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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학신문 칼럼] 한국대학신문
지식경제시대와 교육 평준화
강위석<월간 에머지 편집인>
조선조의 왕은 종묘와 사직에 제사를 올렸다. 종묘는 세습 정권인 왕의 조상 신 사당이고 사직은 곡식의 풍작을 주관하는 신이다. 당시에는 농업이 경제의 거의 전부였다. 그러므로 사직은 경제의 신이라고 보면 되겠다.

종묘는 다른 말로는 정치의 신이었다. 민주주의 세상이 되면서 세습 왕통은 없어졌다. 그래서 종묘 대신에 인민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종묘에 올리던 제사는 선거로 대체되었다.

마르크스주의 경제사가들은 경제를 착취하는 사람과 착취당하는 사람의 대립의 장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지식이 가장 중요한 생산 요소가 된 시대가 되면서 착취 이론은 무효가 되었다. 지식이 자본의 자리와 노동의 자리를 합병하면서 들어섰다.

지식 경제 시대의 자본가 아닌 ‘지식가’는 다른 사람의 노동을 전혀 착취하지 않는다. 그들의 부유를 부러워할 수는 있겠으나 계급적으로 대립할 근거는 없어졌다. ‘지식가’는 귀족, 지주, 자본가와는 전혀 다르고 인기 연예인이나 운동선수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지식은 교육과 학습이 만든다. 농업 경제 시대에 땅이 가지고 있던 지위를 교육이 차지하게 되었다. 다른 점은 땅, 노동력, 왕권은 전쟁을 통하여 승리자가 차지할 수 있었으나 지식은 교육과 학습을 통하여 스스로 체험에 의해 획득되지 않고서는 점령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땅이 더 비옥하기 때문에 같은 노동, 같은 비용을 들여도 소출이 더 많은 땅은 지대가 그만큼 높게 매겨진다. 이것을 경제학은 차익지대라고 부른다. 지금부터는 거의 오직 지식의 비옥 여부에 따라 경제적 부가가치 생산의 차이가 일어 날 것이다. 이 차이는 교육이 결정한다.

교육의 평준화는 평등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사회주의의 유물이다. 평등이라는 가치가 뜨거운 것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밑의 계급을 착취하는 윗 계급의 불의가 불평등의 원인이라는 정의론적 에너지 때문이다. 경제적 가치는 오직 노동에 의하여 창출되는데, 착취 계급은 노동이 창출한 가치를 착취한다는 것이 불의의 정체다.

교육에 있어서의 평등은 애초부터 착취와 결부된 정의론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공부 잘 하는 학생이 공부 못 하는 학생의 생산물을 착취해서 공부를 잘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학교 간의 편차를 없애려고 평준화 정책을 펴더라도 같은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 사이에 생기는 편차는 없앨 수가 없다.

학교 평준화 정책은 교육의 평등은 이루어 내지 못 하는 대신 교육의 질을 전국적으로 떨어뜨리는 데는 탁월한 효과를 낸다. 교육의 질 저하는 지식 경제 시대에는 경제 후퇴를 가져오는 최고 최대의 원인이다. 국내에서는 빈곤을 만들어 내고, 교육 개혁을 통해 지식 경제 혁명을 달성한 다른 나라와는 스스로 경제 격차를 만들어 낸다.

교육은 지식 경제 시대의 종묘와 사직이다. 교육의 가장 어려운 점은 그것의 수요자인 학생이 한 편으로는 공부를 해야겠다는 열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막상 공부하기를 좋아하는 학생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책 읽기 좋아 하고, 탐구하기 좋아 하고, 사색하기 좋아 하고, 토론하기 좋아 하는 교사가 많으면 학생들은 그들을 본 받을 것이다. 좋은 교사가 많아서 좋은 학생이 불어나면 교육은 그 만큼 향상과 평준화가 동시에 이루어진다.

한국대학신문 칼럼 | 입력 : 02-04-22 오전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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