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사라’를 법원이 음란물로 판결하면서 마 교수는 대학에서 해직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98년 사면복권과 함께 복직이 이뤄졌지만 2000년 6월 학과 인사위원회로부터 ‘논문실적이 부실하다’는 이유 등으로 재임용 부적격 판정을 받자, 휴직계를 제출하고 외부와의 접촉을 끊어왔다.
그는 “재임용에서 탈락시킨 동료교수들에 대한 배신감 때문에 견디기 힘들다”며 학교에 사표를 제출하기도 했으나 학교측의 반려로 이번 복직이 이뤄졌다.
4일 연구실에서 직접 만난 마 교수는 오랜동안의 법정투쟁과 재임용 문제를 거치며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탓인지 거동이 불편할 정도로 건강이 악화된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연구실에 있던 그의 한 애제자는 지금은 많이 호전된 상황이라고 귀뜸했다.
마 교수는 기자의 물음마다 짧은 대답으로 말을 아꼈지만 자신의 소회를 솔직담백하고 분명한 어조로 표현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집에서 칩거하며 한 일간지에 소설 ‘별 것도 아닌 인생이’를 연재했다. 건강이 아직 회복되지 않은 상태이다. 만성 위염과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다.”
다시 강단에 선 소감이 어떤가.
“오랜만에 학생들 앞에 서는 게 많이 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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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 교수는 아직도 우리 사회가 성과 욕망의 문제를 금기시하고 있고 지식인들이 이 주제에 대해 이중잣대를 들이밀고 있다며 질타했다./김준 기자 |
“정치적 냄새가 짙은 사건이었다. 구속기소가 선거 직전 일어났고, 선거 직후 풀려났다. 지금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일 것이고 설마 있더라도 불구속이나 판금 정도였을 것이다.
학기중에 강의를 맡던 교수를 전격 구속하는 식은 아니었을 거로 본다. 그러나 성에 대한 공안기관의 인식이나 지식인 사회 내부의 불관용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민족문학 진영에 속하는 작가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일전에 누드 퍼포먼스 사건으로 사람들이 기소된 사건만 봐도 그렇다고 본다.”
그러한 변화가 지지부진한 이유는 뭐라고 보나.
“작가들 스스로의 책임이 크다. 자기 검열을 당하면서도 싸우지 않고, 동료 작가에 대한 변호에도 인색하다. 나는 아직도 문단에서 ‘차가운 감자’ 신세라고 느낀다. 문단의 포용력이 너무도 부족하다.”
-검열에 대한 공포를 말해왔는데.
“아직도 검열에 대한 심각한 공포를 느끼고 있다. 문화일보에 연재한 소설(‘별 것도 아닌 인생이’)도 중간에 경고를 받아서 출간을 보류하고 수정 후 낼 생각이다. 다른 작가들도 마찬가지이다. 많은 작가들이 아직도 일상적으로 자기검열을 하게 돼 있는 상황이다.”
성과 욕망을 다루는 담론을 해방시키고 공론화해야 한다는 애초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나.
“어떤 시대에서나 결국 가장 보편적 주제가 문학의 화두가 될 수밖에 없다. 그 중 가장 중요한 소재는 사랑이고 그 밑바닥에는 반드시 성(性)이 있다.
이를 구별지어서 정신적 사랑만 좋다고 하고 육체적 사랑은 표현하지 말라고 한다면 (문화적) 후진국가라고 볼 수밖에 없다. 또 (국가나 문화권력이) 대중을 무시하면서 ‘우리가 골라준 것만 읽어라’고 하는 것과 똑같다.
일어 번역돼 일본에서 출간된 ‘즐거운 사라’가 10만부 이상 팔린 것을 보면 (아직도 판금된 상태인 즐거운 사라와 비교할 때) 우리 사회가 관용할 수 있는 폭도 너무나 좁다는 느낌이다.”
재임용 문제로 고초를 겪은 걸로 알고 있다.
“88년 부교수가 된 후 15년이 넘었는데도 아직 부교수로 남아있다. 사실 재임용 문제도 사회의 성 통념을 거스르는 활동을 해온 내 이력이 결국 꼬리를 물고 나를 괴롭히는 일 같다.
올해 말에 재임용 심사를 받는데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내 작품을 작품으로 인정해주느냐일텐데 아직은 모르겠고, 일단 강의와 연구를 열심히 하고 싶은 생각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