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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학신문 칼럼] 한국대학신문
첨단기술시대의 스승상
박이문 <전 포항공대 교수>
교수는 직업적 기능인...학생은 '기술 매입자'
신뢰ㆍ존경 바탕 전통적 사제관계 되살려야
인류를 다른 동물과 구별할 수 있는 결정적 잣대의 하나는 교육이다. 최소한의 교육과정을 밟지 않은 인간은 존재할 수 없다. 그러므로 교육의 개인적 및 사회적 중요성은 자명하고, 우리의 선조들이 "스승의 것이라면 그림자도 밟아서는 안된다”고 말해왔을 만큼 스승을 무조건 존중해야 함은 당연하다.

이러한 우리의 전통적 스승관에 의하면 ‘군사부일체’라는 유교적 개념으로 대변되어 왔다. 한 가정의 복지를 위해서 그 중심에 있는 가부장 즉 아버지의 권위가 존중되어야 하듯이 수많은 가정의 집단인 국가가 질서를 갖추려면 중심에 있는 군주 즉 사회의 최고지도자의 권위가 존중되어야 하는 것과 똑같이 교육을 통해서 세대와 세대를 이으면서 그 사회의 생존력을 전수하고 번영을 도모하게 하는 교육자의 권위가 존중되어야 한다. 교육은 귀하고, 스승은 존경스럽고, 학교는 지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순수한 공간이라는 것이 전통적 관념이었다.

그러나 근년에 초중고등학교에서 잦아진 학생들 사이에서 뿐만이 아니라 사제지간 및 교사와 학부모들 간에 일어나는 폭력적 분쟁들이나, 작고 큰 교육계와 학계에서의 수많은 비리, 초중고등학교에서의 교원노조와 대학에서도 준비되고 있는 교수노조의 조직과 활동으로 교육자, 학교 그리고 교육에 대한 이미지는 험악하게 달라져가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를 개탄하기는커녕 오히려 환영하고 정당화 하면서 '군사부일체’의 개념 속에 담겨있는 전통적 스승관은 현대를 살아가는데 당장 필요한 전문적 지식과 기술의 전수와 훈련과는 상관없는 인문학적 고전 읽기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봉건시대의 농경사회체제와 유교문화의 도덕적 윤리규범이 지배하고 있던 전통적 한국사회에나 맞는 구시대적 특수한 산물로서, 21세기 첨단 산업문명에 동참하고 있는 한국사회에서는 더 이상 통용될 수 없음으로 폐기되고 새로운 스승관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올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지난 몇십년 동안 우리 사회에서 달라진 국가의 원수에 대한 국민들의 태도, 남편에 대한 부인의 태도, 아버지에 대한 자녀의 태도는 충격과 개탄이 아니라 환영과 기쁨의 고무적 대상이 될 수 있다. 이와 같은 흐름은 개인의 인간적 자유, 인간이 갖고있는 존엄성의 인식, 사회적으로는 평등사상의 확대 그리고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적 의식의 정착 등의 징후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똑같은 논리가 스승과 제자의 관계 변화에 대해서도 적용된다고 주장할 수 있다. 스승은 하나의 직접적 기능인이며 학생은 돈을 내고 직업인으로서의 스승으로부터 특정한 기술을 얻는 매입자로 그들의 관계는 그러한 경제적 관계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 만큼, 스승은 그가 갖고 있는 기술의 수준에 따른 권위를 가질 뿐 인격적 권위를 발휘할 수 없다고 주장할 수 있다.

이러한 주장은 자신의 자식을 잘못 대했다는 이유로 교사들에게 강렬하게 항의하는 중고등학교 학부모들이나, 결례된 말투나 태도는 물론 때로는 물리적 폭력으로 자신들의 스승을 대하는 중고등학생들을 변호해주고, 교사가 국민 일반에게 필요하다고 전제된 지식과 덕목을 청소년들에게 전수하는 마당으로만 믿어왔던 초중고등학교 만이 아니라 심오하고도 순수한 진리의 전수와 탐구 및 깊고도 고귀한 덕목적 지혜와 연마의 장으로만 믿어 왔던 대학이 교원노조 혹은 교수노조의 틀에서 투사로 변한 교사나 교수들의 이념적 및 경제적 살벌한 전쟁터로 변신하는 현상을 정당화 할 수 있다.

과연 이러한 변화를 자연스러운 발달이라고 볼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그것은 사회적 큰 문제이다. 과연 교육은 전문적 지식의 전수에만 있으며, 사제간의 관계는 경제적 거래관계로만 환원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인간적 신뢰와 마음으로부터의 존경심이 가지 않는 스승으로부터 깊은 지혜는 물론 얕은 지식도 제대로 전수될 수 없다.

군사부일체라는 말에 함축돼 있는 전통적 스승관을 송두리째 폐기해야 하는가? 결코 그럴 수 없다. 오래된 것 속에는 새 것 속에서 찾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귀중하고 그 가치가 변하지 않는 진주가 들어 있는 경우가 많다.

오늘날 교내에서의 사제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학생들, 학부모들의 이성적 반성만이 아니라 교사, 교원, 교수 자신들의 직업적 및 도덕적 반성도 똑같이 필요하다. 사제간의관계는 법적(judiciary) 즉 객관적인 제도적인 것으로 환원할 수 없는 인간적(fudiciary) 즉 주관적인 도덕적 심성의 차원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대학신문 칼럼 | 입력 : 02-05-13 오전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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