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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학신문 칼럼] 한국대학신문
해아래 새로울 게 없는 은원
김현종<전주대 역사학과 객원교수>
오사마 빈 라덴으로 추정되는 이슬람 테러그룹이 미국에 동시다발 테러를 저질러 국제 사회의 긴장이 높아가고 있다. 테러는 어떤 말과 논리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상대방과 인과관계를 갖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의 아들 딸이고, 그 아버지와 어머니 또한 할아버지 세대와 할머니 세대의 소산이다. 역사는 돌고 도는 법이며 해 아래 새로운 것이 거의 없듯이 은혜와 원수도 어느날 갑자기 나타나는 게 아니다. 특히 국가간의 관계에서는.

나는 오늘 아메리카 인디언, 이슬람 세력, 서유럽계 백인 및 그들의 국가, 남유럽계 백인과 그들의 국가 같은 4자관계에 대해 말하고 싶다.

서부 영화를 본 적이 있는가. 정의로운 총잡이는 아름다운 귀부인을 지키고, 미지의 신대륙으로 이주해 들어가는 힘없는 서민의 포장마차 대열을 지키고 나아가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 문명과 문화를 지킨다. 이에 반해 살이 뒤룩뒤룩 찌고, 돼지비계에 난 털 같은 수염을 기른 악당은 계속 죽어난다. '호이호이' 알지도 못할 소리를 지껄이며 쳐들어오는 인디언도 죽어

난다.

영국 등지에서 이민온 서유럽계 이민은 선이고 스페인 등 남유럽계 백인은 게으르고, 인디언은 무지몽매한 문명의 도적 '넘'인가? 영화의 무대가 되는 서부는 어떤 지역인가. 인디언의 땅이다. 그리고 같은 백인 중에서도 앞서 비곗 덩어리로 묘사된 스페인 계 백인들이 먼저 정착한 땅이다. 미국 사람으로 표현되는 백인, 앵글로 색슨의 신교도는 후참자 중에서도 후참자다.

이른바 와스프(White Anglo Saxon Protestant) 중심의 미국인들이 록키 산맥 서쪽과 남동부의 플로리다를 멕시코, 스페인계 국가로부터 위협 협박, 매수해 영토를 확장한 것은 역사책에 나오는 사실이다.

인디언은 어떤가. 그들이야말로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이다. 평화롭게 살고 있는 땅에 백인들이 들어와 질시와 반목, 대립과 전쟁을 몰고 왔다. 그들이 가져온 것은 화약 냄새와 경제적 수탈만이 아니다. 많은 인디언들이 백인들이 들여온 전염병 균에 감염돼 죽었다.

만일 이런 일이 오늘의 세계에서 벌어졌으면 어떻게 됐을까.

아주 작은 예로 최근 외신은 영국산 쇠고기에서 광우병으로 죽은 쇠고기가 발견되자 거의 모든 나라들이 영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금지하고, 항의했다고 보도한 적이 있다. 전염병 균을 묻혀와 고의로 유포한 게 명백하다면 이는 세균전을 시도한 셈이고, 최소한 국제사법 재판소에 손해배상 청구 감이다.

인디언은 그런 것을 알지도 못했고 주장도 못해봤다. 그저 총에 맞거나 전염병에 걸려 죽어갔다. 그리고 지금은 인디언 보호구역 정도에 사는 천연기념물적 존재가 되었다. 무슨 잘못을 저질렀길래 그들은 멸종에 가깝게 죽어갔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오늘날 세계의 주축을 이루는 미국은 그런 기초 위에서 성립되고 발전해왔다. 미국 못지 않게 남미에서도 원주민이 죽고 스페인계 백인이 득세했다. 그러나 남유럽계 백인이 식민해 만든 나라들과 서유럽계 백인들이 식민해 만든 나라들은 다르다. 적어도 남미 국가에서는 원주민들이 상당수 살아 있다. 혼혈이 많고 백인이 많아도 남미 인구의 30∼50%는 원주민인 인디언들이다.

북미에서는 인디언은 씨가 말랐다. 서유럽계 백인들이 건설한 또다른 식민국가 호주도 마찬가지다.

알려진 대로 영국 내에서도 잉글리시와 스코티시의 갈등은 첨예하다. 나는 올 여름 스코틀랜드를 여행하다가 그들이 잉글리시를 비난하며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주로 잉글리시들이 이민해 나라를 만든 호주에서는 원주민이 다 죽었지만(인구의 1∼2%수준) 스코티시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이주한 뉴질랜드에서는 원주민들이 꽤 살아 있다(인구의 10%내외)"

백인, 그 중에서도 서유럽계 백인들의 잔혹함을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다. 오늘의 미국 세계무역센터 테러로 불거진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의 갈등에 대해 우리는 이슬람 쪽의 이야기를 들어볼 필요가 있다.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이 처음으로 한판 세게 붙은 십자군 전쟁은 과연 기독교도들의 정의의 전쟁인가? 이슬람 쪽에서 보면 '이슬람이 공격당했다

(Under Attack)'고 할 수 있다.

지금은 한국 사람에게 한국 사람 고유의 잣대가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이라는 국가가 미국편을 들더라도 그것은 1차적으로 한국 사람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한국대학신문 칼럼 | 입력 : 01-09-22 오전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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