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 비슷한 시기 인터넷 결혼정보업체인 닥스클럽이 수도권 거주 5백92명의 직장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절반이 넘는 52.0%가 ‘직장생활에 전공이 도움이 안 된다’고 밝혔다.
이는 본지의 같은 조사에서 대학생들이 진학의 첫 번째 이유로 ‘취업준비’(31.3%)를 꼽은 것과 비교해 봤을 때도 모순된 결과여서 차이가 시사하는 바가 주목됐다.
전문가들은 교육이 입시중심으로 왜곡된 상황을 일부 지적하면서 결국 가장 큰 문제로 각 대학이 진로지도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음을 꼽는다.
-한국 대학엔 진로지도가 없다?
-“취업정보센터·학생생활연구소는 진로지도의 극히 일부일 뿐”
대교협 이재기 정책연구부장은 “학생들이 중·고교 시절 입시준비를 위한 수동적 학습에 익숙해져 자신의 정체성이나 진로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 대학시절을 편하게 보내려는 성향이 매우 강한 편”이라고 말한다.
입시전쟁을 거쳐 대학에 합격한 순간 대학생들은 미래에 대한 긴장감을 잃는 것이 현실. 강의를 선택할 때에도 적성과 직업계획에 따르기보다 후한 학점과 재미를 기준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대학의 학사나 교육도 학생 선택 위주로 운영돼 믿고 맡길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의 해결을 위해선 결국 각 대학이 나설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문제는 한국의 대학에 진로지도 프로그램이 아예 없다는 것.
이지연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부연구위원은 “우리나라 대학에 ‘진로지도’라고 부를만한 프로그램이 있다면 ‘취업정보센터’와 ‘학생생활연구소’ 정도인데, 이는 진로지도개념의 극히 일부를 이루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외국 대학의 경우 학생 개개인에 대한 맞춤형 진로지도를 위해, 학년별 진로계발 프로그램을 일생에 걸친 직업설계 과정의 일환으로 운영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지도교수제, 말잔치 그쳐
-제도 필요성 못 느끼고 여건도 미비
서울 K대의 한 보직교수는 1, 2학년 때부터 진로교육을 하면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고 기자가 묻자 “그런 자리 마련해봤자 학생들 안 온다. 대학생이면 성인인데 이래라 저래라 하기도 쉽지 않다”고 어려움을 토로한다.
실제로 대학들은 ‘은행권 선배 만남 행사’, ‘취업전문가 강연’ 같이 취업정보와 관련된 행사를 몇차례 진행한다. 그러나 말 그대로 취업정보를 제공하는 수준을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
대다수 대학에서 운영하는 지도교수제도 효과를 못 보고 있긴 마찬가지. 이미 교수들은 이 제도를 잡무의 연장으로 받아들인다.
서울 소재대의 한 경제학부 교수는 “정원 2백명, 네 개 학년에 교수가 20명인데, 보직교수나 연로하신 분들 빼면 교수 1인당 40~50명을 담당학생으로 맡는다. 사실상 학기당 1회씩 5분에서 10분 면담하는 게 ‘지도’의 전부다. 그것도 전공배정 못 받은 1학년에 해당되지 2~4학년 학생들은 신경 못 쓴다”고 말한다.
학생들도 제도의 실효성에 의문을 나타낸다. 서울 K대의 박혜영양(경영·3)은 “대학원 진학이나 취업 때 추천서위해 얼굴 비치는 것 외엔 교수님과의 상담을 자청하는 경우는 없다”고 말한다.
또 다른 K대의 경우 상담 전담자로 석사과정인 조교급을 임명해 운영하고 있으나 내용을 뜯어보면 행정상의 정보를 주거나 수강신청을 돕는데 그치고 있다.
S대의 경우 지도교수제를 보완하기 위해 ‘대표학생제’(지도교수가 담당하는 학생 중 한 명이 지도교수와 학생들 사이의 가교역할을 하게 하는 제도)를 운영하는 등 나름의 보완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고육책의 성격이 짙다.
이 대학 심원철군(경제·4)은 “상담은 교수, 학생 모두에게 부담스런 요식 행위”라고 말한다.
-학부제가 범인?
