거의 지식에 매달리지 않는 새로운 지식창출의 한계와 학문간의 칸막이 제거 그리고 대학과 학계의 경계를 넘어 타 분야로의 영역 확대가 되어야만 가능하다고 본다. 특히 일차자료 생산에 역점을 두는 기초연구에 중점을 두어야만 그 빛이 더욱 발화할 것이다. 이렇게 될 때 연구와 교육이 결합될 수 있고 교육 내용의 실질성 확보와 학생들의 능동적 참여를 유도할 수 있다.

요즈음 중국과 대만 그리고 동남아에 불고있는 '한류' 열풍이 가져다 주고 있는 엄청난 부가가치를 볼 때, 바로 우리의 기초학문 육성도 지금 당장은 아니라 해도 근시일내 지식경제에 큰 부가가치를 분명히 가져다 준다는 점을 정부나 학계 모두는 알고 있을 것이다.

지원자나 연구비가 적은 학문이 기초가 아니라 반드시 있어야 하는데도 소외되고 있는 학문이 기초학문이라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학술연구 인프라는 기초학문에서 나온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기초학문을 육성해야하는 국가와 대학의 임무도 바로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한국대학신문 칼럼 | 입력 : 01-09-15 오전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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