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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학신문 칼럼] 한국대학신문
[기고]행복의 영적 차원
김선욱 숭실대 철학과 교수
- 예전에도 기고를 받아서 사진은 폴더에 있습니다.

그동안 윤리학과 정치철학 관련 과목들을 강의해 오면서 나는 무엇이 옳은 것이고, 어떤 것이 정의로운 것인가를 따지는 일에 열중했었다. 정치철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동기가 바로 “무엇이 정의인가?”라는 물음 때문이던 까닭이다. 어느 책에 썼던 대로, 내가 대학생이던 5공 시절에 경찰서 입구마다 붙어 있었던 “정의사회 구현”이라는 ‘화두’가 나의 철학적 관심을 정치로 이끌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최근에 문득 ‘행복’이라는 화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지만 그것도 근본적으로는 정치적 관심과 거리가 멀지 않았다. 최근에 출간한 <행복의 철학>이라는 책도 결국은 정치 행위를 했을 때 경험될 수 있는 행복 즉 공적행복에 대한 것이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온전한 행복에 이를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려면 자유, 존엄성, 평화 등과 같은 개념들을 피할 수 없었다.

공적행복에 대한 설명은 행복이 다차원성을 갖는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행복은 물질적 차원, 개인적 성취의 차원, 그리고 공적 차원에서 두루 경험될 수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그런데 다차원성을 논하면서 한 가지 더 덧붙였던 것은 행복의 영적 차원이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종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독자들에게 종교를 가지라는 충고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주 독자들이 대학생이었기에, 그들에게 종교를 가지라는 충고는 무의미할 터였다. 무엇보다도, ‘영적 차원’을 마치 종교적으로 체험되는 신비한 경험과 같은 것으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는 생각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영적 차원이란 한 개인의 삶이 갖는 다양한 측면들을 꿰는 원리를 말한다. 우리는 자신의 정체성이 단일한 모습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나는 남자이지만, 기혼자고, 자녀도 있다. 교육자이며, 중산층에 속해 있다. 박사학위는 미국 물을 먹고 얻은 것이지만 철학적 뿌리에는 독일철학이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이렇게 설명될 수 있는 사람이 물론 나뿐인 것은 아니다. 이런 정체성 설명과 완전히 일치하는 항목을 가진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와 나의 정신세계가 동일할 수는 없다. 위의 항목들에서 그와 내가 가지고 있는 조합이 다를 것이고, 또 그 조합을 꿰며 존재하고 있는 개인의 삶의 지향성도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처럼 다양할 수밖에 없는 정체성의 측면을 남이 아닌 바로 ‘그’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코어가 영적 차원이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다.

많은 것을 이룬 사람들 가운데는 의외로 영혼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무엇인가 많이 하기는 했는데, 그의 삶에 가치를 부여할 원리를 빠트린 사람들이 많다는 말이다. 정치가가 소신을 갖고 정치를 시작하지만 수많은 선거를 치르면서 전략 속에 그만 자신의 본래의 소신을 상실해버리는 것도 영혼을 상실해버리는 것이다. 승자를 찾는 선거 과정에서 오직 승리만을 추구하다가는, 결국 자신의 삶을 듣기 좋은 홍보로만 감싸는 모습으로 전락해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걱정이 되는 것은, 그동안 써야 했던 수많은 글들 속에서 나는 내 영혼을 잘 살피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행복에 대한 강의는 ‘네 영혼을 살피라’고 한 소크라테스의 충고를 벗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대학신문 칼럼 | 입력 : 11-07-28 오후 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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