-결국 교육당국과 대학·교수들이 나서야
학부제 시행 이전의 학과체제는 그나마 선후배 관계를 유지시킨 측면이 있다. 이를 통해 대학 신입생들은 손쉽게 자신의 인맥 그룹(support group)을 형성해 직업을 위한 정보를 얻곤 했다.
반면 학부제와 광역단위 모집을 통해 입학한 학생들의 경우 조력자를 얻을 기회가 더욱 줄었다는 지적도 있다. 대학 내에서 익숙했던 관계망이 사라지면서 학생들은 각자 선택하고 결정하는 일이 더 많아졌다.
학과체제일 때 H대학 경영학과에 들어가 올해초 졸업한 박지혁씨(28)는 “학부로 바뀐 후 들어온 신입생 대부분이 공인회계사 되겠다며 입학과 동시에 회계사 시험에 매달리지만 1, 2년 후면 대개 포기한다. 우리 때는 졸업한 학과 선배들이 찾아와 충고라도 해줘 시행착오를 줄였던 것 같다. 요즘 후배들은 직업 정보를 드라마에서 얻는지 유행 따라 금새 변하곤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학부제를 탓하기 이전에 결국 교육담당자인 교육당국과 대학, 그리고 교수들 책임이 강조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지연 부연구위원은 “외국 대학의 교수들은 교수(teaching), 연구(research), 직업경력 지도(career guidance)를 기본적인 업무로 여기는 게 보편적이다. 이 중 직업경력 지도는 한마디로 학생의 평생직업설계에 교수가 전적으로 책임을 지는 것”이라며 “한국의 지도교수제는 알맹이만 쏙 빠져 있다”고 비판한다.
물론 교수들만 탓할 수는 없다. 교수 1인당 학생 수가 턱없이 많은 우리 대학의 기초 여건문제가 다시 제기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논문 게재수나 발표 실적 등으로만 교수평가가 이뤄져서는 진로지도의 실효성을 담보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일부 대학서 변화 노력 엿보여
-장점 빛나지만 아직 갈 길 멀어
물론 대학들이 전혀 노력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연세대의 경우 비교적 진일보한 진로지도 체계를 갖췄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연세대는 학부제하의 전공 선택 전 학생들이 학교 적응에 더디고 직업탐색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자체 통계조사에 주목, 학부대학을 설립하고 학사지도 전담교수 17명을 초빙했다.
대부분 석박사급인 교수들은 채용 후 전문상담인 교육을 거쳐, 학생 생활 전반에 대한 도움을 준다. 특히 이들 교수들은 30대 후반으로 전공 교수에 비해 공감의 폭이 넓어 학생들이 스스럼없이 상담을 청하는 편이다.
2001년 온라인과 오프라인 상담 회수는 학생 1인당 4.6회. 가정문제나 이성교제 등 상담 내용은 다양하고 취업한파의 영향으로 진로에 대한 상담요청도 늘고 있다.
이보경 학사지도교수는 “학생들 대부분이 진로에 대해 막연한 생각만 갖고 있다”며 “추상적인 꿈을 현실화되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설명한다.
숙명여대도 기존의 취업정보센터와 다른 개념인 취업경력개발센터를 설립했다. 이를 통해 4학년생의 취업률 제고에 치중했던 그간의 체제를, 학생의 일생을 통한 경력관리 중심으로 전환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 역시 아직까진 초보적인 수준이라는 지적이다.
이 부연구위원은 “진일보한 측면은 있지만 아직까진 ‘종합적인 진로지도’보다는 기존 취업정보센터나 학생생활연구소의 역할을 보완한 정도”라고 설명한다.
또 여자대학과 여성계를 중심으로 운영 중인 멘토링(mentoring:선배 직업인이 후배와 정서적 관계를 맺으면서 미래의 역할모델을 함으로써 후배들의 직업탐색에 조력자 역할을 하는 것)도 긍정적인 변화지만 극히 한정된 영역에서 이뤄지는 ‘비구조화된 진로지도 체계’라는 점에서 명확한 한계를 갖는다.
이 부연구위원은 “대학은 당장의 취업률 제고를 중심에 놓는 물량적 사고방식을 버려야 한다”며 “학생 개개인의 졸업 후 미래까지 염려하는 대학행정이 대학교육의 질적 발전을 이루는 데도 중요”함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